"신뢰 깨졌다" 상임위 불가론..탈탈 털리는 태영호·지성호

한영익 2020. 5. 5. 1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태영호(左), 지성호(右). [뉴스1]


‘영혼까지 털린다’는 게 이런 것일까. 북한 이탈주민 출신 국회의원 당선인 두 사람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태영호(미래통합당)ㆍ지성호(미래한국당) 당선인 얘기다. 이들은 지난달 중순 각각 ‘김정은 건강ㆍ신변이상설’을 제기했지만,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활동 사진과 영상이 공개되자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정치권과 언론에서 난타 당했다. 두 사람은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비난은 현재진행형이다.

급기야 이들에 대해 안보 관련 상임위 보임 불가론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선 4일 중량급 인사들이 나서 “안보상의 심각한 위해를 가했다. 국방위나 정보위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김부겸 의원), “1급 정보들을 취급하게 될 텐데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윤건영 당선인)이라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5일엔 “민감한 상임위 배정은 국민적 신뢰가 깨져서 이미 어렵게 됐다”(민병두 의원)며 보임 불가를 기정사실화 하는 기류로 나갔다.

그러나 외교ㆍ안보 전문가들은 ‘예측 실패’를 이유로 상임위 보임 불가까지 거론하는 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38노스’ 제니 타운 편집장은 “그들은 선출된 사람들이다. 일부 직무만 할 수 있다는 경고(caveat)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정치외교학과)도 “잘못 예측했다고 사과? 학계와 언론계, 특히나 북한 연구자 모두에 해당되는데. (배제 주장은) 기이하다(bizarre)”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1986년 11월 ‘김일성 사망설’, 2013년 8월 ‘현송월 총살설’, 2015년 5월 ‘김경희 피살설’ 오보 등 북한 관련 정보가 틀린 건 부지기수다. 2016년 2월에는 국정원조차 “이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처형”을 보고했다가 그가 석달 뒤 중앙군사위원에 선임되며 망신을 당했다.

두 당선인에 대해 “오버하지 말자”(3일)고 견제구를 날렸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4일 “조리돌림하는 건 더 악랄하다. 정보위ㆍ국방위 배척 주장은 의외이자 충격”이라고 비판했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여당은 최초 사망설을 보도한 CNN에 대해선 왜 항의방문을 하지 않냐”고 따졌다.

태영호ㆍ지성호 두 당선인을 동렬에 놓고 비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지 당선인은 소식통을 인용 “김정은 사망 99% 확실”(1일)이라고 단정했지만, 태 당선인은 지난달 15일 김 위원장이 태양절 행사에 불참한 걸 근거로 “김정은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4월28일)라고 추론한 정도다. 당시에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가 어땠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오히려 태 당선인을 향해 “스파이”(김병기 의원)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집중타를 날리고 있다. “북한 고위직 출신 메신저(태 당선인)를 흠집내려는 의도 아니냐”는 반발이 야당에서 나오는 이유다.

혐오와 차별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친여 성향 네티즌들은 태 당선인의 지역구(서울 강남갑)를 겨냥해 ‘력삼동’ ‘내래미안’ 등 조롱성 게시글을 올리고 ‘빨갱이’ 낙인을 찍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탈북이주자로 된 영구적 하층계급이 생겼다는데 대해 이보다 더 나쁜 메시지는 없을 것”(크리스토퍼 그린 인터내셔널 크라이시스 그룹 연구원)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소수자를 차별하는 전형에 가깝다는 의미다.

과거 수십년간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색깔론의 피해자에 가까웠다. 그랬던 그들이 역으로 보수정당의 당선인에 ‘빨갱이’ ‘스파이’ 프레임을 씌우는 건 기괴한 풍경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대한민국의 주류가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