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학교, 시간과 공간의 통제를 깨자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2020. 5. 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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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0년 전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은 지금도 유효하다. 푸코가 교실 모습을 감옥에 비유했던 것처럼, 많은 비판론자는 여전히 학교가 학생들을 물리적으로 묶어두고 지식을 주입하기에 딱 맞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규범과 감시가 최적화된 공간통제와 시간통제를 통해 학생을 장악하며 반 편성, 시간표 편성, 출석점호 등은 그런 구조를 유지케 한다.

특히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은 1인당 2㎡가 안된다. 작년 법원은 교도소 수용거실 면적이 1인당 2㎡보다 작은 것은 위법한 과밀수용이며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학교 전체로 보면 이보다 훨씬 넓다고 할 수 있지만 학교생활의 시간통제로 인해 대부분 좁은 교실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형편이고 보면 이 비유가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성인이었으면 당연히 저항했을 환경을 아이들이기 때문에 묵묵히 참아내고 있다.

그런데 왜 행복해야 할 학교가 규율과 감시 중심으로 편제되었을까? 여기에는 학교가 공장모형을 본떠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매우 유력하다. 교사들은 1교시, 2교시 등의 작업시간에 맞추어 1반, 2반 등 분업장 안에서 획일적으로 수업한다. 연령별 표준에 맞추어 학습하며, 시험은 학생들의 능력을 생산품처럼 검사한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되었지만 학교는 여전히 효율성과 감시라는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의 유령을 버리지 못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그런 학교를 단번에 해체해 버렸다. ‘거리 두기’를 위해서 아이들을 가두어 두던 물리적 통제는 중단되었고, 교사들이 가졌던 교육의 주도권은 단번에 학생들 손으로 넘어갔다. 오히려 민망하게도 교사들이 수업하는 ‘비밀의 정원’이 고스란히 학부모들에게 노출되는 부산물도 생겼다. 그 와중에도 학교는 카톡으로 출석을 부르고 교단에 서서 수업하는 등 여전히 오프라인수업 방식을 온라인수업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 가운데 특별히 주목할 점은 바로 온라인개학이 편안한 집과 공부하는 학교의 두 가지 다른 이미지를 교차하는 새로운 혼종성의 시공간을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학습은 반드시 1인당 2㎡의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교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만이 아니며, 학교도 얼마든지 새로운 포맷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틈새를 보여주었다.

이제 곧 생활방역과 함께 온라인개학이 ‘정상적인 개학’으로 대체된다. 온라인개학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한국의 창의적 발상이었지만, 여전히 시민들 마음속에는 ‘비정상적 개학’으로 읽힌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지금까지의 학교는 과연 정상이었던 걸까? 온라인개학 속에 잠시 맛본 것들이 정상이었고 지금껏 아이들을 가두어 두었던 공간이 비정상이었던 건 아닐까?

학교는 학습공간인 동시에 생활공간이다. 인간임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는 여유가 부정된 공간은 인권이 침해된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선 수업교실 외에도 휴식과 개별활동이 가능하도록 훨씬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학교공간은 지자체가 함께하면 훨씬 넓어진다. 경기 화성시의 이음터는 한 가지 모델을 제공한다. 학교 부근에 지자체 학습공간을 짓고 낮에는 학교가 사용하고 방과 후에는 지역 성인들이 사용하도록 디자인한다. 예전에 제시된 또 다른 방안은 운동장을 변형하는 것이다. 군대 연병장을 연상시키는 운동장에 체육관을 포함한 복합 건물을 지어서 학생들의 다면적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학교가 지금처럼 전일제 단독공간에서 교사주도의 수업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관점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 되었다. 팀프로젝트, 자기주도학습 혹은 공강까지도 시간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산업 4.0시대의 ‘플랫폼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교도 ‘플랫폼 학습체계’가 돼야 할지 모른다. 강의하는 곳이 아니라 학습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곳이다. 이미 상당한 수업에서 유튜브, EBS, 아이스크림 등 지식 플랫폼의 프로그램들이 활용되고 있다. 수업의 20% 정도는 온라인수업을 병행할 수도 있다. 피터 센게는 20년 전 벌써 학교를 교수 중심이 아닌 시스템학습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권했다.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 통제로 학생들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다양한 혁신의 길이 보인다.

요컨대 교사가 주인인 교실수업형 학교 공간은 하루빨리 학생이 주인인 학습생활형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탈근대적 해방이 요구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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