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정부는 국제법으로 사실 날조

한국일보 입력 2020. 5. 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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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독도가 국제법적으로 일본영토라고 주장한다. 위키피데아 인터넷사전 ‘일본판’에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이기 때문에 한국에 “국제법상 주권 이전(’移轉)”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영유권을 날조하고 있다.

첫째, 일본은 “국제법상 일시적인 점령은 주권 이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일본이 말하는 “일시적 점령”은 세계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전 직후 1946년 1월 연합국군이 SCAPIN 677호로 “울릉도, 리앙쿠르암(독도), 제주도 등” “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한다” “최종적인 영토결정은 아니다”라고 하여 독도를 포함하는 영토범위를 정하여 한국을 독립시킨 것을 말한다.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SCAPIN 677호는 최종적인 영토결정이 이루어지는 대일평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우선적으로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이 “일시적으로 독도를 점령했다”고 사실을 날조했다.

둘째, 일본은 “설령 점령 등에 의해 주권이 현저하게 훼손되었다고 하더라도 원래 보유국의 동의가 없으면 주권 이전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점령에 의해 주권이 현저하게 훼손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연합국군이 SCAPIN 677호로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온 것을 말한다. 현재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행사는 지극히 적법이다. 또한 “원래 보유국의 동의가 없으면 주권 이전은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 중에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해 “주인이 없는 섬”이라고 하여 국제법의 “무주지 선점” 이론으로 편입하여 일본영토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패전하여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포츠담선언에서 “청일전쟁 이후 침략한 모든 영토를 몰수하여 원래의 국가에 반환한다”고 하는 연합국의 요구를 이행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독도 편입조치는 침략행위이기 때문에 독도는 한국에 반환되었다,

셋째, “주권 이전(移轉)이 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후 처리과정에 연합국이 일본에 대해 ‘다케시마(독도)’의 포기를 요구했어야 했다”라고 하여 연합국이 일본에게 독도의 포기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연합국은 3번에 걸쳐 일본에게 독도를 포기하도록 했다. 1차적으로는 연합국군이 1946년 1월 SCAPIN 677호로 독도를 침략한 영토로 간주하여 한국영토로 인정한 것이다. 2차적으로는 대일평화조약에서 최종적으로 독도의 영토조치를 단행했는데, SCAPIN 677호로 한국이 실효적으로 관할 통치하고 있는 독도의 주권을 박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차적으로는 대일평화조약 체결 이후 SCAPIN 677호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관할통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1952년 1월 한국정부가 평화선을 선언하여 독도의 영토주권을 명확히 했을 때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한 연합국이 공식적으로 특별한 이의제기 없이 그해 4월 대일평화조약을 비준하여 효력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를 보더라도 오늘날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관할통치하고 있는 것은 아주 적법하다.

넷째,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일본이 다케시마(독도)의 권원(権原)이나 주권 포기에 동의해야 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1차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포츠담선언을 수용함으로써 일본이 침략한 영토를 포기하였을 때 독도가 포함되었다. 2차적으로는 SCAPIN 677호로 연합국군이 독도를 한국영토에 포함시켰을 때도 일본은 독도를 포기하였다. 3차적으로는 1951년 9월 대일평화조약이 체결되고 1952년 1월 한국정부가 평화선을 선언하여 독도를 한국영토임을 분명히 하였을 때, 연합국이 한국의 평화선 조치에 대해 아무런 공식적인 이의제기 없이 1952년 4월 대일평화조약을 비준하였다는 것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포기한 것이다.

이처럼 독도가 합법적으로 명백한 한국의 고유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영유권 논리 날조는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일본은 1952년 11월 5일 미국이 “SCAPIN은 일본의 시정을 정지한 것, 영구적으로 일본의 주권행사를 배제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1954년 벤 플리트 특명보고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영토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일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로 결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일평화조약 비준 이후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했다는 미국의 입장은 냉전체제의 국제정세 속에서 단지 제3국으로서 일본의 요청에 동조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런 법적인 효력이 없다. 오히려 1952년 10월 주한 미국대사관은 그해 4월 발효된 평화조약을 바탕으로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성명서를 발표했고, 1952년 11월 27일 주한 미국대사관은 “미국이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했다고 하는 러스크서한은 비밀문서로서 처음 접했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 미국정부는 타국의 정치문제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여 독도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최장근 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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