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벨트'는 무섭도록 단단했다

김동인 기자 2020. 5. 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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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서울·경기 주요 지역구의 개표 결과를 투표소 단위로 분석해본 결과, 종부세·재건축 문제를 가진 고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미래통합당을 지지했다.
ⓒ시사IN 이명익서울 송파을의 미래통합당 배현진 당선자는 가락1동, 잠실3·7동 등에 있는 부자 아파트 주민의 몰표를 받았다.

4·15 총선은 거대 여당의 탄생과 보수 야당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도권은 특히 여당의 압승이었다. 수도권 전체 지역구 122석 가운데 미래통합당은 겨우 16석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서는 미래통합당이 의석을 확보한 수도권 지역구를 한데 묶어 ‘종부세 벨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1주택자인 경우 공시가 9억원 이상)인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 경기도 성남시 분당 지역에서 그나마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큰 승리로 지나간 위기가 쉬이 가려진다. 여당 입장에서는 ‘부자 동네’를 일부 잃었지만, 종부세를 낼 만큼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 개표 통계를 들여다보면 이번 총선에서 부동산 이슈는 결코 가볍게 작동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이 승리한 지역구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을 차지한 지역구에서도 ‘조직적인 불만 표’가 드러난다. 이 불만은 다가올 대선에서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시사IN〉은 부동산 이슈가 표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수도권 주요 지역구 개표 결과를 투표소 단위로 분석해보았다. 부동산 이슈로 여야가 가장 선명하게 맞부딪친 지역구는 서울 송파을이다. 2018년 재선거 당시 한 차례 맞붙은 바 있는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후보와 미래통합당 배현진 후보가 재대결을 벌였다. 개표 결과 득표율 50.5%를 차지한 배현진 후보가 득표율 46.0%를 기록한 최재성 후보를 꺾었다. 표 차는 6309표였다.

2018년 재선거 당시에는 최재성 후보가 배현진 후보를 이겼다. 2년 만에 그 구도가 뒤집혔다. ‘동네별 득표 구도’를 그린 아래 〈표 1〉을 살펴보자. 배현진 후보는 가락1동에서만 최 후보보다 3151표를 더 확보했다. 지역구 전체 표 차이(6309표)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가락1동은 2018년 선거에서 유권자가 적은 동네였다. 2018년 12월부터 9510세대 규모 헬리오시티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핵심 지역이 되었다. 부동산 빅데이터 ‘직방시세’에 따르면 이 아파트 단지의 3.3㎡당 매매가는 5300만원을 상회한다. 전용면적 84.98㎡ 아파트 한 채가 17억원 남짓에 거래되고 있다. 주민 다수가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이다.

잠실3동에서도 가락1동과 비슷하게 배현진 후보에게 ‘몰표’가 쏟아졌다. 이 지역에는 잠실주공5단지와 ‘잠실 대장주 아파트’로 불리는 트리지움 아파트 등이 위치해 있다. 매매가격이 헬리오시티를 넘어서는 동네다. 잠실3동에서 최재성 후보의 득표율은 33.7%에 그친다. 반면 배현진 후보는 이 동네에서만 5875표를 최 후보보다 더 얻었다. 비슷하게 고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잠실2동, 잠실7동, 문정2동도 배 후보가 앞섰다. 반대로 최 후보는 일반 주거단지가 밀집한 잠실본동, 삼전동, 석촌동에서 승부를 보았다.

주거 형태와 주택 가격에 따른 ‘계급투표’ 대결이 펼쳐졌지만, 결국 투표율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이 지역구 전체 투표율은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72% 수준이다. 특히 고가 아파트 지역에서 적극적인 투표 성향이 드러났다. 배현진 후보가 득표율 68.3%를 기록한 잠실7동은 투표율이 80%에 육박했다. 가락1동 77.9%, 잠실2동 76.2%, 잠실3동 75.7% 등 사실상 고가 아파트 단지가 지역구 전체 투표율을 끌어올렸다. 반면 최재성 후보에게 호의적인 잠실본동(63.1%)·삼전동(63.6%)·석촌동(63.1%) 등은 투표율이 전국 평균치(66.2%)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가 아파트 단지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가 집권 여당 현역의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종부세 반발 표심’의 현주소

민주당 후보가 당선한 지역구에서도 국지적으로 ‘종부세 반발 표심’이 드러난다. 강남과 가까운 한강변 지역일수록, 종부세를 내야 하는 고가 아파트 동네일수록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는 표심이 두드러졌다.  〈표 2-1〉과 〈표 2-2〉를 살펴보자. 두 표는 각각 서울 광진을, 중·성동갑 지역구 선거 결과다. 서울 광진을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와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고민정 후보는 이곳에서 득표율 50.4%로 오세훈 후보(득표율 47.8%)에게 신승했다. 2746표 차이였다. 광진구 한강변 동네인 자양2·3·4동과 구의3동에서 오 후보가 더 많은 표를 확보했다. 특히 자양3동이 고 후보에게는 험지였다. 이 지역에서 가장 비싼 더샵스타시티 아파트(자양3동 제7투표소)에서 오 후보는 1632표를 받은 반면 고 후보는 484표밖에 얻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 한 곳에서 1148표나 차이가 났다. 이곳은 전용면적 100.32㎡ 아파트 한 채에 13억원 넘게 거래되고 있다.

인근 한강변 지역인 성동구 일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서울 중·성동갑 지역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후보는 득표율 54.3%를 기록해 미래통합당 진수희 후보(득표율 40.9%)를 넉넉하게 앞질렀다. 하지만 지역 내 고가 아파트 단지에서만은 ‘득표율 1위 후보’가 뒤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 내에서도 고가 아파트로 손꼽히는 트리마제 아파트와 강변건영 아파트가 위치한 성수1가1동 제2투표소, 서울숲힐스테이트 아파트 주민이 투표하는 성수2가1동 제1투표소, 롯데캐슬파크 아파트 주민이 투표하는 성수2가3동 제2투표소에서 진 후보는 홍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확보했다. 지역구 전체 평균을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인 표차다.

종부세만큼 이번 총선에서 논란이 된 부동산 이슈가 하나 더 있다. 노후 아파트 재건축 문제다. 대단지 아파트 재건축은 주민들의 오래된 욕망이다. 그러나 사업 시행은 더디고 어렵다. 안전진단 등 각종 기준을 통과하는 데에도 하세월이다. 현 정부의 기조는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도권 재건축 이슈가 지역 전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불쏘시개가 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재건축 추진에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는 만큼, 재건축을 열망하는 표심은 상대적으로 정부·여당에 호의적이지 않다.

재건축이 두드러진 이슈가 된 지역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반감이 표심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2020년 이후 향후 10년은 ‘1기 신도시’ 재건축 원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에 조성한 1기 신도시 고층 아파트가 건축 연한 30년을 넘기기 시작했다. 30년이 넘은 건축물은 안전진단 등을 실시해 재건축 적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오래되고 해당 지역 선호도가 높은 동네일수록 재건축은 전국적인 관심사가 된다. 1기 신도시로 가장 대표적인 곳이 경기 분당과 서울 목동이다.

오른쪽 〈표 3-1〉과 〈표 3-2〉는 각각 경기 성남분당갑과 서울 양천갑 지역구 개표 결과를 정리한 표다. 경기 성남분당갑은 ‘판교신도시 대 분당신도시’ 대결 구도가 선명했다. 서현1·2동과 이매1·2동, 야탑2동처럼 1990년대 초에 지은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는 미래통합당 김은혜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뚜렷했다. 반면 판교동, 야탑3동 등지에서는 현역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차지했다. 합산 결과는 득표율 50.0% 대 49.3%로 김은혜 후보의 승리였다. 1128표 차이였다.

김은혜 후보는 부동산 이슈를 선거 전면에 내세웠다. 종부세 완화, 재건축 이슈 외에도 표심을 붙잡기 위해 공개적으로 서현1동 공공주택지구 건설 반대 공약까지 내세웠다. 서현1동 외곽에 24만7631㎡ 규모로 들어서는 이 공공주택지구는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서현1동 주민들은 교통난과 학교 부족, 범죄 증가 등이 우려된다며 사업 철회를 주장해왔다. 일부 주민들은 임대주택을 ‘난민촌’으로 비하하는 플래카드를 걸어 님비현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 후보는 이 사업을 본인이 직접 나서서 백지화하겠다고 공약했고, 지역 주민들이 여기에 호응했다. 김 후보는 서현1동에서만 2704표를 김병관 후보보다 더 얻어 당선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당 일각에서 ‘종부세 개편’ 운운하는 까닭

서울 양천갑 지역구도 재건축 이슈가 불거진 곳이다. 서울 서부권에서 가장 큰 재건축 단지인 목동아파트가 이 지역구에 속해 있다. 현역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황희 후보는 득표율 51.8%를 기록해 미래통합당 송한섭 후보(득표율 44.9%)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1만 표 이상 차이가 날 만큼 겉보기에는 무난한 승리로 평가받았다. 이 지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심이 양극화되어 있다. 황희 후보는 재건축 열망이 큰 아파트 단지에서 고전한 반면, 빌라 주택이 밀집해 있는 동네(목2·3동)에서 득표율이 높았다.

〈표 3-2〉를 살펴보자. 황희 후보는 목동 아파트 5·9·14단지에서 득표율 40%를 넘기지 못했다. 특히 고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목5동에서는 송한섭 후보에게 1743표 차이로 뒤진 것으로 나타난다. 주택 형태에 따라 표심이 갈린 송파을과 비슷한 구도다. 다만 양천갑 지역구는 선거 전부터 이미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었고, 황희 후보도 다른 민주당 후보들과는 상반된 부동산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재건축 핵심 사안인 구조 안정성 평가 기준을 낮추겠다고 공약했고,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부과 기준을 개편하겠다고 주장했다. 목1·5동, 신정1·6동 등 아파트 지역에서 표를 잃기는 했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국지적인 ‘지역구 선거’에서는 여당 후보도 어쩔 수 없이 부동산 이슈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셈이다.

고가 아파트의 종부세 문제, 오래된 아파트의 재건축 문제는 대다수 수도권 주요 격전지에서 혼재되어 나타난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후보가 3선에 성공한 서울 강동갑(명일동 재건축, 상일동 고가 아파트),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후보가 당선된 경기 성남분당을(정자동 고가 아파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후보가 당선된 서울 송파병(문정동, 위례동 고가 아파트) 지역구도 세부 지표에서 부동산 표심이 드러났다.

특히 신규 아파트가 대거 들어선 서울 송파병 위례신도시 일대는 투표소(아파트)별로 흥미로운 분화를 보여준다. 단지별 주택 크기와 가격, 공공주택 여부에 따라 여야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힐스테이트송파위례(전용면적 101.8㎡ 기준 매매가 14억원 선), 위례2차 아이파크(전용면적 108.13㎡ 기준 매매가 15억원 선)처럼 고가 아파트에서는 남 후보가 미래통합당 김근식 후보에게 뒤졌다. 그러나 옆 단지에 위치한 장기전세 아파트 위례포레샤인에서는 남 후보의 득표율이 60%를 넘겼다. 같은 동네 안에서도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라 표심이 엇갈렸다.

부동산 규제 확대를 통한 집값 안정 정책은 정부·여당의 핵심 공약이다. 종부세와 같은 보유세는 아직 ‘소수’에게 해당되는 이슈다. 수도권 전체 판세에 큰 지장을 끼치는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 9억원 이하 아파트의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종부세 부과 대상이 늘었고, 집값 안정화 정책의 체감 정도는 낮아 정치권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가 되었다. 만약 코로나19 국면이 아니었다면 이번 총선에서 부동산 문제는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통합당은 당 차원에서 보유세 완화, 3기 신도시 백지화 등을 주장했을 정도로 부동산 문제를 전면에 부각할 심산이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 실패라는 책임을 정권심판론과 연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결과적으로 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부동산 규제 강화와 공공임대주택 및 주택 복지 증대라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다수가 얼마나 만족할 만한 정책 효과를 거두어내느냐가 관건이다. 2022년 대선에서 집값 안정화에 대한 체감 정도가 떨어진다면, 여당 내에서도 종부세 감면과 재건축 관련 발언이 힘을 낼 가능성이 생긴다.

이미 여당 내에서도 종부세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점차 발언권이 커지고 있는 이낙연 당선자가 지난 4월2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남긴 말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이 당선자는 “1가구 1주택 실소유자가 뾰족한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현실을 감안한 고려가 필요하다. 종부세도 개선 여지가 있다”라며 종부세 부과 대상 완화를 시사했다. 여당 내에서도 주요 격전지 후보들이 종부세 완화 공약을 남겨 관련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수도권 접전지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일수록 지역 내 부동산 관련 이슈와 민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앞으로 2년 동안 거대 여당이 부동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음 대선의 ‘큰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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