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내리막 경제의 대처는 달라야 한다

김동호 2020. 5. 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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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에도 '소주성' 그대로
땜질로는 지금 역성장 못 막아
대통령 용기 내 정책 전환해야
김동호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는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180석을 확보하면서 개헌을 빼고 못 할 게 없는 무소불위의 정권이 됐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명확하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라는 요구다. 정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재정을 퍼붓고 임금과 근로시간을 통제하는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내려놓기다. 소주성은 근로자 임금부터 올려줘서 소비를 늘리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려 경제를 키워 나간다는 정책이다. 마차(소득)가 말(기업)을 끈다는 전대미문의 정책 실험이다. 그런데 코로나 쇼크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이런 전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경제가 계속 성장해야 이 실험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마이너스 경제 시대가 열렸다.

사실 우리 경제는 근래 들어 바닥을 드러낸 경제 체질에 소주성의 부작용까지 더해지면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는 오일쇼크와 외환위기 충격을 받았던 1980년과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이 예고돼 있다. 이미 1분기부터 1.4%의 역성장을 기록하며 내리막 경제가 시작됐다. 이 내리막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은 실업자 3000만 명을 쏟아내며 실업률이 20%에 육박하고 중국도 1분기에 사상 첫 역성장을 기록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국으로 밀려든다.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그냥 쉬었다’는 사람만 3월 중 237만 명에 달했다. 어쩔 수 없이 실업 문턱에 내몰린 ‘일시 휴직자’도 160만 명을 넘어섰다. 추경을 거듭해 재정을 쏟아붓는 단기 알바 땜질로는 감당할 수 없다. 소주성을 당장 접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가 오면 마당에 널린 곡식을 걷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부는 그동안 화수분인 양 재정지출을 늘려 왔다. 올해 512조원 예산 중 복지 지출은 35%에 달한다. 아동·청년·노인에 걸쳐 현금 수당 수급자가 10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정도다. 복지지출은 한번 시작하면 중단이 어려운 불가역적 성격이 있다. ‘세금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는 경제가 영구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1980년과 1998년은 그나마 성장잠재력이 높았던 시절이라 회복 탄력성이 높았다. 경제 충격이 와도 기업이 금세 돈을 벌어 와 나라 곳간을 채웠다. 지금은 패러다임 자체가 달라졌다. 당연시해 왔던 성장의 시대가 가고 마이너스 경제 시대가 왔다. 그 결과 복지 지출을 뒷받침할 재정 여력이 급속히 악화할 공산이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부터 베이비부머의 고령화도 본격화하고 있다. 공짜 지하철부터 기초수당·의료비까지 복지비를 감당할 길이 막막하다.

정부는 용기를 내야 한다. 경제가 계속 성장한다는 전제가 바뀌었으니 정책도 바뀔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한다. 180석을 확보했으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다. 야당 탓과 핑계도 불가능하니 오로지 실용과 실사구시로만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국민이 총선에서 기대 이상으로 성원해 줬으니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식의 포퓰리즘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공짜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가혁명배당금당은 18세 이상 국민에게 매달 150만원을 평생 지급한다고 했지만, 득표율은 0.7%에 그쳤다.

큰 의석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코로나 대책이야말로 정책을 수정할 절호의 기회다. 근본 대책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회복하는 노력이다. 결국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기 때문이다. 정책 전환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진보좌파를 대변하는 정치인이었지만 보수우파 어젠다를 대폭 수용해 경제를 살찌웠다. 또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근본적으로 보수우파였지만 진보좌파 어젠다를 대폭 수용해 독일을 유럽의 리더로 만들고 15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도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때다. ‘리더십의 다른 이름이 책임’ 아닌가.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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