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불 지핀 '전국민 고용보험'..왜 하필 지금일까

김혜지 기자 2020. 5.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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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 '보편적용'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취업자 절반만 가입..연 2조 적자·도덕해이가 문제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0.5.4/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청와대와 여당이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 담론에 불을 댕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 고용시장 내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조속히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다.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가 아예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인 10여년 전에도 학계와 시민사회는 이미 해당 방안을 언급하고 있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고용보험 가입 대상 범위를 확대하면서 '국민취업지원제도'라는 중층적 고용안전망을 설계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차츰 메워 나간다는 구상이었다.

전문가들은 보편적인 고용보험이 장기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전통적 형태의 근로자 계층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긱 경제(Gig Economy)' 도래로 빠르게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이 현상을 가속화하는 중이다.

다만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당사자 반발 극복과 재원 문제,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한 제도 설계 등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 관련 논의가 여권의 총선 압승 직후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이러한 장애물을 감안해 신중한 자세로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전 국민 고용보험, 왜 하필 지금?

코로나 사태는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빈 공간을 여실히 드러냈다.

영세 자영업자와 특수고용직(특고), 프리랜서, 임시일용직 등 고용 취약계층이 지난 2개월간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이들 계층은 고용보험 가입이 불가능하거나 여의치 않아 실업급여를 탈 수 없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취업자 감소폭은 19만5000명을 기록했으나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 수는 3만명 증가에 그쳤다.

낮은 고용보험 가입률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고용보험 가입률은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취업자의 49.4%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전체 실업자 중 실업급여를 받는 비율도 45.6%에 그쳤다.

문 정부가 지난 2년간 고용보험 가입 대상 범위를 꾸준히 확대한 결과가 이 정도다.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 수(3월 기준)는 1376만명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보험 가입률 제고는 선진국형 복지의 기초와도 같기에, 이 상태론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문 정부의 이상과 큰 괴리가 생긴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1995년 고용보험 도입 이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꾸준히 전 국민 고용보험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할 법안들은 국회에 오랜 기간 계류 중이다. 대표적으로 특고와 예술인의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2018년 발의)과 보편적 실업부조 방안을 담은 국민취업지원제도법 제정안(2019년 발의)이 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지난달 총선 압승으로 여권은 이들 법안을 적극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가 고용보험 사각지대라는 우리 사회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내보였다. 약점을 인지하면 행동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명분으로 따라 붙었다.

이미 점진적인 고용보험 대상 확대 정책이 추진되고 있었음에도 여권이 관련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이러한 배경이 뒷받침된 결과다.

◇도입시 뭐가 달라지나…'전 국민 실업급여'

고용보험은 도입 당시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25년이 지난 현재 거듭된 대상 확대 결과로 1인 이상 근로자를 둔 사업장은 물론 영세 자영업자까지 포괄하고 있다. 다만 자영업자 가입자는 1만5000여명 정도로 적다.

이런 가운데 전 국민 고용보험이 도입되면 자영업자와 특고, 프리랜서, 예술인 등 제도상 혜택을 받지 못하던 비근로자 계층은 물론, 고용보험 가입을 기피하던 영세 사업장의 임시일용 근로자도 덩달아 가입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고용안전망은 고용보험이 거의 유일하다.

고용보험은 실업급여와 일시적 고용유지조치(휴업·휴직)에 대한 정부 지원금, 육아휴직 급여 등 고용안정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제도화되면 정부 고용안정 정책의 수혜 규모가 급격히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3월 고용행정통계를 설명하고 있다. 2020.4.13/뉴스1

◇국민 반발·연 2조 적자 등 문제점 산적

대부분 전문가도 고용보험을 모든 취업자에게 보편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제도 도입의 속도와 시점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적으로 당사자들의 반발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고용보험은 지금 시점에서도 보험료 부담 탓에 가입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한 상태다.

또 노사가 보험료를 분담하는 구조이기에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의 의견 합치가 필요한데, 추후 보험료 책정 과정에서 합의 도출에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설계도 필수다. 자발적 퇴직을 비자발적 퇴직으로 보고해 실업급여를 부당 수급하는 문제는 현재에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영업자, 특고, 프리랜서의 보험료 산정 기준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문제다. 이 과정에서 자칫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지난달 초 정부 간담회에서 "취업과 실업 구분이 힘든 특고·프리랜서가 소득감소를 직접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며 "특고 사업주나 플랫폼 기업의 신고, 고용센터 확인 등 실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2020.4.21/뉴스1

재원 마련 문제는 이 모든 문제를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보험 대상이 늘어나면 관련 사업에 지출이 늘 수 있고, 이에 따라 고용보험기금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규모 증대가 불가피하다.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 2조2000억원의 적자를 쓴 바 있다. 2년 연속 적자 기록이다.

기금 펑크를 막으려면 사업주 또는 근로자에게 받는 보험료를 높이거나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 두 방안 모두에서 '혈세 가중' 논란이 예상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복지제도 전반을 대전환하는 무거운 논의"라며 "현재 추진 중인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중층적 고용안전망 도입과 재정건전성 노력을 병행해 가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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