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박쥐에 혼쭐나고도..'블랙 스완'까지 잡아먹은 중국
주민이 몰래 때려 잡아 국으로 끓여 먹고선
"블랙 스완이 부리로 쪼려 했다"고 발뺌
"향은 좋은데 고기는 맛이 없었다" 촌평도
처벌은 고작 10일 이내 행정 구류만
백조(swan)는 대개 흰색이다. 그래서 색이 까만 백조인 ‘블랙 스완(black swan)’의 출현은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발생한 걸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그리고 그 충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중국에서 발생해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혹자는 ‘블랙 스완’에 비유하기도 한다. 박쥐를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옮겨져 세상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사회에선 최근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또 하나의 ‘블랙 스완’이 나타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박쥐 등 야생동물을 먹지 말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 보호 동물인 블랙 스완을 몰래 잡아먹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의 5일 보도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 4월 29일이다. 저장(浙江)성 진화(金華)시 푸장(浦江)현은 호수 추이후(翠湖)에 지난 2016년 7월 네 마리의 블랙 스완을 들여와 주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2018년 6월에 한 마리의 블랙 스완이 없어지는 일이 발생했으나 경찰이 개입해 30분 만에 되찾아 왔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밤 11시 30분께 추이후에서 가까운 스마(石馬) 파출소에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블랙 스완에 먹이를 주는 이에 따르면 블랙 스완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경찰은 바로 호수와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통해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이날 오후 2시께 블랙 스완 한 마리가 호수 조망대 가까이에서 헤엄쳐 온 걸 발견했다.
그리고 40분 뒤 세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중 한 남자가 한 손엔 각목을, 다른 한 손엔 붉은 마대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잠시 후 남자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감시 카메라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자가 각목으로 블랙 스완을 때랴 기절시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 남자의 거주지를 추적했고, 30일 0시를 조금 넘어 그가 세 들어 사는 집을 찾았다. 그러나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남은 건 검은 깃털 한 무더기와 먹다 남은 탕 그릇뿐이었다고 환구시보는 전했다.
범인 우(吳)씨는 구이저우(貴州)성 출신으로 푸장현에 와 노동을 하며 산 지 3년 됐다. 이날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추이후로 놀러 갔다가 블랙 스완을 발견하곤 막대기로 찔러 보니 블랙 스완이 부리로 쪼려고 해 홧김에 죽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미리 각목과 마대를 준비하고선 거짓으로 둘러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두꺼비가 백조 고기를 얻으려 한다”는 말이 있다. 제 분수를 알지 못하는 걸 가리킨다. 우씨가 바로 그런 경우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국적으로 야생동물을 잡아먹지 말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법제화까지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 일반 야생동물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동물을 잡아먹으려 했다는 지적이다.
블랙 스완은 2016년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으로부터 멸종위기 보호조(鳥)에 해당하는 ‘레드 리스트’에 올랐다. 그런 관상동물을 잡아 국을 끓여 먹고선 “향은 좋았는데 고기는 거친 게 맛이 없다”는 촌평까지 내놓았다.
지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이어 올해 코로나19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국은 야생동물 남획과 식용을 금지하기 위해서 지난달 8일 식용 가능한 가축과 가금 31종의 목록을 발표한 바 있다. 한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국제적인 보호 동물까지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다. 제2, 제3의 코로나 사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씨에게 인신의 자유를 약 10일 이내로 제한하는 ‘행정구류’라는 약한 처분이 내려진 걸 고려하면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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