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부정선거' 믿는 이도 국민이다

이상언 2020. 5. 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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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론에 근거한 주장 설득력 낮아
하지만 의심 해소와 통합을 위해선
소송 지역 재검표는 적극 고려해야
이상언 논설위원

JTBC가 2016년에 입수한 태블릿PC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혹의 근거 중 하나는 그 태블릿PC의 잠금장치를 바로 해제할 수 있었다는 JTBC 설명이다. 가능한 패턴이 수십만 개인데 어떻게 단박에 풀었느냐고 묻는다. JTBC 기자는 자신의 스마트폰 잠금 패턴이 ‘L’이어서 그대로 해봤는데 열렸다고 했다.

의문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박영수 특검팀이 장시호씨 도움으로 최서원씨가 사용한 태블릿PC 한 개를 추가로 찾아냈는데, 그것의 잠금 패턴이 ‘L’이었다. 장씨는 “이모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모두 ‘L’로 해놨다”고 특검팀에 말했다. JTBC 기자는 법원에 자신의 스마트폰 잠금 패턴이 ‘L’이었음을 입증하는 포렌식 자료를 제출했다.

그런데도 ‘못 믿겠다’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 그들은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은 물론 포렌식 전문가까지 한통속이 돼 법원과 국민을 속였다고 한다. 그들이 의존하는 것은 ‘확률’이다. 단번에 풀 확률이 39만분의 1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계산일 뿐이다. 노르웨이대 연구원 마르테 로지가 스마트폰 4000개를 수집해 잠금 패턴을 분석했다. 왼쪽 상단에서 시작하는 게 44%, 9개 점 중에서 4개 또는 5개 점만 사용한 게 63%였다. 따라서 ‘L’이 흔히 사용되는 패턴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태블릿PC 조작설을 퍼뜨리는 이들이 제시하는, 인간 행동을 변수로 두지 않은 단순 확률 계산은 현실에서 괴리된 인식을 갖게 한다.

4·15 총선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파다하다. 물리학자인 박영아 전 한나라당 의원은 “(본 투표에 비교한) 민주당 사전투표 득표율의 차이가 서울 424개 동에서 +가 될 확률은 반반, 즉 50%다. 따라서 424개 동에서 모두 +가 될 확률은 2의 424승분의 1이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박성현 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도 일간지 인터뷰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서울 모든 동에서 민주당 사전투표 득표율이 본 투표보다 높은 게 “통계적 관점에서는 확실히 일어나기 어려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그런 의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부산·대전·광주에서 동시에 비가 내릴 확률을 네 도시의 ‘비가 온 날 수/365’를 전부 다 곱해서 계산하면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작은 수치가 나온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비가 올 확률은 그보다 훨씬 크다. 먹구름이 한반도를 덮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연관된 어떤 일을 각기 독립적인 것으로 여겨 계산하면 엉뚱한 수치가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사전투표 의향을 보인 응답자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중 29.5%, 미래통합당 지지층 중 18.7%였다. 수도권 사전투표에서 민주당이 통합당을 골고루 크게 앞지른 것을 괴이한 일로 보기 어렵다.

부정선거 주장의 핵심에는 전자개표기(공식 명칭은 투표지 분류기) 조작설이 있다. 김어준씨에게 반감을 보여 온 지인들이 뒤늦게 그가 제작한 영화 ‘더 플랜’을 칭찬하며 “거기에 방법이 설명돼 있다”고 한다. 기계가 민주당 후보 표로 분류된 표 다발에 통합당 후보 표를 섞는 조작이 성공하려면 통합당 개표 참관인이 모두 매수됐거나 한결같이 나태했어야 한다. 언론이 선거부정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이가 많은데, 참관인들이 열심히 검표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내내 봐 왔다는 것도 조작설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에 속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유권자가 곳곳에 있고, 급기야 모여서 시위까지 하는데 그대로 두는 것은 국민 통합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소송이 제기된 곳에 법원과 선관위가 신속히 재검표를 하도록 해 논란의 열기를 식히기 바란다. 물론 재검표에서 문제가 없다는 게 확인돼도 ‘표 바꿔치기’를 했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꽤 많은 이가 의심을 거둘 수도 있다. 국민 마음을 보듬는 것도 국가가 할 일이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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