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맞춤양복 선물받은 與의원

박국희 사회부 기자 2020. 5. 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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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사회부 기자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끼친 사모펀드 라임자산운용의 고객 투자금을 쌈짓돈처럼 쓰다 구속된 김봉현(46)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지방 출신이다. 지방 K대 법학과를 나왔다는 말도 있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허위 학력일 거라고 말한다.

김씨는 지연(地緣)을 이용했다. 룸살롱에서 주가조작 세력과 작전 회의를 할 때도 고향을 따지고 동향 출신을 중심으로 뭉쳤다. 고향 친구인 김모(46·구속)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뇌물을 주고 금감원의 라임 검사 계획서도 빼돌렸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는 김씨가 2016년 동향 출신의 전직 지역 언론사 사장과 함께 동향 출신 민주당 의원을 찾아간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씨는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출신으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해당 의원에게 재단사를 보내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고 고가의 맞춤 양복을 선물했다. 그 의원은 잘 알지도 못한다는 김씨에게 덥석 맞춤 양복을 받고는 언론에 "당선 축하 선물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대가성은 없었다"고 했다. '별장 성 접대' 의혹을 받은 김학의 전 차관도 대포폰 이용 요금부터 기름값까지 주변에서 받아 썼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는 논리로 1심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해당 의원도 그 정도 법적 허점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관련 기사에는 "드러난 건 양복이지만 고작 양복뿐이겠느냐" "대가 없이 왜 선물을 하나. 김씨는 자선 사업가인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우리나라에서 초면에 고가의 맞춤 양복을 선물받는 직종은 얼마나 될까. 또 이를 무턱대고 받는 공직자는 얼마나 될까. '맞춤 양복 선물'이 갖는 사회적 함의는 자명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맞춤 양복 다섯 벌과 코트를 받고 "대가성은 없었다"고 했지만 검찰은 이를 뇌물죄에 포함해 2심에서 일부 유죄가 선고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 측은 "최성해 동양대 전 총장이 조 전 장관의 청와대 민정수석 취임 축하 선물로 맞춤 양복을 보내려 했다"며 '선물 시도' 사실까지 법정에서 공격 소재로 사용했다.

김씨로부터 로비 의혹을 받은 한 친노(親盧) 정치인은 "김씨로부터 1원 한 푼 받은 적 없다"고 했지만, 김씨 체포 뒤 언론에 김씨와 주식 등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룸살롱에서 같이 어울린 사진도 나왔다. 현재까지 일부 드러난 수사 결과만 보면, 김씨는 횡령한 돈으로 상품권 5억원어치를 샀다. 애초 남의 돈으로 산 상품권이니 이를 어떻게 썼을지는 쉽게 짐작이 된다. 김씨가 또 다른 정·관계 인사에 대해 어느 정도 로비를 했는지, 이를 검찰에서 얼마나 진술할지는 수사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로비의 대가성 여부도 접대 당사자가 "있다" "없다" 할 게 아니라 사법기관이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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