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서 뒤집은 '지하철 몰카 사건'에 판사들 술렁인 까닭

양은경 기자 2020. 5. 8. 03: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초동 25시]

대법원이 지난달 원심(2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 선고를 한 몰래 카메라 성범죄 사건을 두고 판사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과거 대법원 판례에 따른 당연한 판결이라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이 사건 2심 재판장이 과거 무죄를 선고한 '레깅스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계속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달 9일 지하철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몰카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박모(36)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심은 박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었다. 그런데 2심은 경찰이 이 사건 핵심 증거인 휴대전화를 확보한 과정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위법 수집 물증은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박씨의 휴대전화를 범행이 발각된 현장에서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았다. 이에 대해 2심은 "사후에라도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했다"고 했다. 형식상 임의제출이더라도 막강한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요구하는 임의제출은 강제성을 띤 '압수'에 가깝기 때문에 사후 영장을 받는 것이 적법하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달 2심을 파기했다. 범행 현장에서 임의제출 받은 증거물은 사후 영장을 안 받아도 된다는 과거 대법원 판례를 들어 파기했다. 대법원이 판례에 따라 선고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적법성을 점점 까다롭게 보는 게 최근 판결 추세다. 이런 추세와 걸맞은 하급심 판결에 대해선 대법원은 기존 판례와 달라도 전향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을 두고 판사들 사이에서 "대법원이 과거 판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사건 2심 재판장인 오원찬 부장판사는 지난해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몰래 찍은 남성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레깅스 입은 사진이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판결을 두고 그는 판사 연구 모임인 '젠더법연구회'와 일전(一戰)을 치렀다. 이 연구회 일부 판사가 판결문에 첨부된 레깅스 사진이 2차 피해를 준다며 열람 제한을 요구했었다. 오 부장판사는 "재판권 침해"라며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오 부장판사의 몰카 판단을 깬 대법원 판결의 주심은 이 연구회 회장 출신인 민유숙 대법관이었다. 대법원은 "대법관 네 명이 합의해 나온 결론"이라며 "레깅스 판결과 연관 짓는 것은 심한 억측"이라고 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