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 아닌데.. 울며 겨자 먹기로 온누리상품권 받는 가게들

박소정 기자 2020. 5. 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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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되니까 손님이 온누리상품권 주시면 그거라도 받으려고 합니다."

지방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의 가게는 원칙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받으면 안되는 ‘비가맹점’이지만, 최근 들어 상품권을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로 손님의 발길이 끊긴데다 그나마 드문드문 오는 사람들마저도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되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부쩍 많아져서라고 했다. A씨는 "옆집 가게가 받길래 우리도 그냥 받아주고는 있다"면서 "쌓인 상품권을 (비가맹점이라) 현금으로 교환할 수도 없고, 요새 온누리상품권 때문에 골치 아프다"라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코로나 영향으로 침체된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온누리상품권을 다각도로 활용하면서 온누리상품권을 소비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0일부터 온누리상품권을 1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자, 판매처 곳곳에는 ‘재고가 소진돼 판매가 불가하다’는 안내문이 붙을 정도로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일부 지자체는 재난지원금을 온누리상품권으로 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A씨처럼 상품권 사용처로 등록되지 않은 비가맹점 점주들까지 온누리상품권을 받고 있다. 무턱대고 상품권을 받아든 비가맹점 점주들은 온라인을 통해 서로 ‘온누리상품권 현금 교환 비법’을 공유하거나, 현금화를 도와줄 가맹점 점주를 구하고 있다.

◇"온누리 교환 방법 부탁합니다"

직접 현금화를 할 수 없는데도 비가맹점 점주들이 상품권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매출 타격을 어떻게든 메꿔보기 위해서다. 비가맹점 점주 사이에서는 "손님이 없어서 뭐라도 주시면 받으려고 한다" "진짜 애매하긴 하지만 요즘 같은 때 온누리상품권이라도 안 받기 뭣하다" "주변 경쟁업체들이 다 받으니 우리만 안 받을 수도 없다"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온누리상품권이 잘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애초에 자신의 점포가 가맹점 등록이 가능한 조건인지 몰랐던 점주가 다수인 탓도 있다. 당초 전통시장 수요 진작을 위해 만들어진 상품권인 만큼 가맹점으로 등록하기 위한 점포는 현행 전통시장법에서 규정하는 전통시장·상점가·상권활성화구역에 위치해야 한다. 그마저도 주점, 주류 소매업, 부동산업, 노래방 등 일부 업종은 등록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상품권을 받아뒀다가 뒤늦게 가맹점 등록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 낭패를 보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멋모르고 200만원 정도 받아놨는데 위치상 가맹점 등록이 불가능하다네요. 어떻게 하나요" "뒤늦게 알아보니 전통시장 안쪽이 아니라서 가맹점 등록이 안된다고 하네요"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혹은 ‘잘 몰라서’ 상품권을 받아든 비가맹점 점주들은 온누리상품권 처치 방법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전통시장에서 그냥 생활비로 쓰세요" "용돈이라 생각하고 장볼 때 그냥 쓴다" 등 현실적인 조언이 있는가 하면, "가맹점인 납품 거래처에 대금 대신 상품권을 지급하면 된다" 등의 비법도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현금화를 도와줄 가맹점 점주를 찾아 상부상조하는 이들도 있다.

◇상품권 받는 것 자체는 문제 없지만, 가맹점·시장상인회 통한 환전은 ‘불법’

비가맹점에서 온누리상품권을 받는 것은 원칙에선 벗어나지만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향후 온누리상품권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상품권을 받은 비가맹점 점주가 가맹점에서 직접 물건을 사는 데 쓰거나 납품 대금으로 사용하는 것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상품권 거래 질서를 관리·감독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온누리상품권의 목적은 결국 전통시장 활성을 위한 것"이라며 "가맹·비가맹사끼리 현금화를 위해서 서로 물건을 사고 팔아주는 방식이라고 해도 결국엔 전통시장 내로 상품권이 흘러가게 되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가맹점 점주가 전통시장 내 가맹점이나 시장상인회를 통해 현금화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들이 정당한 용역이나 물품 지급 없이 온누리상품권을 수취하거나 환전하는 부정유통이 적발되면 가맹취소와 함께 최대 2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가맹점 점주가 시중은행 15곳(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전북은행, 경남은행, 기업은행, 농협은행, 수협중앙회, 신협, 새마을금고, 수협은행, 우체국)에서 가맹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 현금화할 수 있다. 시장상인회를 통해 온누리상품권을 일괄수거해 현금 교환도 가능하다. 그러나 ‘상품권 깡’ 등 부정유통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한도가 제한돼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 사태로 사정이 어려운 만큼 소상공인들을 상대로 한시적으로라도 온누리상품권 가맹 대상을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비가맹점 점주는 "지금 온누리상품권이 엄청 들어오는데 처치곤란이다. 재난지원금을 온누리상품권으로 뿌리면 앞으로 얼마나 더 심해질지 걱정"이라며 "가맹점 대상을 코로나 때만이라도 모든 자영업자에게 허용해주든지 어떻게든 먹고 살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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