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조선일보

마윈도 두손 들었다, 독선적 중화사상 물든 중국 10代들

이벌찬 기자 입력 2020.05.09. 06:44 수정 2020.05.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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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올라선 조국에 자부심 커.. 黨의 사회주의 사상 맹목적 추종
자본주의 자리잡은 중국 현실과 맞지 않는 목소리 내는 일 흔해
애국주의 강해 주권문제도 예민
지난해 6월 장쑤성 교육부가 주최한 애국 행사에서 링링허우 세대인 중학생들이 국기를 흔들고 있다./양즈완바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56)이 이달 초 동영상 사이트 ‘비리비리(嗶哩嗶哩·bilibili)’에 4분짜리 연설 영상을 올렸다가 급하게 삭제했다. 영상에서 마윈은 “비즈니스는 가장 큰 공익사업이며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틀 만에 이 영상에 1만6000개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심한 욕과 비난이었다. 댓글창에는 “착취하는 자본가의 헛소리” “지주(地主)께서 농노(農奴)들을 마음껏 부리려고 명분을 만들었네” 등의 글이 달렸다. 마윈이 지난 3월 미국에 마스크 100만개를 기부한 것을 두고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댓글도 있었다.

이를 두고 중국 인터넷 매체들은 일제히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업가인 마윈도 링링허우 비위는 맞추기 힘들다’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비리비리’는 링링허우(零零後·2000~2009년 출생 세대)의 대표적인 인터넷 아지트다. 회원 1억5000만명 중 영상 콘텐츠를 올리거나 댓글은 다는 사용자 대부분이 링링허우인 10대로 알려져 있다. 중국 매체들은 링링허우 세대의 투철한 사회주의 의식이 마윈의 자본주의식 사고방식에 반감을 갖게 했고, 강한 애국 성향이 미국에 의료 물자를 지원한 마윈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게 했다고 분석했다.

조선DB

링링허우는 약 1억6400만명에 달한다. 첫 주자인 2000년생이 지난해 대학 캠퍼스에 첫발을 내디뎠다. 세계 강대국으로 올라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주창하는 사회주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된 중국 사회에 살면서도 스스로를 자본을 갖지 못한 ‘무산 계급’으로 여기고 ‘유산 계급(사업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중국 매체들조차 “링링허우가 교과서에 나온 내용만 가지고 실생활에서 교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우려된다”고 언급할 정도다.

마윈이 이달 초 비리비리(bilibili)에 올린 영상에서 "비즈니스 그 자체가 가장 큰 공익 사업"이라고 말하고 있다/비리비리 캡처

이들의 이런 성향은 개방적인 ‘바링허우(八零後·1980~1989년 출생 세대)’와 개인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주링허우(九零後·1990~1999년 출생 세대)’와 대비된다. 바링허우는 1978년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의 목격자로, 세계와 단절됐던 중국이 외국 자본을 흡수하며 급속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주링허우는 개혁·개방의 결실인 2000년대 경제 호황기를 누린 데다 인터넷·해외여행 덕분에 개인주의가 강하다. 이에 반해 링링허우는 중국이 중심이 된 세계에서 컸다.

시진핑 시대의 과도한 애국주의 교육도 링링허우의 토양이다. 2013년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직후 중국 정부는 애국주의 교육을 꾸준히 강화했다. 청(淸) 말 이후 외세 침탈로 굴욕을 겪었지만, 이제 중국은 흔들 수 없는 강국이 됐다고 배운다. 상하이에서 대학을 다니는 난모(19)양은 “어릴 때부터 교과서와 시험 문제에 중국 성공 신화와 애국자 스토리가 단골로 등장했다”고 했다.

중국 정부 기조도 이들의 애국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에서 힘을 기른다)’ ‘대국굴기(세계 강국으로 일어난다)’ 위주였던 이전 시기의 정치 구호가 링링허우 때는 ‘만방래조(萬邦來朝·주변국이 조공을 바치러 중국에 온다)’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링링허우의 애국주의는 유례없이 강하다. 특히 홍콩·티베트 같은 주권 문제에 예민하다. 미국 프로농구(NBA) 열성 팬이던 링링허우는 지난해 10월 휴스턴 로키츠의 단장이 ‘홍콩 지지’ 의사를 밝히자 집단으로 ‘NBA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다.

알리바바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키워 '중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인'으로 불리는 마윈이 최근 링링허우 세대(중국 10대)의 비판 대상이 됐다. 사진은 지난 2015년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마윈의 모습./조선DB

링링허우는 중국 유명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세력이 됐다. 지난해 4월 마윈은 “996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전생에 덕을 쌓아 얻은 복”이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996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 일하는 강도 높은 근로 문화를 말하는데, 마윈의 발언 영상에 “노동자가 노예냐” “너나 그런 복 누려라”는 비난 댓글이 대거 달렸다. 중국 간판 교육업체 신둥팡의 위민훙(俞敏洪) 최고경영자(CEO)는 2018년 8월 링링허우를 향해 “사회적 도덕, 법규 준수 관념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가 공개 사과해야 했다.

중국 주간지 '신주간(新周刊)'은 “링링허우는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나 (그들이)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부모와 사회가 대신 내렸다”며 “링링허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행운을 타고났지만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링링허우는 중국에서 가장 독선적인 세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키워드

☞바링허우(八零後)

1980~1989년 출생해 1978년 시작된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목격한 세대. 이전까지 세계와 단절됐던 중국이 외국 자본을 흡수하며 급속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주링허우(九零後)

1990~1999년 출생해 개혁·개방의 결실인 2000년대 경제 호황기를 누린 세대. 어릴 때부터 상대적으로 풍요로웠고, 해외여행과 인터넷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다.

☞링링허우(零零後)

2000년 이후 출생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기억이 유년 시절을 관통하는 세대. 세계 강대국으로 올라선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중국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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