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엄벌하는 사법체계 개선할 것" 이탄희의 포부

김원진 기자 2020. 5. 9. 14: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가난한 이에게 불합리한 사법체계 개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현대판 장발장방지법 추진

가난과 빈곤에 주목하는 국회의원은 드물다. 국회에서 노동이나 재벌개혁 이슈에 집중하는 의원은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일상에서 눈에 띄지 않는 가난과 빈곤을 해결하려고 파고드는 의원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빈민운동가였던 고 제정구 의원 이후로는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42)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8개월간 공익변호사로 활동했다. 빈곤복지팀 소속이었다. 그는 공익변호사 시절 연재한 언론사 칼럼 9편 중 4편에서 빈곤과 가난을 다뤘다. 이 당선인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이들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누구를 돕는다는 느낌보다 나와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윗선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은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당선인은 21대 국회에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를 지난 4월 30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강윤중 기자

가난을 외면하는 사법체계

가난과 사법체계는 이 당선인의 관심사가 집중되는 영역이다. 그는 후보자 시절 ‘이탄희 3법’을 내걸었다. 이중 ‘현대판 장발장방지법’에는 가난한 이들이 사법체계에서 겪는 불합리를 고치려는 세 가지 방안이 담겼다.

이 당선인은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구속할 수 있게 한 현행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형사소송법은 주거가 일정치 않은 경우를 별도의 구속 사유 중 하나로 정한다. 고시원·여인숙처럼 일정한 주거로 볼 수 없는 곳에 거주하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당선인은 “현행법에 규정된 도주 우려만 고려하면 되지 굳이 주거가 있는지는 따질 필요 없다. 집 없는 이들을 옥죄는 과잉조항”이라며 “국회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적 구속제도의 도입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전자팔찌·가택연금·신원보증인 등의 조건을 달아 조건부 석방을 하는 방식이다. 그는 “현재는 석방과 구속의 선택지밖에 없어서 판사들이 구속을 선택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임시보호소를 만들어 구치소가 아닌 보호소에서 지낼 수 있게 하는 제도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본다. 대안적 구속제도의 하나로 구치소에 들어가는 대신 임시보호소에서 잠시 머무는 방안이다. 다만 재판 신속처리절차가 함께 도입돼 재판이 빨리 끝나야 임시보호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임시보호소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구치소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마다 감수성 차이가 있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한국사회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현대판 장발장방지법에는 복지시스템과 형집행제도를 연계하는 방안도 담겼다. 그는 공익변호사 시절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고등학생의 사연이었다. 부모가 구속됐지만 누구도 부모의 근황을 자녀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혼자 학교에 다녀오고, 밥을 챙겨먹는 일상이 반복됐다고 한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에게 이탈한 아동을 발견하면 시·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현재 부모가 구속되더라도 지자체에 즉시 통보되는 제도는 없다. 이 당선인은 “부모의 구속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자녀까지 트라우마에 노출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복지시스템과 형집행제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그는 복지시스템과 형집행제도의 조화는 입법까지 가지 않고 행정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너무 구체적인 안을 국회에서 제시하면 부처 공무원들이 조목조목 반대 근거를 들고 와 집요하게 설득하곤 한다”며 “구체적인 현실은 법무부·보건복지부 관료들이 제일 잘 아니 아이디어를 제시해달라는 방향으로 접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강윤중 기자

사법행정 ‘가난’ 해결 도울 수 있어

법관들은 대개 “사법의 영역에서 가난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한다. 판사는 형을 결정할 뿐, 딱히 가난과 빈곤을 구제할 수단이 없다는 의미다. 이 당선인은 “재판에서 가난과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판사들의 답답함에 절반은 동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판사들한테 문제의식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판사는 재판하고 결정하는 사람이지 제도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제도를 바꾸려고 할 때는 국회에서 의원들의 동의를 받으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탄희 3법에 포함된 양형개혁법도 가난한 이들이 쉽게 처벌받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는 양형 결정 단계에 전문가·과학자·피해자를 참여시킬 것을 주장한다. 양형 판단 주체를 다양화한 뒤 형량 결정의 재량권을 넓히려는 의도다. 그는 생계형 범죄로 불리는 절도 등의 법정형 하한을 내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생계형 범죄의 대표 사례인 특정범죄가중법상 상습절도는 형의 하한이 2년이다.

이 당선인은 판사 시절 맡았던 생계형 절도 범죄 사건을 들려줬다. 당시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졌다. 가난이 범죄의 동기였고, 배심원들도 딱한 사정을 공감했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배심원들이 다양한 양형 의견을 냈는데 대부분 법정형의 하한보다 낮게 양형을 써냈다”며 “법정형의 하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배심원들의 의견을 따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계형 범죄는 처벌로 해결해야 할 게 아니라 피고인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생활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사법행정 개혁으로 가난을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재판이 아닌 사법행정에서 할 수 있는 건 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대표 사례로 법원행정처에 쌓인 방대한 데이터 공개를 꼽았다. 사법 영역에서 축적된 빈곤 통계와 사건 사례를 사법부가 공개하면 빈곤 해결을 위한 제도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예를 들어 통계가 공개되면 주거부정으로 구속된 이들의 거주 형태나 범죄혐의, 양형 등을 분석해볼 수 있다.

이 당선인은 “지금까지는 사법행정이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돼 왔다”며 “사법행정에 사회복지나 통계 전문가 등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빈곤 해결에 도움이 되는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사법개혁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