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돼도 안 죽는다는데, 환장하는 거죠"..이태원 상인들 '분통' [김기자의 현장+]

김경호 2020. 5. 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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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럽 코로나19 확산에 주점 등 임시휴업 돌입 / 이태원 상인들..또 확진자 발생 '분노' / 문 연 주점마다 빈 테이블 만 / 이태원역 거리는 붉은 등이 켜진 빈 택시들이 즐비 / 정은경 '10일 정오 기준 확진자 현재 총 54명' / 정세균 총리 "특정 커뮤니티 비난 방역에 도움 안돼"
지난 9일 늦은 밤, 음식점과 술집이 밀집한 이태원 골목은 무척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젊은 시기라고 해도 밤새 버틸 수 있나요? 좁은 곳에서 몇 시간씩 땀 흘리고 뛰고 놀고, 또 다른 클럽으로 옮겨 다니고, 씻을 곳은 좁은 화장실뿐인데, 잘 씻겠어요? 또 땀에 흠뻑 젖은 채 새벽 4~5시쯤 대중교통을 이용해 그대로 집에 가겠죠.”

지난 9일 밤 11시 30분쯤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유흥업소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하루가 지난 이태원은 날씨까지 궂으면서 무척 한산했다.

지난 9일 늦은 밤, 서울 용산구 유흥시설 밀집지역 이태원 거리는 무척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태원 한 호텔 뒤 골목길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예전 모습과 달리 텅 빈 거리로 변해 있었고, 거리에는 클럽 음악 소리만 요란했다. 문을 닫은 술집도 있는 반면 영업을 계속하는 술집도 있었다. 문을 열었다고 해서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닌 듯했다. 손님을 애타게 찾는 듯 문을 활짝 열고 요란한 클럽 음악과 화려한 조명으로 시선을 끌려고 했지만 공허하기만 했다. 손님이 있는 술집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었다. 있다 하더라도 한두 테이블만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주점 주인들은 빈 테이블에 앉아 손님이 오기를 바라는 듯 비오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9일 늦은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 클럽 입구에는 집합금지명령서가 부착 돼 있다.
 
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뭐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다 살다 이렇게 힘들게 장사하기는 처음입니다”라며 “코로나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합니다. 임대료를 생각하면 잠이 안 와요. 피가 바짝바짝 마르고 타 들어가는 심정이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를 손에 쥔 그는 “우리도 그런 친구 덕에 술장사해서 밥 먹고 살지만, 즐길 때 즐기더라도 때와 장소가 있지. 코로나 북새통에 좁은 클럽에서 땀 흘리고 춤추고 소리 지리는데, 멀쩡할 수 있나요”라고 인상을 찌푸렸다.

지난 9일 늦은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사이 4차선 도로에는 붉은 등이 켜진 빈 택시들이 즐비했다.
 
이태원 상인들은 다달이 터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소식에 불안·걱정·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쏟아냈다.

이태원 소방서 인근 골목길에서 만난 한 상인은 “어떻게 된 게 한 달을 조용히 못 넘깁니다”며 “안정될 만하면 터지고, 이젠 좀 잠잠해지나 싶으면 또 터지고, 미칠 지경입니다”며 목소리 높였다.

앞서 지난 3월에는 한남동에 거주 한 외국인 A(42세 남성, 용산구 8번 환자)씨가 자가격리 조치를 위반하고 거리를 활보해 고발조치 됐다. 지난달에는 이태원 인근 서울 블루스퀘어 공연장에서 확진자는 총 2명이 발생했다. 오페라를 공연 중이던 발레댄서 1명이 최초 확진판정을 받았고, 이외 미국인 1명이 추가 발생했다.

지난 9일 늦은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 유흥주점 입구에는 유흥시설 준수사항 안내문이 떨어진 채 방치 돼 있다.
 
이 상인은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답답합니다”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정을 막 넘긴 10일 일요일 새벽 0시 30분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는 무척 한산하기만 했고, 우산을 든 시민들은 마스크를 쓴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텅 빈 거리는 평일보다 더 한산했다. 마스크를 쓴 외국인 보다 벗고 활보하는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이태원역 사이 4차선 도로에는 붉은 등이 켜진 빈 택시들이 즐비했다. 지나다니는 차량 보다 정차된 택시들이 더 많아 보였다. 한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서행하면서 손님을 찾는 택시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1일 저녁부터 2일 새벽까지 용인 66번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다녀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의 9일 늦은 밤 모습.
지난 1일 저녁부터 2일 새벽까지 용인 66번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다녀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클럽의 9일 늦은 밤 모습. 유리문에는 “임시휴업 안내사항” 안내문이 부착 돼 있다.
 
택시정류장 인근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택시기사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또 터졌으니, (한숨) 하소연한다고 달라지겠습니까?”라며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털었다. 그러면서 “아마 그날 클럽 갔던 애들이 택시도 타고 집에 갔을 텐데, 걱정이네요”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태원 소방서 인근 케밥 가게는 불이 켜진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자정이 넘어서도 북적이던 유명 음식점도 이날은 손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만난 한 음식점 직원은 “클럽을 찾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도 잘 됩니다. 클럽에서 놀기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라며 “서빙할 때 무심코 듣다 보면 겁이 나기도 합니다. ‘감염돼도 안 죽어 괜찮아. 걱정 마’라고 해요. 듣고도 놀랬죠”라고 말했다.

지난 9일 늦은 밤, 이태원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점도 임시 휴점에 들어갔다. 입구 유리문에는 ‘임시 휴점 안내문’이 부착 돼 있다.
이어 그는 “이태원 클럽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밀폐된 클럽이 많아요”라며 “뭐니 뭐니 해도 하루빨리 안정을 좀 찾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한편 10일 정오 기준으로 서울 이태원 한 클럽 코로나19 확진자 관련해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는 현재 총 54명이며, 추가 접촉자 파악과 감염원에 대한 역학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 34명 중에서 이태원 소재 클럽 관련 확진자는 24명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이태원 클럽을 직접 방문한 사례는 18명, 이들의 접촉자는 6명으로 집계됐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10일 이른 새벽,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는 불이 켜져 있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10일 이른 새벽,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 응급실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감염경로별로 분류하면, 지표 환자(최초로 인지된 환자)인 용인 66번 환자를 포함해 이태원 클럽 직접 방문자가 43명이고 가족·지인·동료 등 기타 접촉자가 11명이다.

정 본부장은 “이태원 클럽 집단발병은 밀폐되고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 밀접한 접촉으로 발생한 집단감염 사례”라며 “5월 1일 첫 발병 이후에 일주일 정도 지났지만 벌써 54명의 확진자가 확인됐다”고 우려했다. 이어 “7명의 확진자가 지역사회에서 가족, 지인 등을 전염시켜 11명의 2차 전파 사례가 보고될 만큼 전파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전염력이 높은 특성을 보여준다”고 경계했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것과 관련 “확진자를 빨리 확인하고 격리 조치해 2차·3차 감염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 9일 늦은 밤, 서울 용산구 유흥시설 밀집지역 이태원 거리는 무척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 총리는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비난은 적어도 방역의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밀폐된 공간에서 가까이 오래 있으면 누구나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접촉자가 비난을 두려워해 진단검사를 기피하게 되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총리 발언은 이태원 한 클럽이 성 소수자들이 주로 찾는 이른바 ‘게이 클럽’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에서 성 소수자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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