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수업이 바꾼 교실.. 새 학기 갈등 사라졌지만, 얕은 친밀감 '한계'

하지수 조선에듀 기자 2020. 5. 11.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달라진 교실 속 '관계 맺기'
새 학기 최우선 과제는 '친구 사귀기'
온라인 플랫폼 활용해 소통하며
내향적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친해져
신경전 없어 교우 관계 스트레스 '뚝'
학생 다수 "선생님과 대화 조심스러워"
상담 주저.. 형식적 관계로 느끼기도
서울 용산초등학교에서 원격 수업이 이뤄지는 모습. 온라인 개학으로 학생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수업을 듣고 친구, 교사와 관계를 맺는다./김종연 기자

새 학년 새 학기, 설렘과 긴장감으로 가득해야 할 교실이 텅 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학생들은 예년과 달리 온라인에서 새 학기를 보낸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교실이 바뀌면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학생들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친구, 교사와 소통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상'이라는 말, 학생들의 인간관계에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새 학기 기 싸움, 조별과제 갈등 사라져

새 학기 학생들의 최우선 과제는 친구 사귀기다. 학기 초 같이 다닐 친구를 구하지 못하면 일 년간 혼자 지내야 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온라인 개학으로 친구들과 대면해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들은 대안으로 본인들에게 친숙한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친구들과 교류하며 관계 단절로 인한 불안감을 없애고 친구 사이의 벽을 허문다. 기존에는 학교에서 친해진 다음 소셜미디어 친구를 맺었다면, 반대로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친밀함을 쌓는 방식이다.

최여원(14·대구)양은 "다들 소셜미디어로 친구 사귀는 데 익숙하다"면서 "특히 낯을 가리는 성격일 경우 이런 방식을 더욱 선호한다"고 전했다. 이소정(16·부산)양은 "페이스북 친구 추천에 같은 학교 학생이 떠 친구 신청을 하고 대화를 나누며 친해졌다"면서 "만약 페이스북이 아닌 학교에서 먼저 만났다면 각자 다른 중학교에서 왔고 반도 달라 가까워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장모(15·경기 양주)양은 "오프라인에서 함께 모여 있을 때는 모둠 활동을 자주 가져 이야기 소재가 다양했다. 사소한 급식 메뉴 얘기로도 반 친구들끼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만나면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 적어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친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그 덕에 오히려 교우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했다. 충남에 거주하는 중학교 3학년 이모양은 "공동 과제를 하면서 친구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원격 수업에서는 조별과제를 내주지 않는다. 무임승차(분배한 일을 하지 않고 팀에 묻어가는 행동)하는 조원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거나 모임을 하며 의견이 다른 친구와 충돌할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학기 초 빈번하게 나타나는 기 싸움 역시 사라졌다. 기존에는 학생 간 미묘한 신경전이 말싸움이나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잦았다. 경찰청은 이를 고려해 학기 초 3~4월에 학교폭력 집중 관리에 나선다. 최모(16·경기 수원)군은 "기 싸움에서 한 번 밀리면 반 친구들이 얕잡아 보기 때문에 새 학기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며 "원격 수업을 할 때는 친구들과 자주 부딪치지 않아 부담이 없다"고 전했다.

◇"선생님 성격 모르니 말 한마디도 조심"

학생·교사 간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권모(15·경기 화성)양은 "새 학기에는 선생님의 말투나 행동을 보면서 어떤 성격인지 파악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면서 "혹시나 선생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다가 예의 없는 학생으로 낙인찍힐까 봐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도 여러 번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모(15·서울)양 역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와 달리 속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다"며 "선생님께서 언제든 편히 연락하라고 했지만 상담을 망설이게 된다"고 전했다.

교사들의 생각도 학생들과 비슷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박모(40) 교사는 "문자와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깊이 있게 학생을 이해하기 어렵고 학생과 교사 간 피상적인 관계가 유지된다"면서 "학생 개개인에 맞춘 생활, 학습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의 장점을 굳이 꼽자면 교사의 생활지도가 이전보다 줄어 학생, 교사 간 갈등이 사라졌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일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더라도 학생·교사 간의 관계는 교우 관계를 형성할 때보다 친밀감을 형성하기가 더 어렵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친구와의 관계는 비형식적, 교사와의 관계는 형식적이라고 여긴다"며 "같은 플랫폼으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형식적인 관계에서는 비형식적인 관계보다 대화 범위가 좁고 친밀감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등교 수업 전 교사들이 학생과의 친밀감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무리 학습 진도율이 늘었어도 학생들의 마음 문이 닫혀 있으면 추후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될 때 교육과정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온라인 개학으로 챙길 게 늘어나 바쁘겠지만 문자와 이메일, 영상통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과 1대1 관계를 맺으며 친밀함을 쌓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오프라인 교육을 병행하는 스마로그형(스마트와 아날로그의 합성어)형 교육이 강화될 것"이라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스마로그형 교육을 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