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폭행에 극단적 선택한 경비원 소식에 '임계장' 저자 "사회적 타살"

김지환 기자 2020. 5. 1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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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씨(63)는 11일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소식을 접하고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날 경향신문에 보낸 e메일에서 “이런 억울한 죽음 막아보려고, 제가 병상에서 모르핀 진통제를 맞아가며 책을 썼는데. 세상은 그 어떤 외침도 다 외면하고 마는 것일까”라며 이같이 밝혔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해고된 박모씨가 2018년 1월16일 자신의 맡았던 경비업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임계장 이야기>는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공기업 사무직으로 38년간 일하다 퇴직한 60세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시급 노동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쓰기 시작한 3년간의 노동일지를 모은 책이다. 조씨는 2016년 퇴직 후 4년째 시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버스 회사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겸 경비원을 거쳐 버스터미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쓰러져 해고됐다. 7개월간의 투병 생활 이후 지금은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씨는 “저의 책 77페이지에 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오래된 아파트, 이중·삼중 주차. 폭언·폭행”이라며 “억울해도 말할 곳이 없는 설움. 노조도 없고, 노동청이나 구청에 신고해도 아파트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나이 60이 넘어 아파트 경비원 하는 노인이 살아보고자 아파트 경비를 했지, 이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고령이 되면 세상을 살아온 연륜이 있어 충동적으로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거의 없다. 억울하고 분해도, 말할 곳도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어 그냥 스스로를 던진 것”이라고 했다.

조씨는 “제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첫 날, 아파트 경비원 한 분이 투신하였는데, 또 다시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며 “저의 동료였던 60~70대의 아파트 경비원들께서, 자기들은 글이 부족해 쓰지 못하니, 그분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가 대신 책으로 써 달라고 저를 격려했고, 그 격려에 힘입어 <임계장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다. 아무곳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 제가 <임계장 이야기>를 통해 아파트 경비원의 외침을 세상에 전했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는 것 같다”며 “이제 제 책은 쓸모가 없어졌다. 아무 소용도 닿지 않고, 세상이 들어주지도 않을 일을 해서 동료들에게 죄송하고, 제 자신의 무기력에 한없이 괴롭다”고 했다.

조씨는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너무 쉬워서 ‘고다자’라는 준말로 불리는 아파트 경비원. 그리고 청소원, 주차관리원들 그리고 이천 물류창고에서 안전관리자도 없이 철골 구조물에 갇혀 불길을 피하지 못한 노동자들. 이들이 바로 고다자”라며 “그러나 그 분들 모두 우리 이웃이다. 내 친구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내왕이 뜸한 내 친척 중의 한 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아파트 경비원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하였는지 살피고 헤아려달라”며 “분명한 사회적 타살이다. 그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앞서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10일 새벽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50대 후반 ㄱ씨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ㄱ씨는 현장에 ‘억울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등에 따르면 ㄱ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최근까지 근무하던 아파트 입주민 ㄴ씨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아래는 e메일 전문.

『저는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입니다. 오늘 밤늦게 퇴근하고 나서야 뉴스를 보고,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이런 억울한 죽음 막아보려고, 제가 병상에서 모르핀 진통제를 맞아가며 책을 썼는데. 세상은 그 어떤 외침도 다 외면하고 마는 것일까요?

저의 책 77페이지에 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오래된 아파트.. 이중 삼중 주차... 폭언 폭행.... 억울해도 말할 곳이 없는 설움. 노조도 없고, 노동청이나 구청에 신고해도 아파트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나이 60이 넘어 아파트 경비원 하는 노인이... 살아보고자 아파트 경비를 했지, 이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했겠습니까? 고령이 되면 세상을 살아온 연륜이 있어 충동적으로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억울하고 분해도, 말할 곳도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어... 그냥 스스로를 던진 것입니다. 너무 불쌍합니다.

착한 분이었다고 해요. 법 없이도 살 분이었다고 주위 동료들이 말하네요. 아, 돌아가신 분이 남긴 유서가 보도되었습니다. 유서에 쓰여진 몇 자 안되는 글씨에 눈물이 계속 납니다.

제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첫 날, 아파트 경비원 한 분이 투신하였는데, 또 다시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동료였던 60~70대의 아파트 경비원들께서, 자기들은 글이 부족해 쓰지 못하니, 그분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가 대신 책으로 써 달라고 저를 격려하였습니다. 그 격려에 힘입어 임계장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곳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 제가 임계장 이야기를 통해 아파트 경비원의 외침을 세상에 전했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책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아무 소용도 닿지 않고, 세상이 들어주지도 않을 일을 해서 동료들에게 죄송하고, 제 자신의 무기력에 한없이 괴롭습니다. 제깐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한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제가 아파트에 근무할 때 만났던 대다수 주민은, 선량하고 상식(常識)을 가진 시민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실상을 아직 몰라서 그렇지, 현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동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책이 나온 이후에, 이런 일이 다시 벌어졌습니다. 제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할 때 갑질을 가장 심하게 했던 김oo에 대해 책에 썼습니다. 강북구 아파트에서 늙은 경비를 구타한 주민은 그 김oo보다 훨씬 더 악한 사람입니다. 저는 김oo가 무릎 꿇고 빌어라고 할 때, 그 때, 정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삶의 의지란 그런 상황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때, 저는 저의 노동이, 경비원이라는 직업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하려니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탈고에서 출판에 이르기까지 1년 넘게 걸렸던 이유가 그 망설임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제 가족이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 분명히 아파할 것 같아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훨씬 적은 제가 이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이것이라 생각하여 책을 냈습니다. 제가 진솔하게 사정을 알리면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개선이라도 분명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무기력함을 절감합니다.

노인 노동자가 아프면 무조건 “노환”이라 하더군요, 그리고 바로 해고합니다. 일을 하다 부상을 입어도 마찬가지로 노환이라 합니다. 그러면 서울에서 생을 마감하신 이 경비원의 죽음도 노환인가요? 아닙니다.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모두 임계장들입니다. 임시계약직 노인장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너무 쉬워서 “고. 다. 자.”라는 준말로 불리는 아파트 경비원...

그리고 청소원, 주차관리원들. 그리고 이천 물류창고에서 안전관리자도 없이 철골 구조물에 갇혀 불길을 피하지 못한 노동자들... 이들이 바로 고다자입니다. 그러나 그분들 모두 우리 이웃입니다. 내 친구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내왕이 뜸한 내 친척 중의 한 명일 수도 있어요. 노인 근로자가 450만명입니다.

노인 노동자의 문제는, 노인이라 불리는 고령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노인 노동 문제는 청년 비정규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청년들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노인이 되어 일하고자 원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급노동자로 일했던 다섯 곳의 일터에서 만난 경비원 동료들은, 자기 자녀들을 비정규직 안 시키려고, 그런 이유 하나로 일터로 나오는 분이 아주 많았습니다. 자기 자식을 비정규직 시키지 않으려고 늙은 아비가 비정규직이 된 것이지요. 문과대학 졸업자의 10%만이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현실에서, 내 새끼는 비정규직 안 시키려고... 그래서 내 자녀가 정규직 취업할 때까지, 공무원 시험 합격할 때까지.. 기약없는 세월을 매연, 배기가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오늘도 일하는 노인 노동자들입니다. 자신의 자녀를 비정규직 시키지 않겠다는 부모의 소망을 이기심이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부모된 이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므로.

제가 고층빌딩에서, 또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일할 때 그 빌딩과 터미널을 움직이는 인력의 80%가 비정규직 청년들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저를 경비아저씨라고 친근하게 여겨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들의 현실과 청년들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난 이 청년분들도 이 “고. 다. 자” 인력,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인력이었습니다. 헐값에 젊음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부담주지 않으려 일터로 나와 일과 공부를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청년과 노인이 “고다자”라는 어이없는 동의어로 묶여 있었습니다.

“노동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의 가치”는 서로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동 자체의 가치”는 모두가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동이 신성한 것입니다.

엊그제까지 아파트 경비원으로써 일하며, 그 동료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썼던 제가 이제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 여려분께 호소합니다.

이번 아파트 경비원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하였는지 살피고 헤아려 주십시오. 세상은 예전처럼 찰나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다시 언젠가 억울한 죽음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죽음에 대해 무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노동, 고용, 복지, 안전을 담당하는 정부부처가, 수사를 담당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주십시오. 그리고 이 사회의 건강한 시민들이 억울한 죽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번에도 이것을 그 흔한 “갑질” 중의 하나라고, 그냥 노인 경비원 하나 죽은 일이라고,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됩니다. 분명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그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초등학생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진 피맺힌 유서, 서너 줄밖에 안되는 마지막 외침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이런 일을 막아보고자 혼신을 다해 노력해 보았지만 너무도 무기력한 노인의 한 사람이라는 슬픔이 밀려옵니다. 혼자서 엉엉 울다가 문득 이렇게라도 호소하는 것이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지금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빈소에 조문도 갈 수 없습니다. 하루를 쉬려면 대체근무자를 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돌아가신 경비원의 심정만은 제가 알 수 있습니다. 그분도 살기 위해 노동을 한 것이지 그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0.5.11. 02:00
임계장 조 정 진 올림』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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