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숨진 경비원 마지막 일지엔..'주민께 친절 봉사'

남형도 기자 입력 2020. 5. 11. 17:14 수정 2020. 5. 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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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께 친절봉사'.'인사 철저히'.'순찰 강화'.

향을 피운 뒤 고개를 푹 숙이던 아파트 주민 D씨는 "경비를 한 지 2년이 됐는데, 사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아이 둘을 혼자서 다 키웠다"며 "친절하고, 인사 잘하고, 경비 임무를 잘하니까 나무랄 데가 없었다. 주민들이 다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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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 우이동 아파트 A 경비원 초소 가보니..주민들 "경비아저씨 다 좋아했다"며 울먹
숨진 경비원 A씨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엔, 경비원 복장을 하고 곧게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사진=A씨 프로필 사진

'주민께 친절봉사'.
'인사 철저히'.
'순찰 강화'.

11일 오후,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텅 빈 경비 초소 안엔 전날 숨진 경비원 A씨가 남긴 '경비일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거기엔 이렇게 또박또박 쓰여진 글씨가 종이 한 장에 빼곡했다. 가로등을 언제 켜고 껐는지, 순찰은 언제 돌았는지. 그날따라 그는 유독 '대청소'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텃밭, 운동기구, 주차장, 화단, 담장, 경비실 주변까지 다 청소했다고 적혀 있었다.

3일 남긴 그 기록을 마지막으로, 그의 가지런한 경비일지를 더는 볼 수 없었다. 이후 10일까지, 근무자 성명에 A씨의 이름은 없었다. 지난달 입주민에게 이중주차 문제 등을 이유로 폭행을 당한 뒤 병원을 오가다,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긴 뒤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황망한 죽음이었다.

좁다란 경비초소…뉘일 공간도 마땅찮아

A씨가 근무했던 허름한 경비초소 내부를 살펴봤다. 한편에 작은 간이 침대가 놓여 있었다. 이를 펴니, 내부가 꽉 차서 문을 제대로 닫기도 힘든 지경이 됐다. 건너편 회사서 일한다는 B씨는 눈가를 소매로 훔치며 "이렇게 좁은데 제대로 잘 수나 있었겠느냐"고 했다.

A씨 유가족이, A씨가 주민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화장실도 자그마했다. 기자가 내부로 들어서니, 공간이 꽉 찼다. 유가족 주장대로 폭행을 당했다면 옴짝달싹 못할만한 크기였다.


그의 초소 내엔 간단히 배를 채우기 좋은 간식들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좁다란 화장실 변기 위 선반엔 낡은 전자레인지 한 대가, 그 위엔 뻥튀기 봉지가 있었다. 경비초소 내 책상에도 뻥튀기 봉지 하나가 있었다. 경비초소 바깥 냉장고 안엔 간단한 밑반찬과 초코파이 하나가 있었다. 그 오른편엔 커피포트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 선반엔 종이컵과 치약, 김 몇 개가 있었다.

경비초소 아래쪽엔 라디에이터 2개 정도가 놓여 있었다. 겨울 추위를 버티기 위한 거였다.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한 에어컨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주민 C씨는 "겨울에 많이 추웠을텐데, 이거 두 개로 버틴 것인지"라며 "추우면 경로당에 와서 자도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눈물 흘리던 주민들…"저 임신해서 같이 좋아해주셨는데"

주민들이 기억하는 A씨의 기억은, 그가 일하던 경비초소 앞 추모 공간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한 주민은 "우리 가족과 우리 강아지 예뻐해주시는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린다"며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안 믿긴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항상 웃으시며 인사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다른 주민도 "저 임신해서 같이 좋아해주셨는데, 너무 안타까운 일이 생겨서 원통하고 슬프다"고 했다.


향을 피운 뒤 고개를 푹 숙이던 아파트 주민 D씨는 "경비를 한 지 2년이 됐는데, 사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아이 둘을 혼자서 다 키웠다"며 "친절하고, 인사 잘하고, 경비 임무를 잘하니까 나무랄 데가 없었다. 주민들이 다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아파트 주민 E씨도 "불평하는 성격도 아니고, 주민들에게 '형님, 누님'하면서 어디 가시냐고 항상 나와서 웃으며 인사했었다"며 "죽기 전에도 주민들이 한 번 말렸었는데, 결국 자기 집에 가서 죽었다"고 비통해했다.

왜 A씨는 주민 폭행 등 힘든 일을 겪은 뒤에도 홀로 끙끙 앓았을까. 다른 아파트 경비원들은 주민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쉬이 털어놓을 수 없는 시스템 문제를 지적했다. 강북구 한 아파트 경비원 F씨는 "주민이 왕이다. 잘라달라고 전화 한 통만 하면 잘린다"며 "주민들이 불평하면 시말서를 써야하고, 두 번 쓰면 나와야 한다. 불합리하게 잘린 동료들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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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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