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칼럼] '장관' 가족 vs '총장' 가족

김이택 2020. 5. 1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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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중인 검찰총장 가족 사건들은 ‘꾼’들의 수법이 총동원된 막장극이다. 검찰이 대놓고 봐준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되는데도 그 흔한 특임검사, 특별검사 주장조차 안 나온다. ‘장관 부인’과 ‘총장 부인’ 수사 강도를 가르는 기준은 검찰 ‘식구’냐 아니냐인가? 난데없는 ‘균형 수사’ 주문은 진보-보수 갈등을 이용하겠다는 포석 아닌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이야기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누리던 유명 대학교수가 갑자기 검찰에 구속됐다. ‘유미주의 문학작품’이 하루아침에 ‘음란물’로 전락했다. 그 직전 한 언론사 기자들과 검찰 고위간부의 식사 자리에서 그 작품이 도마에 올랐다. 음란물이니 단죄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필’ 받은 그 간부가 수사를 독려한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려졌다. 그 교수는 대학에서 쫓겨났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992년부터 고 마광수 교수가 겪은 일이다. 검찰이 인체에 치명적인 ‘포르말린 통조림’이라며 기소하는 바람에 제조업체들이 망한 일도 있었다. 공업용 기름을 썼다고 기소당한 라면회사는 사세가 기울었다. 모두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무리한 수사에 대한 단죄는 없었다. ‘거악 척결’의 빛나는 성과 이면의 어두운 그늘은 쉽게 잊히고 금세 묻혔다.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고문으로 조작한 공안 사건과 일반 사건 등 15건을 재조사해 일부 재수사까지 이뤄졌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또 너무 늦었다. 애초부터 등 떠밀려 시작한 과거사위는 검찰 조직에 아무런 교훈도 변화도 주지 못한 것 같다. 최근 ‘조국 수사’에 이은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종편 <채널에이(A)> 사건 수사의 황당한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무소불위 검찰의 어두운 ‘과거’가 다시 떠올랐다. 검찰은 지난 3년여 롤러코스터를 탄 듯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직 대통령 둘과 대법원장을 구속하면서 적폐청산의 ‘주역’으로 박수 받았다. 그러나 ‘특수통 싹쓸이’ 인사는 검사 80%가 등 돌렸다고 할 정도로 심한 내부 반발을 불렀다. 결국 외부의 적 ‘검찰개혁’을 표적 삼은 ‘조국 수사’로 돌파구를 열었다. 청와대와 여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이 수사의 유력한 동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윤 총장과 측근들은 ‘사모펀드’에서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들어갔다지만 법정에서 강력한 반격에 부닥쳤다. 재판장이 공개적으로 ‘투자’ 아닌 “대여로 보는 게 원칙”이라고 할 정도면 검찰의 공소 유지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입시 비리 역시 여러 문건의 진위 공방이 치열하다. 후속으로 진행 중인 윤 총장 가족 사건 수사는 인력과 강도 면에서 이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들 모두 스포츠센터, 요양병원, 토지 등 초고가 부동산을 둘러싼 문서 위조, 사기, 위증이나 주가 조작 등 전형적인 ‘꾼’들의 수법이 총동원된 막장극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큰 죄와 작은 죄가 뒤바뀐 의혹이 짙다. 이른바 ‘도촌동 사건’은 경기 성남에 있는 땅 16만여평을 경매로 낙찰받는 과정에서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사건이다. 고등학생 표창장이나 체험보고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은행 명의 증명서를 통째 위조했다. ‘공정’ 가치나 도덕성 차원을 넘어 ‘전문 조직’의 범죄 냄새가 짙다. 그런데 언론 폭로 뒤에야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자금 융통에 관여하고 문서 위조범을 측근으로 둔 총장 부인은 소환조사도 않고 불기소했다. 검찰에게 ‘장관 부인’과 ‘총장 부인’의 수사 강도를 가르는 기준은 역시 우리 ‘식구’냐 아니냐였던 모양이다. 스포츠센터나 요양병원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가족’이나 ‘지인’을 대놓고 봐준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언론들의 폭로는 매우 구체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감찰 중단이라며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기준이라면 검찰의 식구 봐주기 역시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파헤쳐야 ‘비례와 균형’ 수사다. 그런데 검찰은 제대로 수사를 하는지 마는지 조용하다. 특수부 검사 수십명 투입 조짐도, 관련자 일제 소환이나 총장 집 압수수색 낌새도 물론 없다.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법은 만들어졌으나 아직은 법령집에만 머물러 있다. 올해 초 대대적인 간부 인사로 측근을 쳐냈지만 수사 지휘의 칼자루는 여전히 윤 총장이 틀어쥐고 있다. 그런데도 총장 가족 수사에 그 흔한 특임검사, 특별검사 주장조차 안 나온다. 신기한 일이다. 채널에이 사건을 다루는 윤 총장의 행보에서 그 실마리가 엿보인다. 난데없는 ‘균형 수사’ 주문이 진보-보수로 나뉜 언론과 세력 지형의 갈등 구조를 이용하겠다는 포석은 아닐까. 혹시 가족 사건도 이 구조에 기대어 버텨보겠다는 것이라면 ‘윤석열’ 이름이 너무 초라해진다.
김이택ㅣ대기자 rikim@hani.co.kr▶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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