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찢어져" 두딸 혼자 키운 경비원의 폭행 호소·죽음 '눈물의 포스트잇' [김기자의 현장+]

'주차 시비'로 극단적 선택한 아파트 경비원..주민들 추모 /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 경비실 곳곳에는 주민들이 붙인 추모 포스트잇 이어져 / "따듯한 웃음 볼 때마다 행복..언제나 마음 따뜻한 경비원 아저씨" / "버스 정류장부터 아파트 주변 담배꽁초도 일일이 주워" / 주민들 "가해자에 합당한 처벌..지켜보겠다"

11일 오후 A씨가 일했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 유리창에는 주민들이 안타깝게 떠난 A씨를 기리는 추모 포스트잇으로 뒤덮었다.

 
“두 딸을 혼자 키워 큰딸은 시집보내 외손주도 있고, 작은딸은 같이 사는 것으로 아는데, 안타까워 어쩌나. 눈을 어떻게 감았을꼬. 마음도 여린 사람이 혼자서 감당하려고, 에효. 우리가 죄인이지 죄인. 지켜줬어야 했는데…”

11일 오후 2시쯤 찾은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곳곳에는 주차 시비로 불거진 ‘주민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전날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아파트 경비원 A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어 있었다. 그 밑에는 주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작은 분향소를 마련했다.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숨진 경비원 A씨를 분향소가 마련 돼 있다.

 
분향소에는 국화꽃 한 다발과 배, 사과, 막걸리, 초 그리고 꽃이 조촐하게 놓여 있었다. 경비실에 모인 주민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한 주민은 “고개 숙여 있을 때 무슨 일이 있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 밝던 양반이 왜”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훔쳤다.

분향소에 헌화한 아파트 한 주민은 “항상 밝은 사람이라 문제없는 줄 알았어요. 아파트 주변이나 버스 정류장까지 그 흔한 담배꽁초 하나 없어요. 이 분에 정말 열심히 일하셨어요”라며 “가족 같은 분이신데, 허망하게 가셔서 너무 가슴이 아파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숨진 채 발견된 경비원 A씨가 근무한 경비실 모습.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비원 A씨의 옷이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의 화장실에 걸려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사람을 얼마나 모질게 몰아 세웠으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깟 차가 뭐가 대수”라며 “얼마나 분하고 원통하면 자식까지 두고 허망하게 떠나냐고, 가해자가 분명 천벌을 받아야 하고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50대 A씨는 전날 오전 2시쯤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최근까지 근무하던 아파트 한 입주민에게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A씨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유리창에는 한 입주민 폭언과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한 고인을 추모하는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1일 오전 11시쯤 아파트 단지 내 주차 문제로 50대 주민 B씨와 시비가 붙었고, B씨는 A씨를 폭행한 뒤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 경비 일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B씨는 지난달 27일 A씨를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인 경비실 안에 있는 화장실로 끌고 가 여러 차례 폭행하기도 했다. A씨는 결국 이튿날 상해 혐의로 B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A씨는 고소인 조사를 받기 전에 숨졌다.

경비원 A씨가 근무했던 경비실 내부를 들어가 살펴봤다. 오래 사용돼 푹 들어간 접이식 간이침대가 의자 옆에 접혀 있었고, 책상에는 근무일지와 전화기, 책 등 각종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좁은 경비실 뒤편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구조를 살펴보니 한눈에도 낡아 보이는 선반이 들어 왔다. 낡은 구조지만 청소가 된 듯 구석구석 손이 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누부터 샴푸까지 각종 생활 도구가 가지런했다. 라디에이터와 접이식 간이침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A씨는 경비실에서 숙식을 해결 한 듯했다.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유리창에는 한 입주민 폭언과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한 고인을 추모하는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안타깝게 떠난 A씨에 대해 주민들 경비실 앞에 모여 추모했다. 텅 빈 경비실 유리창에는 “아저씨, 가슴이 너무 아파요”,“너무 보고 싶어요”,“아저씨 예쁜 웃음 기억해요”,“참으로 마음이 착잡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우리 가족과 우리 강아지 예뻐해 주시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안 믿긴다”, “항상 웃으시며 인사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저 임신해서 같이 좋아해 주셨는데, 너무 안타까운 일이 생겨서 원통하고 슬프다” 등 손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고소장을 바탕으로 사건 기초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며 “(B씨의) 소환조사 일정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B씨는 자신이 이웃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며 지난달 A씨를 모욕죄로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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