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줏집에선 3300만원, 할머니들에겐 2300만원 쓴 정의연

권혜림 2020. 5. 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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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빼면 피해자 지원 10% 미만
"우리는 인도적 지원단체 아니다"
기부금, 맥줏집서 3300만원 사용
술집측 "실제 받은 돈 430만원"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테이블 왼쪽 셋째)이 11일 오전 서울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에서 후원금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부금 사용처를 두고 논란에 휩싸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안정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도적 지원단체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금 운용에 문제가 없었다”며 지난 7일 이용수 할머니(92)의 작심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의연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지원 사업비 항목은 후원금을 할머니들에게 단순히 현금으로 전달하는 사업이 아닌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에 쓰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엔 건강치료 지원, 인권과 명예회복 활동 지원, 정기 방문·외출 동행 등 정서적 안정 지원, 비정기적 생활물품 지원, 쉼터 운영 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예산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할머니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가족 같은 관계를 맺으며 위로가 되려 한다”고 했다.

정의연은 2017년부터 3년간 목적지정기부금을 제외한 일반기부수입 22억1900여만원 중 41%인 9억1100여만원을 ‘피해자 지원 사업비’로 집행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59%에 해당하는 금액은 수요시위·기림사업·나비기금·장학사업 등에 쓰였다고 했다.

외관상으론 그 주장이 맞아 보인다. 하지만 2017년을 제외하면 연도별 피해자 지원금 비율은 10%에 못 미친다. 또 장부상 수혜 인원이 99명·999명 등으로 반복 기재되는 등 미심쩍은 대목이 많다.

먼저 정의연이 국세청 홈페이지 홈택스에 공시한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적지정기부금을 제외한 연도별 일반기부수입 중 피해자 지원금이 ▶2017년 12억6700만원 중 8억6300만원(68%) ▶2018년 5억3800만원 중 2300만원(4.3%) ▶2019년 4억1300만원 중 2400만원(5.8%)으로 나온다. 3년간 기부금 중 41%를 피해자 지원비로 썼다고 밝혔으나 2017년을 제외하면 연도별 피해지원금으로 쓴 돈은 10% 미만이다. 2017년에 지원금 비율이 높았던 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지원금을 거부한 할머니 8명에게 100만 시민모금을 진행해 각 1억원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정의연은 2016년에도 전체의 약 3.5%만을 피해자 지원사업에 사용했다.

전문가 “정의연 회계 자료 불투명”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복동 장학금 전달식을 마친 장학생들과 윤미향 당선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연의 기부금 지출명세서에 ‘피해자 지원 사업’ 항목의 수혜 대상 인원으로 ‘99명’ ‘999명’ ‘9999명’ 같은 숫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의문이다. 홈택스에 올라온 2017년 기부금 사용처를 보면 국제연대사업비와 모금사업비, 홍보사업비, 일반관리비의 수혜 인원이 모두 999명이다. 2018년도에도 5개 항목이 전부 999명으로 표기됐다. 또 4개 항목은 수혜 인원을 99명으로 적시했다.

정의연 측은 기자회견에서 “데이터가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은 부분은 사과드린다. 부족한 인력으로 일을 진행하면서 내부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 부분은 고쳐 나가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용처의 세부내역 공개 요구에는 “세상 어느 NGO가 활동내역을 낱낱이 공개하고, 세부 내용을 공개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업들에는 왜 요구하지 않는 건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전 한국회계학회장)는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이 고유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일 텐데 회계 자료가 불투명해 구별이 가지 않는다”며 “감독 관청이 있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갔을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정의연이 기부금 3300여만원을 2018년 맥줏집 등에 썼다고 기부금 명세 지출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정의연이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개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지출 명세서’에 따르면 이 단체는 2018년 디오브루잉주식회사에 3339만8305원을 기부금으로 지출했다고 적었다. 이는 그해 기부금 지출액(3억1067만4155원) 중 약 10%에 해당한다. 디오브루잉은 서울 청진동·자양동 두 곳에서 ‘옥토버훼스트’라는 맥줏집을 운영하는 회사다. 지출 목적은 ‘모금사업’, 수혜 인원은 999명이라고 썼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그해 11월 18일 서울 청진동 옥토버훼스트에서 28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며 “당시 디오브루잉에서 지출한 비용뿐 아니라 택배비, 퀵서비스 등이 모두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해 위안부 할머니 피해자 지원사업비로 쓴 돈은 2300만원이었다.

디오브루잉 관계자는 “당일 발생한 매출은 972만원”이라며 “정의연은 당일 매출 전액을 저희에게 사업비로 지출(후원 아님)하고, 저희가 이 가운데 식재료비와 당일 일한 직원 인건비, 기타 경비 등 실비를 제외한 541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회계 처리했다”고 말했다.

김복동 장학금 논란에 “뭐가 문제인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은 ‘고 김복동 장학금’ 논란과 관련해서도 “뭐가 문제인지 오히려 묻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복동 장학금은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남은 비용과 추가 후원금으로 지난해 2월 신설됐다. 지원 대상을 ‘시민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로 제한했다. 이에 장학금을 지급한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 중 정의연 관계자가 없냐는 질문이 나오자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평화 통일 노력, 여성운동에 헌신했던 활동가의 자녀들에게 200만원 장학금 전달한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권혜림·이우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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