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그때는 달고, 지금은 쓴가?

김은중 정치부 기자 2020. 5. 12.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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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중 정치부 기자

"일본군위안부 단체에 이용당했다"고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여권 인사들은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됐다"고 일제히 반박했다. '30년 동반자'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자는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고 했고, 시민당 우희종 대표도 "주변에 계신 분에 의해 조금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은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를 제작한 변영주 영화감독은 "당신들의 친할머니들도 맨날 이랬다 저랬다 섭섭하다 화났다 하시지 않냐"고 거들었다. 이 할머니의 폭로를 기억력 문제로 몰고 간 것이다.

이들은 과거 고령인 이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증언에 대한 진위(眞僞) 논란이 제기됐을 때 "할머니의 기억은 뚜렷하다" "피해자를 모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할머니가 '헛소리하는 치매 노인'으로까지 몰린 상황에서 보인 그들의 표변(豹變)은 지지자들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할머니를 앞세워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했고, 거리에서 반일(反日) 구호를 외쳤으며, '자기 정치'를 해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침묵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과거 이 할머니 옆엔 항상 민주당 사람들이 있었다. 2016년 이 할머니를 국회에 대동하고 나타난 유은혜 당시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며 '위안부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같은 해 이 할머니를 찾아간 설훈 의원은 "피해자 얘기를 듣고 결정해야 하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소홀했다"며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했고, 강창일 의원은 "언젠가는 일본 국왕과 총리가 찾아와서 사죄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 출간에 분노하자, 여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식민통치 옹호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이 할머니가 겪은 고초에 누구보다 공감해준 것도 민주당이었다. 진선미 의원은 여성부 장관이던 2018년 이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들 아프지 않게 빨리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다. 박주민 의원은 이 할머니를 모델로 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관람하고선 소셜미디어에 "펑펑 울면서 봤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김영호 의원은 지난해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겠다"며 이 할머니와 대만까지 날아갔다. 90줄에 접어든 이용수 할머니가 "아베한테 사과받기 딱 좋은 나이"라고 했을 때, 민주당 사람들이 제일 크게 박수 쳤다.

이 할머니의 기억력을 문제 삼고, 그를 향한 인신공격에 침묵하면서 여권은 "결국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위안부를 이용한 것 아니냐"라는 비판을 비켜가기 어려울 듯하다. "21대 국회에서 죽은 자들의 몫까지 함께해내는 운동을 만들어가려 한다"는 윤 당선자의 정치 입문 출사표도 그 유효성이 끝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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