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맞는 정신질환 아들 두고 어찌.." 5월 어머니의 한맺힌 40년

정대하 2020. 5.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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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40년이 지났는데, 뭣 할라고요? 아들 병수발이나 하고 살라요."

지난 4일 박아무개(89·광주시 북구 각화동)씨는 근황을 묻자 한숨부터 쉬었다.

큰아들 안아무개(57·광주시 북구)씨는 공부를 잘했다.

김아무개(1958년생)씨는 1980년 5월20일 새벽, 전날 언니 집에서 잠을 자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무장한 공수부대원에게 붙들렸다가 협박을 당하고 풀려난 뒤 이상 증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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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돌 기획] 다섯개의 이야기-③망각
평생 아들 보살펴온 박아무개씨 40년의 한
출근한 남편도 군인들에게 무차별 구타당해
정신질환 생존자 65명..사망자 61명에 달해
계엄군에게 맞거나 성폭행당한 충격이 원인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이 진압봉으로 무고한 시민을 구타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아이고, 40년이 지났는데, 뭣 할라고요? 아들 병수발이나 하고 살라요.”

지난 4일 박아무개(89·광주시 북구 각화동)씨는 근황을 묻자 한숨부터 쉬었다. “5·18이라면 신물이 나요. 멀쩡한 영감 살다가 죽어부렀제. 어린것은 뚜드려 맞아 홱 돌아부렀제. 집도 다 날려불고.”

큰아들 안아무개(57·광주시 북구)씨는 공부를 잘했다. 딸 넷을 낳은 뒤 얻은 아들이라 더욱 각별했다. 1980년 5월21일 조선대학교부속고 2학년이던 안씨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와 깜짝 놀랐다. ㄱ여객 관리부장으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군인에게 맞아 쓰러졌다는 전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안씨는 마음이 급해 아버지 근무지로 뛰어가다가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붙잡혔다.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맞고 쓰러진 뒤 깨어보니 남의 집이었다. 그 뒤 헛소리를 가끔 하던 안씨는 점차 증상이 심해졌다. 같은해 8월31일 정신분열 진단을 받고 학교를 휴학했다. “막 버티며 병원에 안 갈라고 하는 아를 경찰 불러서 입원시키고, 그렇게 살았어라.”

계엄군들의 인간사냥이 시작됐다. 1980년 5·18 당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붙잡아 백주대낮에 속옷만 입힌 채 연행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박씨의 남편(1928년생)도 평생 5·18 후유증을 앓았다. 5월21일 오후 1시께 ㄱ여객 차고에 공수부대 대위 1명과 군인들이 난입했다. 군인들은 2층 사무실에 들어와 남편과 동료 등 6명을 곤봉과 소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했다. 정신을 잃은 남편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평생 고통에 시달렸다. 2008년 세상을 뜨기 전 5년 동안은 ‘식물인간’처럼 지냈다. 이제 장남을 보살피는 일은 온전히 박씨 몫이 됐다. 다행히 아직 아들은 엄마만은 알아본다. “2년 뒤 아들이 환갑이 돌아온단 말이요. 제일 큰 걱정은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을까, 그것뿐이요.”

5·18 정신질환자 생존자들은 홀로 아픔을 감당해야 할 경우도 다반사다. 김아무개(1958년생)씨는 1980년 5월20일 새벽, 전날 언니 집에서 잠을 자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무장한 공수부대원에게 붙들렸다가 협박을 당하고 풀려난 뒤 이상 증상을 보였다. 1982년 7월 정신병원에 처음 입원한 뒤 요양원 등을 전전했던 김씨는 집에 잠시 머무르던 1986년 사소한 문제로 입씨름을 하다 아버지에게 라디오를 던져 숨지게 했다.

5·18 때 공수부대원에게 맞아 정신분열 증상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노모는 한숨을 쉬며 사진 취재를 거절했다. 그 어머니처럼 40년 눈물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 어머니들의 사진을 싣는다. 2018년 5월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유족 어머니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씨는 20년째 국립나주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다. 그의 오빠와 시누이도 비운의 사고로 세상을 뜬 뒤 유일한 의지처였던 어머니도 그의 곁을 떠났다.

5·18유족회의 집계를 보면, 5·18 관련 정신질환 생존자는 65명이고 사망자는 61명이다. 계엄군에게 맞거나 성폭행을 당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이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정신질환자 생존자나 그 가족들에게 5·18은 아직도 현재형이다. 돌볼 가족이 없는 5·18 정신질환 생존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18 정신질환 생존자 중 상당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5·18유공자 김연호(당시 25살)씨는 1987년 5월27일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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