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경비원 잘라!"..아파트 주민이 왕(王), 막을 법이 없다

남형도 기자 2020. 5. 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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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지대서 주민 갑질에 고통 받는 경비원들..법은 '권고사항', 지자체는 "관여 못한다" 나몰라라
경비원 모자가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내부에 걸려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사진=뉴시스

"아파트 주민들이요? 방법이 없어요. 주민이 왕이니까요."

서울 소재 한 아파트서 경비원을 하고 있는 A씨는 한참을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 폭언·폭행·갑질이 심한 아파트 주민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없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간 겪은 일을 얘기해줬다. 한 번은 재활용 분리수거날, 주민에게 "깨끗하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야, 경비가 하는 일이 뭐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70대인 그보다 한참 어린, 젊은 주민이었다. 또 한 번은 주민이 경비실 쓰레기 봉투에 자기 쓰레기를 다 쏟길래, "그러시면 안 된다"고 했더니 "당신 봉투야? 이거 관리비잖아!"란 말이 돌아왔다. 그는 그날 밤 잠을 설쳤다.

그래도 방법이 없다. A씨 말처럼 주민이 왕이어서다. A씨는 "경비업체선 내 말을 믿지도 않는다. 무조건 주민 위주"라고 했다. "그 경비 자르라"는 말에, 시말서도 쓰고, 실제 잘리는 사례도 많이 봤단다. 그래서 A씨는 주민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습관이 됐다. "네, 맞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는 전국 어느 아파트에 가도 마찬가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경비업체는 계약 끊길까 '침묵'…누가 제재하나
이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면, 경비원이 왜 주민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통상 경비업무는 경비 용역업체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간 계약이 체결되는 형태다.

계약이 끊길까 우려스런 대다수 경비업체로선, 주민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청소·주차, 택배관리 등 경비 외 부당 업무를 시켜도, 경비원들이 참고 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소재 아파트 경비원 B씨는 "택배회사 한 곳에서만 20개 정도 두고 가는데, 일일이 찾아가라고 해야 한다"며 "잠자는 시간에 찾아가서 자주 깬다. 그러면 잠을 잘 못 잔다"고 토로했다.

노년 일자리가 마땅찮아, 부당한 일을 겪는 것보다 해고되는 게 더 걱정이다. 그러니 또 침묵하게 된다. 서울 소재 아파트 경비원 C씨는 '진상'으로 유명한, 한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새벽 시간에 폭행을 당했다. 경비초소 문을 잠근 아빠를 보며, 그의 딸들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C씨는 언론 제보 등 일을 키우는 걸 한사코 말렸다.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서였다.

서울 소재 아파트 70대 경비원 D씨는 "월 150만원 정도 버는데, 경비업체에 이의를 제기하면 '돈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며 "이 나이에 뭘 하겠느냐. 공공근로조차 선발돼야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관련법은 '처벌규정' 없고, 권고만
아파트 주민이 부당한 일을 벌였을 때 제재할 수 있는 법은 없는 것일까.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6항엔 입주자, 입주자 대표회의 및 관리주체의 '의무'에 대해 명시돼 있다. 적정 보수 지급, 처우 개선, 인권존중, 업무 외 부당지시 금지 등이다.

하지만 이를 어겼을 때의 '처벌 규정'이 별도로 없다. 그 이유가 있었다.

해당 법안을 2017년 대표 발의한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윤영승 비서관은 12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처벌 규정을 넣게 되면, 입주민들이 경비원을 아예 안 뽑고 CCTV를 달아버리는 등 대량 해고가 발생할까 우려돼 당시 안 넣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해당 법은 '권고 사항' 정도인 것이다. 이에 윤 비서관은 "이를 법안에 일일이 넣기 보단, 지자체가 조례를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가 아파트 돈 쓴 내역 등을 감사하는 것처럼, 종사자 처우, 잘못된 관행 등에 대해서도 감시하면 된단 것이다. 익명으로 신고 받는 시스템 등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지자체는 "상위법 근거가 없다"…인권 사각지대
하지만 지자체는 경비원 등 공동주택 근로자의 인권 침해 등에 대해 별다른 개입이 없는 곳이 많았다.

지난 10일 경비원이 숨진 강북 우이동 아파트 관할 구청인 강북구청 김종호 주택관리팀장은 '인권존중' 등을 파악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런 것은 없고, 어느 구청이나 마찬가지"라며 "구청에서 관여할 사항도 아니고, 입주민 사이 다툼이 있으면 하는 거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북구청에선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를 대상으로 하는 윤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안전 관리 등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한 홍보다. 경비원 인권 관련 조례는 없느냐는 물음에는 "경비원에 특화된 건 아니어서,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 조례를 마련하려는 곳 또한 상위법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어려워했다. 고양시는 12일 "경비원 인권 및 복지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경비원에 대한 폭행·폭언 등이 발생할 경우 관리사무소와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겠다 했지만, 권고나 계도 차원이라 했다. 고양시 기획팀 관계자는 "상위법에 처벌 규정이 없어, 사실상 강제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적극 행정', '적극 입법'만이 주민 갑질 해법
그러니 경비원 등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를 위한 위한 법안 정비가 시급하단 지적이 나온다.

우선 경비원들의 업무 범위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다. 이번에 우이동 경비원 사건에서도, 이중 주차 문제를 경비원이 정당히 해결하려다 갈등의 빌미가 됐다.

이를 정비하려면, 경비원이 이중으로 적용 받고 있는, 경비업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을 손봐야 한다.

'경비업법'은 순찰 등 경비업무 외 다른 업무를 막고 있지만, '공동주택관리법'에선 분리수거, 택배, 주차관리 등을 위탁관리 업무로 용인하고 있다. 소관 부처인 경찰청과 국토부가 나서서 경비원들이 해야하는 업무를 명확히 정리해야 한단 지적이다.

지자체도 보다 적극적인 행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용인시에선 지난해 12월부터 공동주택 관리직원 피해구제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 중에선 최초다. 변호사와 노무사, 갈등관리전문가, 정신건강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그룹이 경비원 등이 주민으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경우 지원해준다.

진주희 용인시 실무관은 "행정기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입주민들이 알고 있으면, 공동주택 관리종사자에 대한 대우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조심하게 해서 미리 피해를 방지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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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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