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 1년 지출 4억6000만원인데.."할머니에게 4억7000만원 줬다"

이유정 2020. 5. 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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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부실 회계, 외교부 감독 안 받아
2018년 정대협이 공시한 공익법인 결산서류. 그해 3월 별세한 안점순 할머니에게 4억 7500여 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공시했다. 수혜 인원도 9999명으로 돼 있다. [국세청 홈페이지 캡처]〈b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현 정의기억연대)가 2018년 국세청 기부금 공시 내역에 그해 3월 작고한 안점순 할머니에게 4억원 넘게 지급했다고 신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국세청 홈택스 공시에 따르면 정대협은 2018년 결산 보고서에서 ‘기부금품의 수입ㆍ지출 명세서’ 항목의 ‘국내 사업 지급처’에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안 할머니의 이름을 적고, 현금으로 4억 7593만 9767원을 지출했다고 공시했다. 지출 목적은 국제협력ㆍ생존자 복지ㆍ수요 시위ㆍ문화 홍보ㆍ국내 연대 등 10개 항목이었고, 수혜 인원은 9999명으로 적혀 있었다.

안 할머니는 그해 3월 30일 9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안 할머니는 1993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이후 2000년대까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증언 활동을 해왔다. 2017년 3월에는 독일의 소녀상 제막식에도 참석했고, 그해 11월 김복동 할머니 등과 함께 정의기억연대가 수여하는 여성인권상을 받았다.

공시 기록만 보면 정대협은 돌아가신 안 할머니에게 현금 지급을 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안 할머니에 지급했다는 4억 7500여만원은 별도 항목으로 기재한 기부금 수입·지출 월별 현황과 비교해보면 수치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해 1~12월 지출 총액이 4억 6908만 8097원인데 안 할머니에 지급했다는 금액이 1년 지출 총액보다 더 많다. 그해 수입 총액은 5억 1839만 6936원이라고 공시했다.

이같은 부실한 회계 처리 방식과 관련, 정대협이 그해 추모제 개최 등 각종 국내 사업 지출 비용을 상세하게 작성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안 할머니 1명에게 지급한 것으로 기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2018년은 안점순(3월)·김복득(7월) 할머니 등 위안부 생존자 8명이 한꺼번에 세상을 떴기 때문에 추모 관련 행사가 많았다.

또 '지출 목적'에 사실상 정대협의 모든 연간 지출 항목을 적시한 것 역시 이같은 부실 회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앞서 정대협은 한해 수억 원의 기부금을 운용하면서도 주먹구구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왔는데 정대협의 후신인 정의연도 2018년 맥줏집인 '옥토버훼스트' 한 곳에서만 3339만원가량을 썼다고 공시했다가 논란이 됐다.

지난 2017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시 인근 비젠트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소녀상을 어루만지며 소감을 말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중앙일보는 정대협의 후신인 정의기억연대의 한경희 사무총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해당 내용을 문의했지만, 정의연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정의연 관계자는 “회계 관련 내용은 한꺼번에 모아서 답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이 올해 3월 1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3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997년 설립된 정대협은 지금까지 자체 회계 감사에서도 문제점을 잡아내지 못했지만,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관계 부처도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정대협은 외교부 소관 비영리 법인이고, 그 후신인 정의기억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 소관 비영리 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윤미향 당선인은 정대협 대표 시절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백만시민모금운동’을 벌이면서 정의기억재단을 설립했고, 이후 정대협과 정의기억재단 조직을 합쳐 정의기억연대로 이름을 바꿨다.

비영리 법인의 특성상, 관계 부처는 허가를 내준 후 서류 접수 등 형식적인 관리만 하는 것이 관행이다. 외교부에 정대협이 등록했더라도 관련 규칙상 관리 감독이 의무사항은 아니고, ‘필요한 때에’ 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그간 정대협으로부터 연간 사업계획서와 지출내역서 등을 받아 왔을 뿐, 회계 처리 점검 등 실질적인 관리·감독은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4.15 총선을 앞두고 윤미향 당선인이 정대협 대표직에서 사퇴한다는 서류를 접수한 정도라고 한다.

정의연의 관리 기관인 인권위 관계자는 “2018년 7월 정의연에 '사무 점검'을 진행한 적은 있다”면서도 “회계 감독은 인권위의 권한 밖”이라고 설명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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