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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정의도 기억도 연대도 없었다

원우식 사회부 기자 입력 2020. 05. 13. 03:16 수정 2020. 05. 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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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와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연 배우 나문희씨. /조선일보DB

"할머니께 원치 않은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사과를 드린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은 11일 서울 '인권재단사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성금이 할머니들한테 쓰이지 않고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며 기부금 유용 의혹을 제기한 할머니를 향한 사과였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25분간 정의연(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신) 운동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때 용감하고 헌신적인 몇몇의 연구가들이 만들어왔다. 이 역사를 알고 있나"라고 했다. "우리가 없었으면 위안부 문제가 교과서에 실리지도 못했다. 여러분들은 뭐하고 있었는가. 책 한 권은 읽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위안부 피해자 인권 운동의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양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상한 건 이 이사장이 말한 정의연 운동의 중심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헌신만 이야기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가장 중심 대상에 있어야 할 기부금 사용을, 소위 '운동을 한다'는 활동가들이 왜 좌지우지하느냐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왜 그 돈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어떻게 쓰였는지 알지도 못하느냐는 것이다.

이날 회견은 언론의 의혹 제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기부금 사용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기자는 회견 질의응답 시간에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의 연봉과 개인활동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정의연 측은 "기자회견 취지와 상관없는 질문" "금액을 왜 말씀드려야 하냐"고 했다. 윤 전 대표는 20여년간 정대협과 정의연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 정대협과 정의연이 할머니로부터 수십억 기부금의 사용 내역을 의심받고 있다. 그런데 소득세 납부로 추산한 부부 합산 연봉이 5000만원 안팎인 윤 전 대표의 딸이 연간 1억원 가까이 필요한 유학생활을 했다. 당연히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

정의연이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의혹을 단박에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증빙 자료와 함께 공개하는 것이다. 윤미향 전 대표도 "모두 증빙할 수 있고, 영수증을 다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자는 또 물었다. "기부금 사용 영수증 세부 내역을 공개할 의향이 없느냐." 그에 대한 답변은 "그만 하세요, 조선일보"였다. 기부금 사용에 대한 투명성은 기부금을 낸 정의연 운동 지지자들과 연대의 기초다. 정의연은 그 연대의 기초를 외면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처음 문제를 제기하자 윤미향 전 대표는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졌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의 뿌리인 할머니들의 기억마저 부정했다. 정의기억연대엔 독점적 정의만 있었다. 기억도, 연대도 없었다.

원우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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