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개인 계좌로 공익법인 기부금을? 당장 문 닫아야할 사안"

안혜리 2020. 5. 1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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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여행·장례마다 SNS 모금
법인 계좌서 모금 때도 따로 받아
김경율 전 참여연대 회계사
"열악한 시민단체라도 비상식적"


윤미향 정의연 전 이사장의 개인 통장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이 지난 3월 11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윤 당선인은 정의연 법인 계좌가 아닌 본인 명의 계좌로 기부금을 받아왔다. [뉴스1]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은 수년 전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이 외국에 가거나 사망할 때마다 “편하게 잘 모시고 싶다” “장례비용이 부족하다”며 여행경비와 장례비용을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모금해왔다. 정의연의 공식 법인 후원계좌가 따로 있지만 할머니들과 관련한 후원금은 대부분 본인 명의의 개인 계좌를 활용했다. 일각에서 “할머니를 앞세운 사적인 앵벌이 모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부금과 관련한 윤 당선인의 지난 몇 년간의 행적을 좇아봤다.

국내외에서 적극적으로 위안부 인권 관련 목소리를 내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난 2019년 1월. SNS엔 후원금 모금을 홍보하는 포스팅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 박정 의원 등은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용이 부족하다”며 후원계좌를 공개했다. 그런데 예금주가 ‘김복동의 집’이나 ‘재)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과 같은 정의연 법인 계좌 이 아니라 ‘윤미향’ 개인이었다.

각기 다른 윤미향 당선인 개인 계좌로 모금을 독려한 SNS.

윤 당선인을 이어받아 지난 4월 취임한 이나영 신임 정의연 이사장은 “김복동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급하게 장례를 치르느라 장례비용 모금용 법인 계좌를 따로 만들 수 없어 윤 당선자 개인 계좌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법인 통장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용도가 다른 돈이 섞이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 본인도 2016년 정의연의 전신격인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정대협) 대표 시절 이 단체와 상관없는 베트남 위령제 후원금을 모금하면서 블로그에 “정대협 일과 섞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개인 계좌로 기부금을 받는다”며 개인 계좌 번호를 공개한 바 있다.

각기 다른 윤미향 당선인 개인 계좌로 모금을 독려한 SNS.

하지만 이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법인 계좌로도 용도가 다른 기부금을 수차례 받아오기도 했을 뿐더러 윤 당선자는 정리하지 못한 옛 통장을 계속 사용해온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동일한 프로젝트에 대해 법인 모금과 별개로 개인 통장을 여럿 돌려가며 기부금을 모금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용도가 전혀 다른 기부금은 오히려 같은 계좌로 섞어 받아왔다.

각기 다른 윤미향 당선인 개인 계좌로 모금을 독려한 SNS.

가령 길원옥 할머니가 2015년 유럽에 갈 당시 여행 경비를 모금한 윤 당선인 본인 명의 계좌(488402-01-***784)로 이듬해엔 전혀 다른 성격의 베트남 위령제 후원금 모금을 했다. 고(故) 안점순 할머니 장례비용도 이 계좌를 통했다. 그런데 정작 같은 용도, 그러니까 2014년 길원옥 할머니가 유럽에 갈 때 모금은 윤 당선자의 또 다른 개인 명의 계좌(079-24-****-402)에서 이뤄졌다.

각기 다른 윤미향 당선인 개인 계좌로 모금을 독려한 SNS.

서울시 담당자는 “공익법인의 회계처리를 하려면 모든 통장은 법인 명의여야 한다”며 “해당 법인이 소송에 걸려 법인 계좌가 압류됐다든지 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단체 대표라도 개인 명의 통장으로 기부금을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 명의 통장을 사용하는 건 개인이 돈을 빼돌리거나 법인이 탈세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5년 길원옥 할머니의 유럽 방문이나 2016년 베트남 위령제 모금 당시 정대협은 공익 펀딩 창구인 카카오같이가치를 통해 법인 계좌로 모금을 진행했기에 굳이 윤 당선자가 개인 계좌로 모금을 따로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이나영 이사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인 등 활동가들이) 자기 주머니 털어 할머니들 비행깃값 내고 증언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부로 드러난 모금 상황을 보면 비행깃값은 모금으로 충당했고, 개인 계좌를 활용해 투명성과 신뢰도가 떨어진 셈이다.

시민사회장 형식의 5일장으로 지난해 치러진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기부금 역시 윤 당선인 개인 계좌로 받았기에 정의연 법인 계좌와 별개로 얼마의 후원금이 들어왔는지 투명하게 확인하기 쉽지 않다. 당시 정의연은 여가부가 지급한 300만원과 별도로 장례비용을 모금한 후 남은 돈으로 시민단체 자녀 25명에게 200만원씩 장학금을 줬다. 이와 관련 윤 당선인의 해명을 들으려 전화와 문자를 남겼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답변 대신 본인 명의 후원 계좌를 공개했던 블로그를 비공개로 돌려놓았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과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의 엇갈린 주장

왜 개인 계좌를 지속적으로 이용했는지와 함께 또 다른 의혹도 있다. 예금주는 똑같이 윤 당선인인데 왜 시기별로 계좌를 계속 새로 만들어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는 “구체적인 내역은 모르지만 통상 부정한 용도로 쓰이는 통장을 운영할 때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통장을 최대한 쪼개서 운영하면 부정이 드러나더라도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법인 기부금을 개인 명의로 받는다는 건 아무리 열악한 시민단체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그 자체로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며 “법인 계좌 역시 여러 개로 나눠 운영되면 횡령 등 사고 위험이 크기에 제대로 운영되는 법인이라면 계좌 수가 많지 않다”고 했다. 지난 2008년 환경운동연합 횡령 사건도 법인 계좌를 통해 벌어졌다. 참여연대는 당시 내부 조사를 벌여 법인 명의 통장 수십 개를 일제히 정리했다고 한다.

정의연의 불투명한 기부금 사용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용수 할머니 이전에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위안부로 인정받은 고(故) 심미자 할머니가 이미 16년 전인 2004년 이용수 할머니와 똑같은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아시아여성기금과 관련 정대협 측과 갈등을 빚던 심 할머니는 “지금까지 당신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답시고 전국 각처에서 손을 벌려 거둬들인 성금이나 모금액은 전부 얼마이고, 그 많은 돈을 대체 어디에 사용했느냐”며 횡령 의혹을 제기하는 성명서를 냈다. 당시 정대협은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아들인다면 공창에 들어간 셈”이라거나 “기금을 받아들인다면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고 우리 스스로 또다시 돈에 팔린 노예가 되는 것”이라며 심 할머니를 공격했다. 최근 상황의 판박이처럼 똑같다.

정의연은 2004년과 2008년, 이렇게 최소한 두 번 회계를 투명하게 정비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메시지(불투명한 회계)를 새겨듣고 바로잡을 노력을 하는 대신 메신저(문제 제기 할머니들과 언론)를 공격하며 이 기회를 날려버렸다. 국세청 출신의 한 회계 전문가는 “수사 당국이 금융거래 내용을 2시간만 들여다보면 횡령 여부를 다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수사에 앞서 윤 당선인이 개인 계좌로 받은 기부금이 얼마인지, 용도에 맞게 사용했는지, 또 정의연에 전액 넘겼는지 등을 지금이라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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