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인데 몹쓸짓? 남직원 안쓰면서 왜 여직원이래?

이정연 입력 2020. 5. 15. 05:06 수정 2020. 5. 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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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데스크가 도대체 뭐야?’ <한겨레>는 2019년 5월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젠더데스크’를 신설했습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강남역 살인사건, ○○계 성폭력, 미투 운동, 엔(n)번방 성착취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이 사건들을 보도하며 한국 사회의 성범죄에 관한 인식과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성범죄를 ‘성추문’으로, 명백한 범죄를 ‘몹쓸 짓’이라 부르며 구조적인 성차별에 뿌리를 둔 성범죄를 개인의 ‘일탈’ 정도로 축소 보도하기 일쑤입니다.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선정적인 기사, 사진, 그래픽으로 다시 피해를 줍니다. 사실을 전달한다는 명분 아래 숨은 또 다른 가해자입니다. <한겨레>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안팎의 문제 제기에 마주한 <한겨레>는 다른 길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젠더데스크는 <한겨레> 구성원과 함께 젠더 이슈와 성범죄 관련 기사를 상시적으로 살피며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콘텐츠를 내놓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창간 32돌과 지령 1만호 발간을 맞아 1대 젠더데스크였던 임지선 기자와 젠더 이슈 보도를 2년째 담당하고 있는 박다해 기자 그리고 이정연 2대 젠더데스크가 모여 젠더데스크의 첫 1년을 돌아보며 <한겨레>의 변화와 과제를 짚어봤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에 세 사람이 모였다. 국내 언론 최초의 ‘젠더 이슈 담당 기자’인 박다해 기자, 국내 언론 유일의 ‘젠더데스크’ 임지선 기자(1대), 이정연 기자(2대)다. ‘유일’과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게가 무겁다. ‘젠더데스크가 고민한 <한겨레> 지면’이라는 주제로 대화하다 보니 공기가 무거워지려는 찰나, 웃음이 터졌다.
임지선(이하 임) 젠더데스크가 처음 생기다 보니 다른 언론사에서 취재 요청이 잦다. 그때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들이 정말 부러워해서, “당신들의 조직에서도 젠더데스크를 만들어보라!”고 한다.(웃음) 언론계를 중심으로 ‘젠더데스크’라는 직책이 조금씩 <한겨레>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젠더데스크는 <한겨레> 기사 등을 성인지 감수성에 비춰 모니터링한다. 개선이 필요하다면 구성원에게 알리고 수정을 요구한다. 젠더데스크는 <한겨레> 편집국장 직속 직책이다. <한겨레>의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편집국 안팎의 요구와 편집국장의 의지가 맞물려 지난해 5월 생긴 자리다. 박다해(이하 박) 젠더데스크가 생기면서 젠더 이슈 담당 기자로서 느꼈던 공백이 채워졌다. 언론, 기자가 성범죄 보도 때 쓰지 말아야 할 용어, 주의해야 할 지점은 한명이 이야기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젠더데스크라는 직책 존재 자체가 기자들에게 중요한 신호가 됐다. <한겨레>가 더는 성인지 감수성을 그저 ‘챙기면 좋을 것’이 아니라 ‘꼭 갖춰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신호 말이다. 언론, 개인 일탈로 축소 보도선정적 문구로 2차 가해 일쑤 중요한 이야기다. 직책이 생기니까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 개인의 ‘예민함’, ‘유난스러움’으로 취급하지 않게 됐다. 게다가 젠더데스크는 편집국장 직속 기구여서 기사를 내놓는 과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 언론사에서 젠더데스크 같은 조직을 두고 싶어도 이런 구조를 만들기 어려워한다. 콘텐츠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해서 외부 자문단을 꾸리는 경우도 있지만, 기사 수정 등 실질적인 영향력의 행사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이정연(이하 이) 젠더데스크 영향력이 정말 강해서 무서울 정도다. 지난달 23일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내놓으며 기자간담회를 했다. 기사와 함께 큰 사진이 실렸는데, 정부 부처의 남성 관계자들이 전면에 있는 사진이더라. 대책을 이끌어낸 주인공은 정작 잘 드러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젠더데스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조금 망설이면서 편집자에게 이야기했는데 바로 여성들이 주인공인 엔번방 관련 시위 사진으로 바뀌었다. 구성원들 사이에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한겨레>를 만들려는 노력이 정착해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젠더데스크가 의견을 내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문제가 되는 표현을 고치는 경우도 많다. 오거돈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여전한 회식 문화’를 짚은 기사가 있었는데, 제목에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 있었다. 휴일이라 이 부분을 놓쳤는데, 구성원끼리 자발적인 의견 전달과 수정 과정을 거쳐 문제없는 표현으로 바뀌었더라. <한겨레> 기자들이 잘못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기사에 투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등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성인지 감수성에 비춰 문제 되는 표현이 있을 때 설득하고 토론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또 성범죄 보도에서 쓰지 않아야 할 단어가 꽤 많은데 대체어가 마땅치 않을 때도 잦다. 그럴 때 설득의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맞다. 이런 경우가 있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낸 언론 모니터링 자료를 참고해 성범죄 보도를 할 때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을 정리해 ‘젠더데스크 리뷰’라는 제목으로 구성원에게 공유한 적이 있다. 내용 중 ‘나홀로 거주’, ‘만취해 참변’ 등을 제목으로 쓰는 건 ‘피해자가 방어에 취약한 상태라 성폭력이 발생한 것처럼 여겨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포함했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그 표현은 피해자의 상황을 사실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써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느낀 건 어떤 ‘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의견을 주고받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다.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려 의견 교환을 요청하는 동료도 늘었다. 실제 변화를 느낀다. 서너번 이런 일을 겪었다. 나보다 훨씬 오래 기자 생활을 한 선배가 나에게 기사 검토를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이 기사, 한번 봐줄래요?” 성인지 감수성 면에서 잘못 쓴 표현이 있는지를 묻더라. 나는 그게 정말 고맙고 놀라웠다. 그런 조직의 분위기와 기사 성인지 감수성의 향상. 이 둘은 따로 놓을 수 없다. 조직의 분위기, 방향이 기사에 반영되는 거다. 그래서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으면서 높은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콘텐츠를 내놓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난해 한겨레미디어 전체 차원에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다른 방식으로 했다. 온라인 강의를 듣던 방식에서 벗어나 성희롱과 성차별 문화를 두고 구성원이 직접 모여 대화하고 토론하는 교육이었는데, 이런 시도 역시 콘텐츠를 만드는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거 같다. 관련 기사 상시적 모니터링‘성인지 감수성’ 콘텐츠 노력 많은 변화, 빠른 변화를 맞고 있는 한겨레신문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기사’라는 깃대가 꽂힌 방향은 확실하지만, 가는 길은 험난하다. 고민은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단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사실과 그 사실을 담은 기사에 대한 가치판단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기사를 ‘싣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최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보도가 쏟아졌다. 정치인의 입을 빌려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이 행렬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하게 했다. 대신 정치인들의 피해자를 향한 공세가 ‘2차 가해’인 걸 분명하게 밝히는 기사를 냈다. 이렇듯 의지는 확고하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그래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보면 흔들릴 때가 많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건 옳은 판단이지만 말이다. ‘선정적인 보도가 무엇인가’부터 짚어봐야 할 문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을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피해를 당했다는 거야?’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한겨레>도 최근 잔혹한 디지털 성범죄인 엔번방 성착취 보도를 이어가면서 깊이 고민한 부분이다. 범죄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면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라는 여론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기사를 보면서 다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아직 끝까지 밀어붙여 치열하게 토론하지 못했다.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기사 쓰기는 <한겨레>의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이러한 노력을 반영해 ‘음란물’이 아니라 ‘성착취’라고 쓴다. 사진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젠더데스크 앞에 많은 과제가 남았다. 과제는 당분간 줄지 않고 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상상해본다. 다시 32년 뒤, 다시 1만호 뒤를. 젠더데스크를 맡은 지 이제 한달 됐지만, 다시 32년 뒤엔 젠더데스크가 <한겨레>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정말 ‘꿈’이다. 젠더데스크가 없어도 될 정도로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기사를 쓰는 게 당연하고, 실제로 문제를 제기할 거리도 없는 <한겨레>를 상상하게 된다. 여성 분야뿐만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에 관해 다양한 요구가 터져 나오는 시점이다. 이때 나아가야 할 저널리즘의 방향을 기존 방식이 아닌 새로운 토대 위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겨레>에 꼭 ‘젠더데스크’라는 자리는 아니어도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내부적으로 점검하는 단위가 유지되어야 할 것이라 본다. 32년 뒤 우리가 살아 있을지, 같은 방식으로 기사를 쓰고 있을지 의문이다.(웃음) 당장엔 <한겨레>의 지면을 결정하는 편집회의의 구성원이 연령, 성별 면에서 좀 더 다양성이 보장되길 바라본다. 이정연 소통젠더데스크 xingxing@hani.co.kr▶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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