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드러난 n번방 괴물들의 두 얼굴

정락인 객원기자 입력 2020. 5. 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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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모범생' 생활, 뒤로는 악질적인 범행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n번방'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주범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n번방은 텔레그램에서 이뤄진 성범죄 사건을 통칭한다. 가장 악랄하게 운영된 '박사방'은 이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성폭력 처벌 특례법 25조에 따라 신상이 공개된 이 사건 피의자는 4명이다. 구속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대화명 '박사')과 조씨를 도와 자금책 역할을 한 강훈(19·대화명 '부따'), 박사방에서 참여자를 모집한 이원호(19·대화명 '이기야'), n번방 개설자인 문형욱(24·대화명 '갓갓')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21.3세이며 강훈과 이원호는 만으로 10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잔혹한 범죄 행각을 벌인 이들의 두 얼굴이다. 평상시에는 '악마의 얼굴'을 숨긴 채 봉사활동을 하거나 모범생으로 생활하며 주변을 속여 왔다.

왼쪽부터 문형욱, 조주빈, 강훈, 이원호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착실하다'는 말 들어온 n번방 창시자 '갓갓'

n번방 창시자인 문형욱은 2018년 하반기부터 '갓갓'이라는 닉네임으로 텔레그램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여성을 성노예로 부리는 대화방을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1번방'을 시작으로 그가 만든 방은 총 8개다. 문형욱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해 유포했다. 피해자 가운데는 아동·청소년만 10여 명에 이른다. 그의 범행수법은 한마디로 악질적이고 반복적이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문씨의 여죄도 밝혀졌다. 2018년 12월 대구 시내에서 여고생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고 범인인 이아무개씨(29)가 검거됐다. 당시 이씨는 A양(17)을 시내 대형마트 주차장과 모텔로 데리고 다니며 성폭행했다. 이씨는 성명불상자에게 성폭행 영상을 찍어 보냈는데, 이씨가 촬영한 영상은 n번방에서 가장 먼저 유포됐다. 이씨는 경찰에서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범행에 나섰다"고 했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문형욱은 이 사건의 지시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자백했다. 

문형욱은 겉으로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경기도 시흥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그는 인근 도시에 있는 4년제 국립대학 건축학부에 입학(14학번)해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며,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고 한다. 학교생활에도 충실해 주변에서 '착실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이런 그가 최근 심경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형욱은 졸업을 1년 앞둔 예비 취업준비생이어서 졸업작품전에 참가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갑자기 지도교수를 찾아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휴학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구속된 시점과 맞물린다.

갓갓의 n번방이 시들해지자 등장한 것이 바로 '조주빈'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해인 2018년부터 텔레그램에서 사기행각을 벌였다. 처음에는 총기나 마약을 팔겠다는 허위광고를 올려 돈을 가로챘고, 지난해 9월 '박사방'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성착취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조주빈은 스스로를 '박사'로 칭하며 피해 여성들에게 몸에 칼로 '노예'라고 새기게 하는 등 잔혹하고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누구나 영상을 볼 수 있는 '맛보기' 대화방을 만든 뒤, 지급하는 가상화폐 액수에 따라 더 높은 수위의 영상을 볼 수 있도록 3단계로 유료 회원 대화방을 나눠 운영했다. 조씨의 집에서는 가상화폐를 환전한 것으로 보이는 현금 1억3000만원이 발견됐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74명, 이 가운데 미성년자가 16명이다.

조주빈은 평상시에는 '선한 양'의 모습으로 생활했다. 2014년 인천의 전문대 정보통신과에 입학한 그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같은 해 6월 대학 도서관이 주최한 독후감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학보사에서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며 학보에 기명 칼럼도 여러 편 썼다.

대학 4학기 중 3학기 평균 학점이 4.0을 넘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고, 장학금도 여러 차례 탔다. 조주빈은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2017년 10월 군대에서 제대한 후 인천의 한 장애인종합복지관과 봉사센터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대학에 복학하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봉사활동은 이어졌다. 2018년 12월 범행을 시작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누가 봐도 모범적인 착실한 청년이었다. 이 때문에 지인들은 조주빈이 '박사방 운영자'로 알려지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박사' 조주빈이 키운 10대 '제자들'

조주빈의 손과 발 역할은 강훈과 이원호가 맡았다. 강훈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박사방에서 '자금책'으로 활동했다. 참여자를 모집하고 유료 회원들이 입장료 명목으로 암호화폐를 입금하면 이를 현금화해 조씨에게 전달했다. 또 조주빈과 공모해 피해자를 협박해 새끼손가락 인증 사진을 전송받거나, 또 다른 피해자를 '말을 듣지 않으면 전신 노출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취지로 협박한 혐의도 있다.

강훈은 이른바 '딥페이크' 사진을 유포한 혐의도 받고 있다. 피해자의 얼굴에 타인의 전신 노출 사진을 합성한 후 피해자인 것처럼 가장해 이를 SNS에 유포하는 행위다. 성인 11명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들 때는 강제추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강훈이 박사방 개설 초기부터 성착취 영상물 제작을 요구하고 조주빈을 도와 박사방 관리 및 홍보, 성착취 수익금 인출 등의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파악했다.

강훈도 평소에는 '모범생'으로 통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그는 중학교 재학 시절 2년 동안 전교 부회장을 맡았고, 고등학교 때도 학생회에서 활동했다. 성적도 우수한 편으로 알려졌다. 프로그래머를 꿈꾼 강훈은 중학교 때는 교내 프로그램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2016년 한 대기업 관련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올해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인문사회학부에 입학한 새내기다. 강훈은 미성년자 최초로 신상이 공개됐다.

조주빈의 또 다른 공범인 이원호는 박사방 전신인 n번방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쯤 조주빈의 박사방에 합류해 성착취물을 유포했다. 자기 대화명을 딴 방을 만들어 회원 2700여 명을 모집하기도 했다. 조주빈은 경찰 조사에서 '대화명 이기야'는 박사방의 공동운영자라고 진술했다. 이원호는 지난해 말 군에 입대해 수도권 한 부대에서 일병 계급으로 향토예비군 관련 업무를 맡아 왔다.지난 1일 체포되기 전까지도 일과 후 휴대전화로 박사방에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 소속 피의자가 정식 절차를 거쳐 신상이 공개된 것은 이원호가 처음이다.

디지털 성착취 사건의 주범과 핵심 공범이 속속 검거되면서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향후 경찰은 나머지 공범들인 '코태' '반지' '사마귀' 등을 추적하면서 n번방 유료 회원 등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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