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기관총, 지연된 대응 사격.. 최전방 괜찮나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0. 5. 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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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이 지난 3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우리측 감시초소(GP)에 대한 북한군 총격사건 조사 결과를 13일 공개했다. 

합동참모본부는 K-6 기관총 원격사격체계(KR-6)에 장착된 기관총 내 공이(탄환의 뇌관 격발장치)가 파손되는 등 일부 문제가 있었으나 전반적인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전방 GP에 배치된 첨단 중화기가 위기 상황에서 기능고장을 일으켜 대응 사격을 지체하게 한 부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서야 군이 당시 대응과정을 공개한 것도 논란거리다. 
지난해 11월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실시된 GP 시범철수 과정에서 우리측 병력이 GP를 떠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도 실전에선 ‘고장’

이번에 문제가 된 원격사격체계는 GP와 일반전초(GOP)를 중심으로 배치된 무기다. 육안 식별이 어려운 거리에 있는 적을 아군 지휘통제실에서 감시하면서 유사시 원격 조종해 사격하는 무기체계다. 감시 카메라와 K-4 유탄기관총(40㎜ 고폭탄), K-6 기관총(12.7㎜)으로 구성된다. 

2013년 3월 방위사업청이 원격사격체계 사업을 공고했을 때, 군은 “장병들의 생존성과 사격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며 홍보를 했다. 하지만 3일 북한군의 GP 총격에서는 대응사격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공이가 파손돼 사격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13일 “상황 종료 후 사단 정비팀이 분해하니 파손돼 있었다”며 “하루에 한번 점검했는데 발견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KR-6는 수동으로 쏘는 K-6에 원격통제체계를 장착한 무기다. K-6보다 더 복잡하고 정비 소요도 많다. 사단 정비팀이 담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K-6의 경우 사격장으로 옮겨 실사격을 하며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지만, KR-6는 이동이 쉽지 않다. 정비팀이 확인하지 못하면 공이에 이상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15일 “1월 말 화기를 정밀 점검했을 때는 이상이 없었다”며 “2월 중순에는 눈으로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고, 코로나19 관련 지침에 따라 부대간 이동이 어려워져 정비를 잠정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일 및 주간 점검은 이뤄졌으나 공이까지는 확인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합참은 KR-6 기능고장을 사건 발생 다음날인 4일 현장조사에서 인지했다고 밝혔다. 앞서 사건 당일인 3일 언론브리핑에서 북한군 총격이 ‘우발적 오발’이라는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설명할 정도로 북한군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던 합참이 정작 해당 GP의 KR-6 오작동은 뒤늦게 알았다는 말이 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전방 경계태세 점검이 시급하지만, 해당 사단에서 사건 당일 KR-6의 기능고장에 대한 상급 부대 보고를 누락한 이유와 공이 파손 시점 및 원인에 대한 군 당국의 공식 설명이 없어 군 안팎의 우려는 여전한 실정이다.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우리측 감시초소(GP)에 태극기와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열흘의 공백…핵심은 유엔사

사건이 발생한 3일 이후 언론에서는 GP 총격과 관련해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합참은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다가 13일에서야 관련 의혹 해소에 나섰다. 

2015년 8월 4일 북한 DMZ 지뢰도발 사건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8월 12일 국회 국방위 속기록에 따르면,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현지 군단 합동조사단이 4~5일 조사를 했고, 4일 늦게 북한 목함지뢰에 의한 도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 보고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공식 발표는 10일에 이뤄졌다. 5일 오후 언론에 “북한 소행이 의심된다”며 공식 발표 시점까지 엠바고(보도유예)를 요청했지만, 실제 발표까지 일주일 가까이 걸린 셈이다. 왜 그랬을까. 유엔사 조사결과가 8월 9일 오전에 나왔기 때문이다. 

군이 유엔사 조사결과를 기다린 이유는 무엇일까. 2014년 DMZ에서 11차례에 걸쳐 총격이 발생했을 때, 유엔사는 “한국군의 대응이 과도하다”며 거듭 우려를 표시했다. DMZ에서의 총격전을 두고 ‘응징 보복’에 초점을 둔 우리 군과 ‘정전협정 유지’를 강조하는 유엔사 간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유엔사의 동의 없이 군이 북한 지뢰도발 정황을 공식 공개하기는 쉽지 않았다.
서부전선 DMZ에서 수색대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 GP 총격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해부터 정부 안팎에서는 DMZ 출입 허가권을 지닌 유엔사가 월권을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전협정을 보면 (유엔사) 허가권은 군사적 성질로 한정돼 있다”며 “비군사적인 환경조사, 문화재 조사, GP 방문 등에 대한 허가권의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유엔사는 “대한민국의 주권을 전적으로 존중하면서 정전협정 준수와 집행에 관한 책임을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과정에서 유엔사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는 의혹이 더해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발적 총격’이라는 우리 군의 입장을 사건 직후 곧바로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쉽지 않다. 군 수뇌부는 총격 상황 종료 시점부터 북한의 의도적 도발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정전협정상 DMZ 관할권이 유엔사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군의 입장에 유엔사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동의하거나 암묵적으로라도 공감해야 한미 간 이견 차를 좁히면서 ‘명분’을 갖출 수 있다. 
중부전선 일반전초(GOP)에서 장병들이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복되는 실수에 불안 ‘증폭’

더 큰 문제는 범정부 차원의 조율이 제대로 이뤄졌는가다. GP 총격 사흘 뒤인 6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6일 우리 군 철거 GP가 있는 DMZ 평화의 길 파주 구간과 판문점을 방문했다. 

견학 재개를 위한 준비 상황 점검차 장관이 현장을 찾았다고 하지만, 정전협정과 9·19 남북 군사합의를 동시에 위반한 GP 총격에 대해 북한이 침묵하고 있고, 군의 공식 발표도 없었던 상황에서 정부 고위 인사가 전방 지역을 방문한 것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는 “장관 방문 지역과 사건 발생 지역은 지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고, 사전에 예정돼 있어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군 당국이 GP 총격 정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뇌부가 휴전선을 방문해 대비태세를 점검한 뒤 김 장관이 판문점을 찾는 것이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남북교류협력 정책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외교안보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정무적 정책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육군 K-21 장갑차 승무원이 K-6 기관총을 잡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근혜정부의 실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8월 4일 북한 지뢰도발 당시 도발 당일부터 공식 발표가 이뤄진 10일의 중간 시기였던 5일 박근혜 대통령의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기공식 참석, 남북 고위급 회담 제안이 이어졌다. 대북 용의점을 군과 청와대가 인식하고 있던 시기인데도 ‘남북 관계 회복’ 메시지가 거듭 발신된 것이다. 같은달 12일 열린 국회 국방위에서 여야 국방위원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한민구 당시 국방부장관은 “북한에 대화와 압박을 병행한다는 차원에서 계획된 조치를 한 것 같다”고 해명해야 했다.

강원도 철원 DMZ를 뒤흔든 GP 총격 사건은 북한의 우발적 오발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우리측의 대북 전통문에 북한은 침묵하고 있으나, 군은 북한이 회신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최전방의 경계태세부터 외교안보정책 조율, 브리핑 방식 등을 놓고 드러난 혼선과 문제점이 드러난 상황은 2015년 8월 북한 지뢰도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일선 부대원들의 신속하고 용감한 대응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 줄 정부와 군의 적절한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든 GP가 철수하지 않는 한 DMZ는 여전히 위험지대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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