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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됨스로 흑산도는 왜 안돼?" 신안주민 뿔났다

조홍복 기자 입력 2020.05.1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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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흑산공항 건설 지연에
전남 신안 주민 단단히 뿔났다
환경부 공원위 심의 지연 이어져
울릉공항 하반기 착공 소식에
"형평성 문제 심각하다..
흑산공항 조속히 건설하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흑산공항 예정 부지를 한 주민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조홍복 기자

“울릉도는 됨스로 흑산도는 안 되는 이유가 뭐여?”

지난 13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주민 몇몇은 배로 1시간 넘게 떨어진 흑산도 공항 건설 문제를 놓고 언성을 높였다. 의견이 나뉘어서가 아니다.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나서였다. 주민들은 이구동성 “정부는 희망고문 그만 하란게. 눈이 있으면 흑산도에 내려와갖고 상황을 살펴야 하는 거 아니여”라고 했다. 잠시 목포 아들 집에 거주한다는 박모(72)씨는 “겨울이라 흑산도서 나와 살고 있는디 허재비마냥 맴이 뻥 뚫려 허전해. 봄이 왔는디도 아직 흑산도로 안 들어가고 있어”라며 “왜? 공항이 안 됭께 그라제. 속상한게”라고 했다.

‘섬의 고향’ 신안이 발칵 뒤집혔다. 울릉공항이 올해 하반기 착공할 것이라는 소식이 최근 전해진 것이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뉴스였다. 흑산도공항은 건설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결론을 내지 못해 12년간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울릉공항은 비용 대비 편익이 흑산도공항보다 떨어지고, 비용도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런데도 착공이 눈 앞이다. 신안군은 “흑산공항 건설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요구가 더 거세졌다”며 “‘울릉도는 되고 흑산도는 왜 안 되나’는 식의 감정적인 대응이 일어나고 있다. 형평성 논란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흑산공항 사업 추진은 2008년 시작됐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1년 자연공원법 개정으로 국립공원에도 소규모 공항 건설이 가능해졌다. MB가 길을 터준 것이다. 당시 정부는 흑산공항 건설을 2011년 1월 국책사업으로 결정했다. 그해 10월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활주로 1200m 이하의 소규모 공항을 국립공원 시설로 인정하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도 급물살을 타다가 오히려 문재인 정부 들어 “흑산공항 건설이 대표적인 보수 세력의 환경 적폐 사업 중 하나로 낙인이 찍혀 좌초됐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있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표지석./조홍복 기자

지난해 11월 28일 신안군 주민 500여명으로 구성된 흑산공항건설대책위원회가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흑산공항 건설을 촉구할 때도 ‘적폐’가 거론됐다.

신안 14개 읍·면 주민은 그날 세종시에서 ‘문재인 정부는 흑산공항 공약 즉시 이행하라’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흑산공항 건설 공약이행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울릉공항은 흑산공항보다 3배가 넘는 건설비용에도 국립공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면서 “국립공원이 공항건설의 제약조건이라면 차라리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이들은 “흑산공항은 전 정권의 적폐 사업으로 치부됐다”며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일방적인 국립공원 지정이 진정한 적폐”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국립공원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공항을 세우자고 나선다. 1981년 지정 이후 39년간 사유재산권 침해 등 각종 규제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흑산공항 들어설 부지./신안군

형평성 외에 경제성 문제도 불거졌다. 울릉공항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BC(비용 대비 편익) 1.19로 흑산공항 4.38보다 경제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비는 흑산공항은 1833억원이다. 하지만 울릉공항은 3배를 웃도는 6633억원에 달한다.

울릉공항은 국립공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공항 건설에 속도를 낸다는 지적이다. 울릉도와 독도는 흑산도·홍도(가거도)처럼 지리적 여건과 생태 환경, 영토의 특수성 등이 매우 유사하다. 환경부가 2004년부터 해상국립공원 지정을 추진했으나, 지역 주민 94%가 반대해 보류된 상태다.

흑산공항은 울릉공항보다 3년 앞선 2023년 개항을 목표로 했지만 201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 가로막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원위는 철새 보호 대책과 국립공원 가치 훼손, 안전성 등의 이유로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원위는 환경 분야와 별개인 항공기 안전, 경제성을 문제 삼아 흑산공항 건설을 위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계획 변경안을 보류하고 있다. 신안군은 “섬 나라 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은 소규모 공항을 건설해 지역민들의 교통 기본권을 국가 차원에서 보장한다”며 “우리 정부는 이와 역행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의 경우 국립공원 내 흑산공항과 유사한 50인승 소형항공기 이용이 가능한 활주로 800~1500m 규모의 소형공항을 5곳에 건설해 운영한다. 인도네시아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발리섬 동쪽 1000여개의 섬으로 형성된 코모도제도 국립공원 내에 코모도공항(1393m)과 롬복국제공항(2750m)을 갖췄다.

흑산공항 조감도./신안군

흑산도와 홍도, 가거도를 찾는 이용객은 연간 30만명이 넘는다. 교통수단은 여객선이 유일하다. 흑산도는 바람이 좀 불면 며칠씩 오도 가도 못하는 절해고도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지역 주민이나 관광객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파고가 높은 겨울철에는 선박 통제가 잦다. 2017년 최소 54일간 뱃길이 끊겼다. 반나절 이상 결항은 115일에 달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흑산공항 건설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업인 데도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 막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섬 주민과 이용객들의 교통권과 생명권 확보를 위해 반드시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비는 1833억원이다. 흑산 소형 공항은 흑산의 경제 중심지 예리항에서 북동쪽으로 1.6㎞ 떨어진 대봉산(해발 125m) 54만7646㎡에 들어설 예정이다. 애초 국토부 서울지방항공청이 2021년까지 길이 1160m, 폭 30m 활주로를 갖춘 공항을 세울 예정이었다. 프로펠러가 달린 50인승 소형 항공기(ATR42 기종)가 취항한다.

김포에서 흑산까지 육로와 뱃길을 통해 8시간 걸리던 이동 시간은 1시간으로 대폭 줄어든다. 예상 편도 요금은 8만5000원 수준.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항공청은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섬 북쪽과 남쪽 6곳에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체 철새 서식지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흑산공항 부지 표시./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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