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쉼터 '헐값 매각' 정의연 "기부금 손실 진심으로 송구" 사과

오연서 2020. 5.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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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직접 가보니
할머니들 이동 어려운 곳에 수 억원대 기부금으로 쉼터 건립 부적절
윤대표 아버지 쉼터 관리인 지정 사과..'펜션으로 운영' 의혹도 일어
'헐값 매각' 의혹에는 "화장터 생긴다는 소문 때문에 땅값 떨어진 것"
정의기억연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로 운영하다 최근 매각한 경기도 안성의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오연서 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2013년 지정 기부금으로 매입한 경기도 안성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쉼터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이 졸속 운영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할머니들의 쉼터가 아니라 펜션처럼 운영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정의연은 입장문을 내고 “쉼터는 할머니들의 상시 거주가 어려워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매각했다”며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기부금에 손실이 발생하게 된 점 등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16일 오후 찾아간 안성 금광면의 건평 195.98㎡ 규모의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은 정대협이 2013년 현대중공업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를 통해 지정 기부한 10억원 가운데 7억5000만원을 들여 매입한 뒤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로 운영해왔다. 하지만 정대협은 매입 7년 만인 지난달 쉼터를 56% 정도 가격인 4억2000만원에 매각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이날 “정대협이 이 쉼터를 매각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의 기부금 유용 의혹을 제기하며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을 공개 비판하고 하루 뒤”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동네 주민들을 인용해 “이 쉼터에 할머니들이 거주한 적은 없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 역시 이날 “대기업 기부금으로 마련한 쉼터를 3년 만에 처분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졸속 운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쉼터를 헐값에 매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경기도가 산정해 공시한 쉼터의 개별단독주택공시가격은 정대협이 이 쉼터를 매입한 2013년 1억5200만원에서 지난 1월 1억7600만원으로 올랐는데, 실거래가는 되레 내린 가격으로 매각한 것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한국일보>는 또 더불어시민당 당선자인 윤 전 이사장의 아버지가 정대협 관계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이곳에 머물며 오랫동안 쉼터 관리를 맡은 사실이 석연치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의연은 이날 오후 ‘안성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관련 정의연 설명자료’를 내고 “쉼터는 할머니들의 쉼과 치유라는 주 목적 외에 중고생을 포함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인권과 평화 가치 확산을 위한 미래 세대의 교육과 활동지원의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기지촌 할머니와의 만남의 장, 정대협 자원 활동가와 함께 하는 모임 등이 진행됐다”며 “그러나 수요시위 참가, 증언 활동 등 할머니들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어 사실상 안성에 상시 거주하기 어려워 모금회와 협의를 통해 사업 중단을 결정하고, 2016년 이후부터 매각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이어 “주변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매각이 이뤄지지 않다 지난 4월23일에서야 매매 계약 체결이 이뤄지고, 이를 모금회에 유선으로 보고했다”며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 결과적으로 기부금에 손실이 발생하게 된 점 등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의연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쉼터를 내놓은 지가 굉장히 오래됐다. 처음에 조금 더 높게 내놨다가 안 팔려서 겨우겨우 판 것”이라며 “공인중개사를 통해 정상적인 절차로 팔았다. 손실이 난 것에 대해 송구스럽지만,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맨앞줄 왼쪽)가 2014년 1월 24일 낮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경기 안성시 금광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쉼터)를 방문한 기지촌 여성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이날 모임은 기지촌 할머니들께 연대의 정을 전하려 정대협이 새해맞이 식사 초대를 해 이뤄졌다. 안성/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왼쪽줄 앞에서 둘째부터)·김복동 할머니와 기지촌 할머니들이 2014년 1월 24일 낮 경기 안성시 금광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쉼터)에서 만나 함께 점심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 뒤에 선 이가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안성/이정아 기자

정의연은 2016년 하반기께부터 쉼터 매각을 추진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미 많이 돌아가셨고, 거리가 너무 멀어 요양 차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의연 사무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에서 쉼터가 있는 안성 금광면까지는 96㎞ 정도 거리로, 차로 1시간50분 정도 걸린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연세가 많은 할머니들이 이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예상된 지역에 굳이 큰돈의 기부금을 쓰며 쉼터를 짓는 일 자체가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한겨레> 취재 결과, 쉼터가 56% 정도의 가격에 매각된 건 쉼터가 있는 안성 금광면 일대에 2017년께부터 화장터 설립 계획이 추진되면서 인근 땅값이 급락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6월 안성시의회의 회의록을 보면, 이기영 시의원이 “현재 안성시는 화장장이 혐오시설이라는 반감 때문에 천안, 용인, 충주 등으로 가기까지 하면서도 설립이 되지 않고 있었다”고 발언한 사실이 적혀 있다. 이 때문에 쉼터가 계속 팔리지 않자, 정의연은 한때 매각을 철회하고 쉼터를 세미나실이나 연구실로 쓰기로 했다가 지난해 다시 매각에 나섰다고 한다.

쉼터 인근에서 부동산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며 10년째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김아무개(57)씨는 이날 <한겨레>와 만나 “2016년도께 정의연에서 집을 6억5000만원에 내놨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집을 사려고 했다. 거래 중에 5억8000만원까지 깎았고, 이후 동네에 화장터가 들어선다는 얘기가 돌면서 이 동네 전체에 ‘청정지역에 화장터가 웬말이냐’며 현수막이 붙기 시작했다. 그 이후 집값이 더 떨어지기 시작해 4억5000만원까지 깎았는데, 결국 지난달 다른 사람한테 팔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집이 애초 고급 자재에 조경도 고급으로 하다 보니 집을 비싸게 산 경향이 있다”며 “급하게 헐값으로 매각했다는 건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도 “2∼3년 전쯤 한참 화장터가 들어선다는 소문 때문에 그 동네 땅값이 바닥을 쳤다”며 “결국 화장터 설립 계획은 취소됐다”고 말했다.

쉼터 건립 초기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곳을 찾아 며칠씩 머물다 가기도 했다. 복수의 주민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항상 거주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가다 손님들이 오는 걸 봤다”고 했다. 김씨는 “1년에 3~5번 정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곳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갔다. 고 김복동 할머니가 오신 것도 봤다”고 말했다. 역시 쉼터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이 동네에 20년째 거주 중이라는 60대 여성 ㄱ씨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돼서 일본인 손님들이 우리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일본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시민단체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쉼터 손님들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뒤쪽에 있는 밤색 가건물(빨간 동그라미).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아버지 윤아무개씨가 이곳에 거주하며 쉼터를 관리했다. 오연서 기자

하지만 최근에는 할머니들이 쉼터를 찾지 않았고, 윤 전 이사장의 아버지 윤아무개씨만 건물 옆에 지어진 밤색의 작은 가건물에 살며 쉼터를 관리했다. 복수의 주민들은 “관리인 할아버지 1명이 거주하며 쉼터를 관리하고 주말에는 수원에 있는 집으로 가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주민 ㄴ(58)씨는 “관리를 하는 아저씨만 봤다. 계절마다 피는 꽃이 예쁘고, 집이 늘 관리가 잘 돼 있어 오가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며 “최근에는 관리인 아저씨 말고는 다른 사람들 사는 걸 본 적은 없다. (쉼터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할머니들이랑 손님들이 온 걸 봤는데, 나중에 티브이를 보니 그분들이 ‘위안부’ 할머니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관리인 아저씨가 윤 전 이사장의 아버지인 건 지난해 건물 거래로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됐다. 관리인 윤씨는 ‘위안부’ 할머니가 쉼터에 머물다 돌아갈 때 텃밭에서 캔 채소들을 건네주곤 했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이날 입장문에서 윤 전 이사장의 아버지에게 소정의 임금을 주고 관리를 맡겼다며 친·인척에게 관리를 맡긴 점에 대해 사과했다. 정의연은 “쉼터에는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 관리 소홀의 우려가 있었다. 이에 교회 사택 관리사 경험이 있던 윤 전 이사장 부친께 건물 관리 요청을 드렸고, 윤 전 이사장 부친이 근무하던 식품공장을 그만두고 쉼터 뒷마당에 마련된 작은 컨테이너 공간에 머물며 건물 관리를 맡아줬다”며 “정대협은 윤 전 이사장 부친께 관리비와 인건비 명목으로 2014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기본급과 수당을 합해 월 120만원을 지급했고, 사업 운영이 저조해지기 시작한 2018년 7월부터 2020년 4월까지는 관리비 명목으로 월 50만원을 지급했다. 친·인척을 관리인으로 지정한 점은 사려 깊지 못했다고 생각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쉼터가 펜션처럼 이용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2016년 7월26일 한 포털 블로그에는 ‘안성 펜션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블로거는 쉼터 사진과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지어진 곳인데 행사로 종종 쓰이고 평소에는 펜션으로 쓰인다나 봐요’라는 글을 올렸다. <한겨레>는 이 블로거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이 블로거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은 다소 달랐다. ㄱ씨는 “(정의연과) 관련된 사람들이 와서 자고 가곤 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은 아니었고, 술 마시고 펜션처럼 이용했던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ㄴ씨도 “펜션으로 이용된 적은 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도 “할머니들 모시고 왔을 때 함께 왔던 정의연 직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에 휴가를 오기는 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술판을 벌이거나 한 적은 없고, 영리 목적으로 이용한 적도 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안성/글·사진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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