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정치] '정치 거물' 된 정대협 간부들과 '친일파' 된 위안부 할머니들
'靑근무 2번' 신미숙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재판중
위안부 운동 발판 삼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약진
짧은 역사, 작은 규모에도 걸출한 인사 여럿 배출
할머니들은 정치행보에 오랜 불만.. 전문성도 문제
'회계 의혹'이 '친일 논란'으로.. 피해자도 공격대상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1998년부터 정대협 공동대표를 맡다가 2003년 노무현 정부 초대 여성부 장관인 된 지은희 전 장관이다. 여성운동에 잔뼈가 굵었던 그는 정대협 대표를 맡은 직후인 김대중 정부 시절 때부터 이미 다양한 자리를 거쳤다. 1999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시작해 2000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여성사회교육원 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장, 여성특별위원회 위원 등 단숨에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2005년에는 상지대 석좌교수가 됐고 이듬해인 2006년엔 무려 1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제7대 덕성여대 총장이 됐다. 2009년엔 연임에 성공해 2013까지 7년간 총장 자리에 있었다. 이화여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석사 출신으로는 드문 경력이었다.
정대협 초창기 홍보위원장을 맡고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이미경 현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도 대표적인 정대협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 일찌감치 정치에 투신해 서울 은평구갑 지역구를 중심으로 19대 국회의원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이 이사장은 문재인 출범 직후부터 지금까지 코이카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코이카 이사장은 대부분 외교통들이 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와 무관한 경력을 가진 이 이사장은 선임 때부터 ‘낙하산 인사’로 지적받았다.
윤미향 당선인은 이들 가운데서 그나마 정대협 활동을 가장 오래 이어간 인물이다. 만 28년 간 위안부 지원 운동을 해오다 올해 결국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윤 당선인은 초선이지만 당선과 동시에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가장 주목하는 여당 의원 중 하나가 됐다.
정대협이 작은 조직 규모와 짧은 역사에도 이렇게 적잖은 정관계 인사를 배출할 수 있던 것은 위안부 단체 활동 자체가 진보진영에서 여성운동의 상징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단체 출신들을 적극 기용하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들의 존재감은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노무현 정부 때와 유사한 인사 기조가 이어지면서 윤 당선인 역시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정대협 출신으로 정치인이 된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이화여대 졸업생이기도 하다. 당장 윤정옥 정대협 초대 대표부터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출신이다.
실제로 상당수 피해 할머니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정대협 출신 정치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표시해 왔다. 국내 첫 공인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심미자 할머니 등은 2004년 정대협에 대해 비판 성명을 내고 ‘모금 금지 소송’까지 냈다.
심 할머니를 비롯해 별도의 위안부 피해자 모임인 세계평화무궁화회 소속 할머니 33명은 그해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 문 닫아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미 정치인으로 둔갑해 간 이미경과 지은희를 포함해 정대협의 전·현직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며 “당신들이 그렇게 입이 닳도록 주장해온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 그리고 법적 보상’을 위해 당신들은 지금까지 한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대협 출신의 지은희가 여성부 장관이 되더니 정대협과 짜고 3억원의 국고를 유용하거나 횡령한 사실을 과연 노무현 대통령은 알고 계신지 참으로 궁금하다”며 “정대협 출신들이 정계에 속속 입문하는 것을 보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을 볼 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나고 정권이 3번이나 바뀌었지만 윤 당선인 관련 의혹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 역시 당시 할머니들과 마찬가지 논리로 윤 당선인의 국회 입성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윤 당선인을 향한 이용수 할머니의 지적은 다른 할머니들이 2000년대 초부터 고수하고 있는 입장과 사실상 판박이다.
물론 여당 정치인들과 여권 적극 지지층의 성향상 명목적으로는 “주 공격 대상은 야당과 보수 언론”이라고 선을 그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용수 할머니가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윤 당선인 논란 자체가 존재하기 어려웠던 만큼, 공방이 이어질수록 정치인들과 극단적 지지층의 입을 통해 피해 할머니들에게도 상처가 되는 발언이 쏟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윤 당선인 스스로도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며 논란을 친일 프레임으로 끌고 갔다. 그의 남편은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언론사 사이트에 “이 할머니가 태도를 바꾼 건 후손을 위해 목돈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처음부터 회계 장부만 투명하게 공개하면 끝났을 일을 불필요하게 친일-반일 대결로 확전시켜 반대 세력까지 논란에 편승할 여지를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우리 사회에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리인, 거간꾼들이 조직의 고난을 거치며 쌓아 온 성과를 낚아채 정치적 대표가 되는 ‘정치 먹튀’들이 비일비재하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직위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회원, 후원자들이 지위를 팔아서 국회의원 배지 달라고 말한 적도, 위임한 적도 없다”며 “이게 이번 (이용수 할머니 주장을 둘러싼 정의기억연대와 보수 언론 간 진실공방) 사건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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