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기간산업기금, 항공·해운만 콕집은 이유는?

박수지 2020. 5. 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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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산업기금에 2개 업종만 명시
정부 "상황따라 대응할것"밝혔지만
애초 계획대로 7개 모두 담을 경우
WTO 제조업 보조금 제소 초래 판단

고용총량의 90% 유지를 전제로 정부가 40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기간산업안정기금 대상 업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애초 지난달 정부가 항공·해운·조선·자동차·일반기계·전력·통신 등 7개 업종을 지정했을 때부터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업계의 불만이 나왔지만,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한국산업은행법(산은법) 시행령에는 이마저 축소돼 ‘항공·해운’ 2곳만 지원대상으로 명시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정부가 특정 제조업 지원을 법령에 적시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지급 관련 제소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뒤늦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일 금융위원회가 기간산업안정기금의 구체적 지원대상 근거 등을 담은 산은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3일 동안 이뤄진 관계부처 의견수렴 과정에서 지원대상이 2개 업종으로 축소됐다. 애초 정부 입법예고대로 7개 업종을 시행령에 담을 경우 세계무역기구 보조금 관련 제소 우려를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해 구체적 업종은 제조업이 아닌 항공·해운으로만 축소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이에 지난 12일 정부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산은법 시행령에는 지원대상에 항공과 해운 2개 업종만 열거하고, 다른 업종은 부처간 협의해 지정하도록 돼있다. 이와 관련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당장 유동성 문제가 시급한 항공과 해운이 예시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12일 브리핑에서 “7개 업종 중심으로 지원하는 방침은 여전하다”며 “이밖에 추가 수요가 있으면 관계부처와 협의해 지원 시기를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간산업안정기금에 대한 최초의 그림이 나온 지난달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 직후만 하더라도 얘기는 달랐다. 당시 금융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법령에 업종을 나열하지 않고 탄력적으로 쓰면 정부도 편하지만, 기금에 결국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절제되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해 7대 업종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나열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사실상 초안을 정부가 짜고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대표발의한 산은법 개정안에도 7개 업종이 나열돼 있었다. 그러다 국회 정무위원회 검토의견으로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으로 미리 업종을 확정하기 어려우므로 상황에 따라 시행령 이하에서 필요한 업종을 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효율적”이라고 지적함에 따라, 구체적 업종은 빠지는 대신 방산업·외국인투자제한업 등으로 법안이 폭넓게 수정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애초 법안에 7개 업종을 적시하려다 법 집행의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한 국회 지적에 따라 시행령에 담기로 정리된 것이다.

‘통상 리스크’는 뒤늦게 관계부처 회의에서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무역기구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따른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을 보면, 정부의 대출과 대출보증 등의 지원이 명백히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흘러들어가면 정부 보조금으로 규정될 수 있다. 다만 이 협정은 상품(제조업)에 국한돼 서비스업에 해당하는 항공과 해운 운송업 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애초에 지원대상으로 꼽힌 조선·자동차·기계 등은 제조업에 속해 언제든 다른 회원국이 이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우려가 있는 셈이다. 2018년 11월과 올해 2월에도 일본은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금융지원과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과정에서 재정 지원을 각각 보조금 협정 위반이라 주장하며 세계무역기구에 한국 정부를 제소한 바 있다. 산은법 시행령 개정 상황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굳이 업종을 열거해 (세계무역기구) 제소 리스크를 키울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의 코로나19 관련 기업 지원 근거인 ‘케어스 액트’(CARES act)에도 ‘항공업과 국가안보 산업’으로만 대상을 정한 것도 고려해 7개 업종을 나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제조업 지원이 전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국가의 보조금 때문에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까지 입증해야 보조금 협정 위반이 된다”며 “상대적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한 업종에 대해서는 저촉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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