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쓰러 동네 가게 가보니 "또 가고 싶어요"

류인하·배명재 기자 2020. 5. 1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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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잘 안 가던 인근 상권 방문
저렴한 가격·친절 서비스에 '만족'

[경향신문]

서울 마포구 주민 이다희씨(32)는 지난 15일 처음으로 동네 정육점에서 한우 차돌박이와 안심 그리고 돼지고기를 구입했다. 이전까지는 차로 7~8분 거리 대형마트에서 고기류를 주로 구입했지만 대형마트에서는 정부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어 동네 정육점을 찾았다. 이씨는 “아무래도 대형마트에 납품되는 고기류는 믿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매번 차를 타고 나가 구입해왔다”고 말했다. 집 가까운 곳에 정육점이 있었지만 발길이 쉽게 닿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찾아간 동네 정육점은 이씨가 갖고 있던 편견과 많이 달랐다. 이씨는 “아기가 먹을 고기라고 하니 안심에 붙어 있는 지방을 깨끗이 다듬어 무게를 재어 주는 것도 좋았고, 이유식용 다짐육도 기계 대신 손으로 다져줄 테니 언제든 오라며 친절히 맞아줬다”면서 “재난지원금을 다 쓰고 나서도 이곳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상추와 파채, 파채소스까지 덤으로 받아왔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ㄱ씨(38)는 15일 동네 과일가게에서 참외와 체리를 샀다. 과일값 1만7000원은 재난지원금으로 지불했다. 이직으로 서초구로 이사한 지 5년이 넘었지만 동네 과일가게에 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ㄱ씨가 방문한 과일가게는 회원가입을 하면 네이버 밴드로 ‘오늘 새로 들어온 과일’ 소식도 알려준다. 낙과, 흠과, 못난이과일도 저렴한 가격에 따로 판매하고 있었다. ㄱ씨는 “전통시장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동네 점포는 왠지 가격을 신뢰할 수 없을 것 같아 대형마트만 찾았는데, 이번 기회로 더 저렴한 값에 다양한 제철과일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정부 재난지원금 수령이 거주지 인근 작은 점포들을 둘러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시민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한편 소상공인들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동네의 재발견’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서울 은평구청도 11일부터 공무원 한 명당 관내 3~4개의 단골업소를 만들어 재난지원금을 소비하고 있다. ‘작은 가게’들을 살리고, 주변에도 알린다는 취지다.

■재난지원금, 동네 상권 안에서도 ‘희비’

소비자와 지역 농민을 잇는 생활협동조합의 접근 문턱도 낮아졌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성혜씨(41)는 재난지원금을 받기 전 동네에 있는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김씨는 “과일이나 채소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유기농·무농약 제품으로 구입해왔는데 백화점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쓸 수 없다는 말에 한살림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살림을 둘러본 결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유기농 코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유기농 식재료 구입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김씨는 재난지원금으로 유기농 황설탕, 각종 채소류를 구입했다. 실제 한살림 조합원 수는 전국적으로 3월 기준 70만3929명, 4월 기준 70만6434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7.2%(3월 기준) 증가한 수치다. 4월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6.5%를 기록했다.

반면 동네 상권 안에서도 재난지원금 사용을 놓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네 소형 점포보다는 중대형 점포로 고객이 몰리면서 중대형 점포 배불리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 동구 소형 슈퍼 주인 ㄴ씨는 “식료품 위주의 결제가 늘어나면서 매출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상품 선택의 폭이 큰 중대형 점포로 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면서 “8월 말 사용 만료 기간이 다가올수록 대형 점포에서 한꺼번에 목돈 결제를 하게 되면 동네 작은 슈퍼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ㄴ씨는 “지원금 용도를 생필품, 외식, 공산품 등으로 좀 더 세분화해서 소상공인들이 소외받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류인하·배명재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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