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참을 수 없는 현금 살포의 유혹

박제균 논설주간 2020. 5.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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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 향후 선거 양상 바꿀 것
관권·금권 선거 논란, 코로나로 넘겨.. 與든 野든 현금살포 공약 내밀 것
공짜 점심 길들여지면 더 많이 원해.. 선거 이후도 퍼주기, 재정건전 위협
文, 현재보다 미래 평가 두려워해야
박제균 논설주간
4·15총선은 향후 대한민국 선거의 양상을 바꿔놓을 것이다. 기록적인 여당 압승과 야당 참패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코로나19 사태와 주류 세대의 이동, 세상 바뀐 줄 모르는 야당의 ‘구악(舊惡) 공천’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들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헬리콥터 살포식 현금 지원 또는 지원 약속이 표심을 흔든 것도 분명하다.

당정은 7세 미만 아동이 있는 가구당 40만 원, 총 1조여 원의 아동수당을 풀었다. 그것도 선거 이틀 전에.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1400억 원을 선지급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단기 일자리 예산으로 뿌려댄 노인 일자리 사업은 보수 성향이 강했던 60대 이상의 표심을 뒤흔들었다. “어떤 정부도 이렇게 번듯한 일자리를 준 적이 없다”는 노인도 있었다.

문 대통령까지 나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기다리지 말고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자들에게 미리 통보해 주고 신청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선거 전날이다. 과거 같으면 관권·금권 선거 논란에 휘말렸을 현금 살포가 큰 잡음 없이 넘어간 건 코로나 위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는 뚜렷해졌다. 돈은 먹힌다는 것. 개발연대의 ‘고무신 선거’ 때도 그랬지만, 21세기 첨단산업 시대에도 선거에서 돈은 힘이 세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재난지원금을 속히 지급하라’며 여당보다 한발 더 나간 건 그런 민심의 속성을 간파한 것이다.

사회가 첨단화할수록 첨단 쪽에 선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부(富)의 불균형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잘살아도 국민은 너도나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시대다. 포퓰리즘 현금 살포가 잘 먹힐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현금 살포로 이번 총선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여당이 향후 대통령선거든 지방선거든 그 수법을 안 쓸 리 없다. 선거에서 현금 살포의 위력에 된통 당한 야당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금 살포가 선거 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14조3000억 원에 달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을 풀기 시작했다. 지자체들도 재난긴급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한 다음 날 국회 상임위는 예술인고용보험 법안을 통과시켰다. 저소득층 구직자에게는 최대 300만 원의 구직촉진수당도 지급된다. 또 1조5000억 원을 들여 93만 명에게 고용안정지원금도 준다.

코로나 여파로 4월 실업급여는 사상 최대치인 9933억 원이 나갔다. 이러니 슈퍼 예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올해 슈퍼 본예산에 현금복지는 54조 원이나 된다. 현금복지나 다름없는 단기 일자리 예산은 27조 원에 달한다. 86조 원이 넘는 막대한 현금성 복지가 1200만여 명에게 분배되는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 사태로 위중하다 해도 너무 많은 현금이 뿌려지고 있다. 공짜 점심에 길들여진 국민은 더 많은 걸 원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라 재정은 멍들어간다. 올해 늘어나는 국가채무만 120조 원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올해 말 국가채무는 849조 원으로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말 36%에서 올해 말에는 45%를 넘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아낌없이 퍼주려다 재정건전성을 허물어 대한민국의 미래에 암운(暗雲)을 드리운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 하기야, 그런들 어떠하랴. 총선에서 압승했고,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며 태종 세종에 비유되는 ‘문비어천가’마저 쏟아지고 있다.

정치인이야 그렇다 치고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사람까지 나서 “지난 3년 동안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의 바람”이라고 했다. 중앙일간지 기자 출신인 대변인까지 이렇게 닭살 돋는 멘트를 해대니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사실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현세대의 몫이 아니다. 마구 돈을 풀어 지금은 박수를 받더라도, 빈 나라 곳간을 물려받을지 모를 미래세대가 어떻게 평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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