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내 편이어서 옳다는 어리석음으로 다뤘다간

2020. 5. 1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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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사건, 정치권의 확대재생산과 묻지마 찬반으로
조국 때와 비슷한 프레임 전쟁치달을 조짐 보여

이해할 수 없는 정황 계속되면 위선 문제로 결정적 타격
공개 해명하고 잘못 있으면 상응한 처신하는 게 공인

윤미향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운영과 관련한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주 SNS 글을 통해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생각난다. 겁나지 않는다.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진보 진영이 조국처럼 자신을 대접해 주고, 언론도 같은 급으로 다뤄 달라는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정의기억연대를 공격하는 자들이 토착왜구다. NO 아베’라는 글과 그림이 트위터 등에 퍼지는 걸 보면 나라를 두 쪽 냈던 조국 사태같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회계 부정 의혹에 이어 경기도 안성시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의 이상한 매입·매도 과정, 부적절한 부친의 쉼터 관리, 위안부 할머니들과 관계없는 사람들의 활용 등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정의연의 일부 해명과 시인, 사과, 묵묵부답이 얽혀 소명된 것도, 의혹이 더 커진 것도 있다.

윤미향 사건과 조국 사태는 같은 점, 다른 점이 있다. 같은 점은 우선 편이 확 갈렸다.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갈려 제각각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인정하고 싶은 것만 인정한다. 이른바 선수들이 달라붙은 것도 비슷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싸움이 가열되는 분위기다. 토착왜구 시즌2로 보이는 공세가 시작됐고, 다른 쪽에선 진보단체의 의혹과 불투명성을 공격한다. 둘째로 정치권의 확대 재생산이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친일 반인권 반평화 세력이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려는 운동을 폄하하려는 공세’라는 프레임을, 보수 진영에선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조국과 같은 상황’이라는 프레임을 작동시킨다. 둘 다 상대방의 특정 행위를 일반화하려는 프레임 전쟁을 시작했다.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으로 상대방 주장을 의도적으로 곡해하고 무조건 공격해대는 방법을 택했다. 자기편 결속이나 패싸움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조만간 명쾌한 매듭이 없으면 윤미향 사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구성·운영과 함께 21대 국회 첫 정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다른 점이 훨씬 많긴 하다. 많다는 건 절대 우위의 여권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개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지난가을에는 친문 핵심이 지원하는 영남권 차기 대선주자급 조국에 대한 묻지마 지지 현상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태고,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비교할 수도 없다. 더구나 당시는 정권 공약 1호 검찰 개혁이라는 휘발성 강한 정치·정권의 게임이었다. 이번엔 불투명한 금전 거래의 단발성 의혹(현재까진)이다. 정권이 나서 적극 지원하기엔 좀 창피한 면이 있다. ‘탈탈 털었더라도’ 여론이 화난 건 대표적 진보 인사 조국의 위선 문제였다. 위안부 할머니라는 아픔에 돈이 얽혀 더 불쾌한 위선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조국 사태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여권으로선 ‘닥치고 총공세’ 외에 달리 선택한 전략이 없었다. 지금은 대통령과 사법부, 지방권력에 이어 의회 권력까지 차지한 거대 여당이다. 여권이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주류가 아니고, 강고한 친일 세력과 기득권이 아직도 진보 진영을 누르고 있다며 내세운 소수파·약자 코스프레가 통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모든 정치적 행위에 대한 책임이 훨씬 무거워졌다.

이 사안의 성격상 민주당이 나서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쉼터 매입·매도 과정이나 개입된 사람들의 면면으로 볼 때 별로 아름답지 못한 정황이 계속 나올 수 있겠다. 여당이 거대 의석을 무기로 해결사로 나서기엔 부담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방이 의혹을 제기했다고 친일, 반민주 프레임을 건다면 이용수 할머니도 친일분자가 된다. 지나가던 소도 웃다 말 일이다. 그냥 윤미향이 공개적으로 성실하게 소명하면 된다. 비도덕적인 일이 있었다면 도덕적 책임을, 법을 위반한 점이 있었다면 상응한 조치를 받으면 된다. 그게 정의연이 했던 활동의 의미와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조국 사태는 그가 장관으로 가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고, 윤미향 의혹은 그가 국회의원으로 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권이 윤미향 사건을 지혜롭지 못하게 다룬다면 상당한 후유증을 치를 것이다. 여당 찍어준 사람들이 모든 사안에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옳아서 옳은 게 아니라 내 편이어서 옳다는 그 용렬함,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다.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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