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공수처 수사대상 1호가 누구라고?

2020. 5. 1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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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수사 1순위' 돌출발언
표적수사 시비, 공수처 순항 저해
검찰-공수처, 견제 속 윈윈해야
문영호 변호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곧 출범한다. 공수처장 하마평도 흘러나온다. 그런데 기대를 모아야 할 신설 기구에 재를 뿌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대상 1호가 될 거라는 정치권 일각의 발언 때문이다. 검찰을 쪼개 공수처를 만들겠다는 저의를 의심하며 기구 신설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그것 봐라’ 할지 모르겠다. 권력의 눈 밖에 난 누군가를 찍어 내리는 데 공수처가 동원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 한 두 사람의 돌출행동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면 검찰에서 하던 일의 일부를 떼 넘겨받아야 한다. 공수처가 맡게 될 고위공직자 연루 비리 수사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검찰에서 수사할 때에도 중립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수사 주체가 바뀐다고 해서 지긋지긋한 그 망령(妄靈)이 쉽게 사라질 리 없다. 그런 시비가 생기는 수사가 누군가를 찍어내려는 표적 수사로 착수된 거라고 뒤늦게 밝혀지면 수사성과를 크게 올렸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수사착수 경위에 정당성을 확보해 표적수사로 의심받지 않는 것이 수사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대상이 누가 될 거라고 미리 점찍어 말한다는 것은, 수사 시작 전부터 표적수사의 의심을 자초하는 것 아닌가. 그건 초보자도 알고 있는 수사의 기본이다. 공정성 확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발언이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를 찍어 내리려고 착수했다는 표적수사 시비가 지난날 검찰을 얼마나 추락시켰는지 되돌아보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이 그 예다. 비극적 결말로 수사가 미완(未完)으로 끝났지만, 표적수사의 전형(典型)으로 꼽히는 그 사건으로 검찰은 치명상을 입었다. 반면 정치색이 더 짙은 사건인데도 표적수사 시비를 피해간 경우도 있다. 2004년 불법 대선자금수사가 그렇다. 당시 야당 대선 캠프의 모금을 대대적으로 파헤쳤지만, 대기업 계열사 수사에서 포착된 비자금을 추급해 들어간 것이라는 착수 경위 설명을 믿어준 것이다.

공수처에 중립성 시비가 생기는 걸 막아줄 첫 번째 관건으로 공수처장 임명을 꼽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임명권자에게 보은(報恩)하겠다거나 다음 자리를 탐내는 사람을 앉히면 그걸로 끝이다. 수사를 아무리 잘 해봐야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을 테니까. 임기를 두고 후보추천 절차를 다듬는 거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역대 검찰총장 중에 실패 사례가 자주 나온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공수처장 임명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신설 기구에 내재된 구조적인 표적수사 시비 요인이다. 통과된 법안을 뜯어보면 표적수사로 의심받을 구조적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검찰에서 일반사건을 수사하는 도중에 고위공직자 관련 혐의가 포착될 경우, 공수처장의 이첩요구에 응해 수사를 중단하고 자료 일체를 공수처 검사에게 넘겨줘야 한다. 그런데 이첩받은 자료를 토대로 수사하는 공수처 검사가 처장의 이첩요구에 기속(羈束)되기 쉽다는 게 문제다.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기소 쪽으로 기운다면, 표적수사 시비를 피해가기 어렵다. 그건 검찰에서 자발적으로 이첩한 사건을 받아서 수사하는 경우와는 달리 봐야 한다. 한편 이첩받은 혐의자를 무혐의 처리할 수도 있는데, 그때는 검찰에서 진행 중인 수사를 가로채 뭉갰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이것 역시 또 다른 패턴의 표적수사다.

게다가 수사대상에 따라 기소권까지 부여해 차등을 둔 것도 문제가 된다. 판·검사 등이 수사대상이 되면 예외적으로 수사 이외에 기소까지 할 수 있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7000여명의 공수처 수사대상 중에 판·검사가 5500여명이니 큰 비중이다. 분쟁을 칼로 자르듯 재단해야 하는 수사나 재판의 속성상 어느 한쪽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불만 때문에 판·검사에 대한 비위 진정을 공수처에 내고 표적수사 시비가 계속될 수 있다. 특히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을 넘겨받아 무혐의 처리한 검사나 무죄 선고한 판사를 공수처가 맡게 될 경우, 그런 시비가 더 뜨거워질 게 뻔하다.

공수처가 출범 이후 순항하려면 표적수사 시비를 낳는 구조적 문제를 보완하는 게 급선무다. 누구를 수사대상 1호로 삼겠다는 발언은 한 두 사람의 돌출 행동으로 끝나길 바란다. 검찰과 공수처의 양립이 불가피하다면, 상호 견제 속에서 ‘윈윈’해야 부패 대처 역량이 약화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부패 대처에 구멍이 생기면 그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문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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