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3년간 외면한 '통합' 약속, 이젠 안 지킬 명분이 없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0. 5. 1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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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취임 때 화두 '통합'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아
퇴임 후 분열·대립의 시기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면
모든 정치적 조건 갖춘 지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일주일 전 취임 3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한 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히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집권당이 불리하다고 하는 임기 중반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의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역시 70%를 상회하는 높은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이태원 클럽을 통해 감염된 확진자가 새로이 늘어나던 참이었지만, 그래도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뛰어난 방역 성과에 따른 자신감도 느껴졌다. 임기 3년을 넘기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레임덕을 향해 갔던 이전 대통령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국회 내 다수 의석, 높은 지지율, 3년간 국정 운영의 시행착오와 경험 등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만큼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코로나 사태 이후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결해 달라는 국민적 기대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고용 문제, 한국판 뉴딜, 포스트 코로나 산업 육성을 강조한 것도 그렇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는 해야 할 한 가지 이야기가 빠졌다. 바로 국민 통합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쪼개졌다. 작년 '조국 사태'가 보여준 대로, 우리 사회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격렬하게 대립해 왔다. 그동안의 지역 간 대립, 세대 간 갈등에 이념·당파적 대립까지 더해져 갈등은 매우 고조되었다. 정치적 의견 차이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얼굴을 붉히는 세상이 되었다. 이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세상이 갈라진 건 민주화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실 이러한 분열과 대립의 출발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다. 탄핵 이후 우리 사회는 그 여진(餘震) 속에서 정파적으로 쪼개졌고, 거기에 이른바 적폐 청산 작업까지 더해지면서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분열과 대립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마침내 그러한 분열을 넘어설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여당의 압승으로 끝이 난 21대 총선의 정치적 의미는 탄핵 정국 마무리라고 볼 수 있다. 20대 국회가 2016년 4월 구성되었던 만큼 그해 가을부터 전개된 대규모 촛불 집회에서 드러난 민심과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변화를 적절하게 대표할 수 없었다. 특히 야당은 2017년 대선에서 져놓고도 탄핵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변화한 정치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야당을 국민이 심판하면서 탄핵 이후의 정치적 후유증을 정리해 준 것이다.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통합을 향한 문 대통령의 의지를 기대했던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 국민 통합을 말해야 한다. 그동안의 분열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를 선과 악의 다툼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여당과 야당의 경쟁과 대립은 옳고 그름의 다툼이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의 표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야당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이 제기하는 비판과 반대 목소리를 경청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제도의 정치가 길거리 정치에 압도되지 않도록 정치권, 특히 대통령과 여당은 열렬한 지지자들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정치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위 적폐 청산 작업도 3년이 지난 만큼 사람을 처벌하기보다 제도 개선을 통한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할 때가 되었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도 이제는 마무리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국민 통합을 위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사건 역시, 재벌 세습과 관련된 해묵은 비판에 대한 근원적 해결책이 제시되었다면, 코로나 사태 이후의 위기를 넘어서려는 문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에 동참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3년 전인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행한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화두는 ‘통합’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 연설에서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 ‘국민 모두의 대통령’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그 약속은 어느 것 하나 아직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때는 심각한 분열과 대립의 시대였다.’ 어느 대통령도 퇴임 후 자신이 이렇게 평가받고 기억되길 원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취임식에서 한 그 말을 지킬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조건이 다 갖춰진 만큼 그때의 초심으로 되돌아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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