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절한 아버지가 혼자 다 썼다"..재난지원금 가정불화 불똥

김지아 2020. 5. 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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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부산시 연제구 거제1동 주민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있다. 뉴스1

“같은 집 살아도 남이나 다름없는 아버지라서 저는 혜택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분명 술 사 먹고, 혼자 다 쓰겠죠.”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25)의 말이다. 정부는 지난 4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세대주와 불화를 겪고 있는 세대원들이다. 재난지원금은 세대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주와 사이가 좋지 않은 가정에선 세대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A씨는 “세대주인 아버지가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건 하나도 없다”며 “친구들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외식했다거나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난 박탈감만 든다”고 털어놨다.

B씨(31)도 “고민을 하다 세대주로 등록된 어머니께 내 몫 20만원 정도를 보내달라고 전화로 이야기했다가 싸우기만 했다”며 “차라리 맘 편하게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순불화는 이의신청·대리수령도 애매해”

19일 오후 서울의 한 전통시장 긴급재난지원금 카드 사용가능 매장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서울 도심과 명소·대형마트 등은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재난지원금의 주요 사용처인 재래시장은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몰리며 종일 성황을 이루고 있다. 뉴스1

행정안전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이의신청’을 받고 있다. 18일 행안부는 “15일까지 들어온 이의신청은 총 6만 8500건”이라며 “이혼이나 결혼 등으로 인한 가족관계 변동 사항, 피부양자 조정 등과 관련한 이의신청이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의신청은 이혼 소송 중인 가정이나 가정폭력 피해자 등만 할 수 있다. 서류로 가정불화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엔 구제를 받기 어렵다. 위임장을 가지고 동사무소에 방문할 경우 대리 수령도 할 수 있지만, 불화가 있는 가정에선 이 역시 쉽지 않다.

김모(28)씨는 “대신 세대원이 수령할 수 있다고 해서 알아보니 세대주가 작성한 위임장, 신분증, 도장 등이 필요했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안은 아니라 이의신청을 하기도 모호하고, 돈 내가 대신 받을 테니 위임장을 써달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세대별 지급 아닌 개인별 지급해야”

19일 오후 울산 남구 신정상가시장의 한 상점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복지수혜 대상을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구 단위별 지원은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혜택이 공평하게 분배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지만, 가구 내 평등한 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을 경우 가정 내에서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서류상 가정불화를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 불만을 증폭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처럼 일회성 지급은 수혜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심사도 할 수 없으니 개인별 지급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미국 등에선 복지혜택을 세대 기준이 아닌 개개인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있고, 경기도에서도 긴급재난지원금을 개인별로 지급했다”며 “아무래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보니 행정 편의상 세대별로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의 개념도 변하고 있다”며 “의무부양자 제도 폐지의 목소리도 높은 만큼 복지혜택이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별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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