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죄가 없던 사람 아닌가"..전과자 낙인 속 40년

오효정 기자 2020. 5. 20. 21: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앵커]

JTBC는 이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일상을 빼앗겼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봤습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기까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효정 기자입니다.

[기자]

"정해동. 포고령 위반 징역 10월"

광주와 함께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전주에 사는 대학생은 전단을 뿌리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정해동/5·18 유공자 (당시 전북대 학생) : '광주의 사건을 전주를 통해서, 또 전주가 받으면 대전이나 서울이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평범한 일상은 다시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정해동/5·18 유공자 (당시 전북대 학생) : 기말고사도 봐야 하고. 군 복무는 어떻게 할 건지 그런 고민하고 있었고. 이 엄중한 시국에 아무 생각 없이 군대 갈 수는 없다… (군대를) 미뤄놓은 상태였거든요.]

하지만 스물둘 생일은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정해동/5·18 유공자 (당시 전북대 학생) : 불러내서 몽둥이로 보는 앞에서, 몇 대를 때려도 정말 무섭게 때리죠. '너 같은 놈 맞아 죽어도 언론에도 안 나고 아무도 모르고…]

학교에선 제적되고 전과도 남아 삶의 궤적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정해동/5·18 유공자 (당시 전북대 학생) : 그 당시에 참여했던 걸 후회하거나 그런 생각은 흔히 하는 말로 1도 없고요]

목숨을 잃은 동지들에게 미안해 재심도 망설였습니다.

"윤석루. 내란음모죄 무기징역"

시신을 실은 리어카가 금남로를 돌아다니자, 아들은 집을 뛰쳐나갔고 어머니는 시내에서 시신 더미를 뒤졌습니다.

[윤석루/5·18 유공자 (당시 시민군 기동타격대장) : 하나하나 가족 못 찾은 사체들을 가마니에 덮여 있는 것을 열어서 확인하고 울고불고]

억울한 옥살이가 끝나도 꼬리표는 남았습니다.

[윤석루/5·18 유공자 (당시 시민군 기동타격대장) : 다 죄가 없는 사람이고 양심적인 사람이라 할지언정, 서류상으로는, 기록에는 죄인이에요.]

2019년, 재심

[비록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이 무모해 보였던 한 청년의 행동이었지만 이 일을 법적으로 재평가하고 역사적으로 한번 정리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라 생각하여 이 재심을 청구하는 바입니다.]

담담하게 다시 선 피고인석.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준 건 재판장의 사과였습니다.

[정해동/5·18 유공자 (당시 전북대 학생) : (재판장이)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사과를 하고 개인적으로 있었던 고통과 피해에 대해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윤석루/5·18 유공자 (당시 시민군 기동타격대장) : 이제 그래도 참 모든 것이 제자리에 갖다 놔졌다, 제자리에 갖다 놔졌다… 원래 나는 죄가 없던 사람 아닌가.]

(영상그래픽 : 김지혜)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