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로 향하는 이란 석유..미국 제재 '동병상련'

정의길 2020. 5. 2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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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배럴 실은 유조선 5척 조만간 도착
베네수엘라 "함정과 비행기로 환영할 것"
미국, 이란의 제재망 구멍내기에 고민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이란 유조선 클라벨이 20일 지중해의 지브롤터해협 부근 공해상을 지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과 베네수엘라가 동병상련의 상호부조를 시도하고 있다. 이란이 자국의 남아도는 석유를 이용해,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들과 연대를 시도하며 미국의 제재망에 구멍을 내려는 전략이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베네수엘라 국방장관은 20일 국영텔레비전에 출연해 “이란 유조선들이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에 진입하면 해군 함정과 비행기들이 환영 및 이란 국민들과의 연대협력을 표시하며 호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유조선 5척은 4500만달러 상당의 휘발유 150만배럴을 싣고 현재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5월말~6월초 베네수엘라에 도착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매장량의 유전 보유국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는 20년에 걸친 미국의 제재와 봉쇄, 그리고 부패 탓에 채굴과 정유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극심한 연료난을 겪고 있다. 이란은 미국에 맞서는 반제재 연대의 일환으로 베네수엘라에 연료 제공에 나선 것이다.

이란도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의 제재와 봉쇄를 받아왔으나, 정유산업을 통해 자력갱생하며 국내 수요는 물론 외국에 수출할 원유와 정제유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세계적인 석유 수요가 줄고 가격이 폭락하자, 이란은 남아도는 석유를 이용해 베네수엘라와 시리아 등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들에 지원을 자청하고 나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란 비행기들이 베네수엘라 (석유) 지원의 대가로 받은 금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자톨라 솔타니 베네수엘라 주재 이란 대사는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최근 영국 중앙은행을 상대로 9억3천만유로(약 1조2500억원)의 금을 인출할 수 있게 해달라며 런던 법원에 소송을 냈다. 영국 중앙은행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을 위탁 보관하는데, 2018년부터 베네수엘라 정부의 금 인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또 미국 등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마두로 정부가 남부 밀림에서 채취된 ‘피의 금’을 이란에 지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금 채취는 마약카르텔 등 범죄조직들이 개입된 사업이다.

미국 재무부는 19일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거래와 관련해, 중국에 소재한 운송회사 ‘상하이 세인트 로지스틱스’를 이란 항공사 ‘마한 에어’의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제재를 가했다. 미 재무부는 이 운송회사가 최근 금을 받는 대가로 베네수엘라에 정유장비를 제공하는 항공편을 주선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거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이란 유조선에 직접적인 대응을 하는 것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란 유조선들이 운항하는 카리브해에는 현재 마약 단속을 목적으로 미 해군 전함이 배치되어 있다. 이 전함들은 이론적으로는 검색을 목적으로 이란 유조선을 제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관리들은 이란의 이런 수송이 정례화될 때만 개입해야 한다며 미군 개입의 자제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올해 초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살해한 이후 두 나라가 간신히 무력충돌을 피한 상황인데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도적 위기 상황이라는 점도 고려되고 있다. 크레이그 폴러 미 남부사령부 사령관은 “베네수엘라와 관련해 우리의 초점은 정보 공유이고, 마두로와 그 일당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란 유조선에 대한 무력제재 가능성을 낮췄다.

중남미에서 무역 및 정치적 거점을 구축하려는 이란의 시도는, 중남미에서 역외 국가의 개입을 반대해온 미국의 오랜 대외정책인 ‘먼로 독트린’에 큰 도전으로 간주된다.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 등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중남미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이란까지 가세하는 상황이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란-베네수엘라 연대가 공고해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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