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에 방역물품 보낸 경주시장.. "매국노" 비난에 "지진때 도움 받아"

서유근 기자 2020. 5. 2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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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자매도시에 코로나 방역물품 지원했더니 비난글 이어져
주 시장 "대승적 차원서 돕는 게 日 이기는 길"
경주시에서 보낸 방역물품 앞에서 ;'감사합니다' 팻말을 들고 있는 나카가와 겐 나라 시장/경주시 제공

경북 경주시가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자매·교류도시에 방역 물품을 지원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경주시와 주낙영 경주시장을 향해 “토착 왜구냐” “민족반역자”라는 비난을 쏟아냈고, “경주시장은 사퇴하라” “경주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논란이 커지자 주낙영 시장은 22일 “2016년 경주 지진 때 일본 도시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며 일본 자매도시에 대한 방역 물품 지원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주시청 자유게시판

경주시는 지난 17일 자매도시인 일본 나라시(市)와 교류도시인 교토시에 경주시가 비축해둔 방호복 1200세트와 방호용 안경 1000개씩을 항공편으로 보냈다. 경주시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코로나 사태로 방역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머지 일본 우호도시에도 방호복 각 500세트와 방호용 안경 각 500개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주 시장은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자 이웃”이라며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한·일 양국이 코로나 대응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나카가와 겐 나라시장이 경주시가 보낸 방역물품 앞에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사진도 공개했다.

◇경주시 홈피엔 “왜 세금으로 日 돕나” “민족반역자” 비난 댓글 수백 건 쇄도…’일본 불매, 경주 불매’ 주장도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주시청 자유게시판에는 일본에 대한 방역 물품 지원에 반대하며 경주시와 주 시장을 비난하는 글이 수백 건 쏟아졌다. 22일 낮 1시 현재까지 경주시청 게시판에는 방역물품 지원과 관련해 약 400여 개의 글이 올라왔다.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하는 일본을 친구라고 도와주나” “일본 수출 규제로 대한민국 위기가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방역 물품을 지원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 ”왜 국민 세금으로 적국인 일본을 돕나” 등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토착왜구냐” “민족 반역자” “경주시장은 매국노냐”라는 원색적인 비난글도 많았고, 경주시장 사퇴 요구도 나왔다. 또한 “일본 불매와 함께 경주도 불매한다" "노 재팬(NO JAPAN) 노 경주" “경주여행을 취소하겠다" "경주 불매운동을 하겠다" 라는 주장도 많았다.

반면 “무조건적인 반일은 옳지 않다” 인도주의적인 조치일 뿐” “일부 인터넷 여론은 흔들리지 말라”는 찬성 글도 있었지만 일부에 그쳤다.

보배드림·클리앙 등 일부 진보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관련 기사가 공유되면서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경주시청 홈페이지에 찾아가 댓글을 다는 ‘성지순례’ 움직임도 나왔다. 포털 사이트에는 “대구·경북은 왜구 잔당”이라는 지역비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경주시장 “평생 먹을 욕 다 먹어… 미래지향적 극일 필요”

논란이 커지자 주낙영 경주시장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주시가 자매·우호도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나라시와 교토시에 방역 물품을 지원한 데 대해 밤사이 엄청난 비난과 공격에 시달렸다”면서 “토착왜구다, 쪽발이다, 정신 나갔냐, 미통당(미래통합당) 답다 등등 평생 먹을 욕을 밤사이 다 먹은 것 같다”며 글을 시작했다.

이어 “이번 방역 물품 지원은 상호주의 원칙 하에 지원하는 것”이라며 “2016년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 우리 경주는 일본을 비롯한 해외 자매·우호도시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주 시장은 “지금은 일본이 우리보다 방역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럴 때 대승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문화대국인 우리의 아량이고 진정으로 일본을 이기는 길이 아닐까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정학적으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한·중·일 관계는 역사의 굴곡도 깊고 국민 감정도 교차하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관계”라며 “(경주는) 외국에서 많은 손님들이 와야, 다시 말해 열고 품어야 먹고 살 수 있는 국제관광도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복합적 관점에서 방역에 다소 여유가 생긴 우리 시가 지원을 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반일(反日)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극일(克日)이라는 점을 간곡히 호소드리고 싶다”고 글을 마쳤다.

/주낙영 경주시장 페이스북

하지만 주 시장의 입장문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주 시장의 페이스북 입장문 댓글란에는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일본은 한 번도 한국을 친구라 생각한 적 없다” 등 주 시장을 비판하는 내용과 “자매도시와의 외교는 친일하고는 다르다” “언제적 반일감정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 함께 올라오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나라시는 1998년 태풍 ‘애니’로 피해를 입은 경주시에 시민 성금 1290만엔(약 1억 3500여만원)을 보냈다. 2016년 9월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나라시건축사회에서 성금 20만 6000엔(약 240만원)을 보냈다. 또한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장도시인 경주시는 연맹에 소속된 교토시와 현재 크루즈 사업을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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