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의 정의연 막는다.. 기부금 많은 단체, 정부가 회계법인 지정

세종=이민아 기자 2020. 5. 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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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정 의혹을 계기로 공익법인의 자금 운영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해 ‘감사인 지정제도’ 적용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공익법인의 감사인 지정제도란 공익법인이 외부 회계 감사인을 자율 선임하면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기관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로, 오는 2022년 시행 예정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공익법인은 일정 기간 감사인을 직접 선임하는 대신 정부가 정해주는 곳에서 감사를 받게 된다.

22일 정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2022년 시행되는 감사인 지정제도 적용 대상 공익법인을 선별하는 기준에 ‘기부액’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개정한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자산 1000억원 이상 또는 총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인 공익법인만 감사인 지정제도 적용 대상이다. 기재부는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제도 적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감사인 지정제도 적용 기준 확대를 검토하는 것은 ‘자산 규모 1000억원 이상’ 기준을 만족하는 공익법인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자산 규모 1000억원 이상 공익법인은 주로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이다. 이는 현재 정부의 공익법인 관리 초점이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공익법인이 재벌 총수의 편법 상속과 증여 수단 등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같은 맥락으로 기존에는 의무 회계 감사 대상이 되는 공익법인을 자산 100억원 이상의 중대형 공익법인으로 한정해왔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익법인은 다른 사람의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곳이므로, 회계 투명성이 재벌 총수 관련 단체가 아니더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점차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실 재벌 공익법인은 시민단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부처에서 활동을 눈겨여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회계 등 운영 관련 문제가 덜한 편이고, 오히려 정의기억연대와 같은 작은 공익법인들이 사각지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올해부터는 연간 총수입이 50억원 이상, 또는 연간 기부금이 20억원 이상을 받는 공익법인도 외부 감사 대상이다. 최근 논란이 된 정의기억연대는 이 기준에 따라 외부 감사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정의기억연대의 지난해 총자산은 21억1001만원, 연간 기부금 수익은 8억2551만원이다.

정부는 공익법인이 전용계좌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부과하는 징벌적 개념의 가산세도 상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전용계좌개설 사용 의무를 위반하면 미사용액의 0.5%를 가산세로 부과하고 있는데, 이 비율을 더 올리겠다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계기로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공익법인의 자금 투명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정의연의 회계 부정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외부 감사 공영제를 도입하고, 모든 공익법인에 감사인 지정제도를 적용하는 등의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외부 감사 공영제는 공공성이 강한 비영리조직의 회계감사를 정부 또는 제3자가 회계감사인을 선임해 외부 감사를 하고, 감사 비용은 정부 또는 회계업계가 분담하는 방안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익법인은 공공성을 띄는 단체이고 국민의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외부 감사 공영제를 도입해 규모와 관계없이 감사인 지정 제도를 적용받아야 한다"면서 "민간기업의 경우 기업 규모에 따라 감사 규정이 달라지는데, 같은 잣대를 공공성을 띄는 공익법인 감사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한상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기준을 만들어 감사인 지정제도나 외부 감사를 적용시키면, 감사를 피하려고 자산이나 기부액을 축소하는 공익법인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관계기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TF) 등 별도 조직을 만들어 공익법인 감사 인력을 충원하거나, 공인회계사 시험 1차 합격생들이 수료해야할 조항에 ‘공익법인 회계 봉사’ 등을 신설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력을 충분히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사인들이 민간기업보다 보수가 약해 공익법인 회계를 잘 안 맡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공익법인의 결산일을 민간 기업의 회계 결산일이 몰려있는 12월 말 대신 연 중 ‘회계 비수기’로 바꿔줘 감사인 유인책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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