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재파일] 공고한 진영 논리 속에서 '공판 중심 보도'는 가능하긴 한 걸까?

박원경 기자 입력 2020.05.22. 15:00 수정 2020.05.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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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선동·선전과 관련해 자주 회자되는 말들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세력들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자주 소환됐던 이 말들이 최근에는 미디어 영역,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재판과 관련해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등을 지켜보며 조국 전 장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은 상대를 향해, 그리고 조 전 장관을 옹호하며 검찰과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측에서도 상대를 향해 이 말들을 소환하고 있는 듯합니다.

조국 전 장관 일가 재판 보도에 대한 일각의 반응은 전에 없는 모습입니다. 최근엔 기성 언론들이 검찰의 시각에 치우쳐 피고인 측의 반대 심문은 충실히 보도하지 않고 있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 등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 때문으로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검찰 수사 보도 비판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판 중심 보도'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좀 늦게 알더라도 정확히 보도하자, 수사 과정에선 언론에 입장을 거의 내지 않는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할 수밖에 없으니 피고인의 입장도 충분히 반영해 보도하자는 취지입니다. 언론 보도에 있어서도 검찰과 피고인의 '무기 대등'을 실현시켜보자는 취지입니다. 아무리 중한 죄를 지었더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공판 중심 보도'의 선한 의도는 옳습니다.

문제는 현실입니다. 공방이 이뤄지는 형사 법정에서 일방의 의견만 주목하거나 한쪽의 발언을 비틀어서 사실로 전제하거나 발언 자체를 잘못 이해하며 '공판 보도'를 비판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런 모습의 극단은 기성 언론에 혐오와 재판 불복종으로 나타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여전히 '태블릿 PC 조작'을 주장하며, 기성 언론을 비판하고 법원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논문 제1저자 자격에 대한 공방은 언론 플레이인가?

조국 전 장관 일가의 재판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난 12일, 한 시사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에 변호사 2명이 출연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의 딸 조민 씨가 고등학교 시절 병리학 논문 제1저자 자격 문제가 법정에서 논의되고 있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논문 관련된 부분을 검찰이 계속 질문을 하고 있는데, 논문은 사실 공소장에 기재가 안 된 부분이거든요. 특히 제1저자로 기재된 부분이 그렇습니다." (박지훈 변호사,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5월 12일)

공소장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데, 검찰이 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박지훈 변호사 : "소송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라고 많이 보여 지거든요."
진행자 : "대 언론 플레이일 수 있다?"
박지훈 변호사 : "(언론에) 가장 처음 등장한 게 표창장 다음에 논문 제1저자였어요. 그 이야기가 공소장에 빠졌는데, 이게 언론에 나오는 게 유리하다고 검찰이 판단한 것 같습니다."

진행자가 논문 제1저자 관련 내용은 공소장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확인하자 이렇게 답합니다.

진행자 :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어쨌든 공소장에 없는 부분입니다."
박지훈 변호사 : "원래는 이야기 하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이 말만 들으면, 검찰은 공소장에 없는 내용을 끄집어 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고, 언론은 검찰에 부화뇌동해 조국 전 장관 일가를 비판하고 있다고 비춰질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일부 진영의 최대 비판 대상인 검찰과 언론을 한 데 묶어 '검-언 유착' 의혹을 제기한 셈인데, 사이다 발언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세한 내용에까지 관심을 갖기 힘든 국민들은 저 발언은 사실로 믿으며, 기성 언론에 대한 혐오를 키워 나갔을 수도 있을 겁니다.

● 왜 '논문 제1저자 자격 문제'는 법정에서 논의 되는가

하지만, 논의의 전제가 되는 '논문 제1저자 관련 내용은 공소장에 적혀 있지도 않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11일 기소된, 정경심 교수에 대한 공소장에는 논문 제1저자 관련 내용이 '범행 과정'이란 목록에서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단국대학교 의과학연구소 허위 인턴 및 논문 저자 허위 등재'라는 항목입니다.

검찰은 2009년 8월, 단국대 장영표 교수가 조민 씨가 대학 입시 활용 목적으로 2007년에 한 체험활동 확인서 발급을 요청받자, 조민 씨가 의학 논문 제1저자로 능력을 갖추고 실험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처럼 활동 내역과 활동 평가 내용을 허위로 기재한 확인서를 발급해 주고, 그 내용이 한영외고 생활기록부에 기재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발급해 준 확인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활동 내역 : 1) 유전자(DNA) 구조와 복제 과정에 대한 이론 강의를 이수하였다. 2) 효소중합 반응검사를 이용한 유전자 검사에 대한 이론 강의를 이수하였다. 3) 실지로 환자의 검체를 이용하여 효소종합 반응검사 실습을 시행하였다. 4) '가사에 의한 신생아 뇌손상에서 eNOS 효소의 유전자 다형성에 관한 연구'에 연구원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활동평가 : 1) 효소종합 반응검사 방법에 어느 정도 숙련이 가능하였다. 2) 효소종합 반응검사를 이용한 실험에서 결과 도출이 가능하였다. 3) 연수 기간 중 본 실험에서 연구원의 일원으로 적극적 참여가 가능하였다."

● 비틀린 전제 사실…생산적 논의는 가능할까

공소장에 '논문 제1저자 관련 내용'이 담겨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출연자의 발언 취지를 굳이 살려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논문 제1저자 관련 내용은 공소장에 적혀 있기는 하지만, 정경심 교수의 혐의 사실과 직결되는 내용은 아니다.'

정경심 교수는 딸 조민 씨와 관련해 국립대 대학원 입시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허위 내용이 기재된 단국대 체험 확인서를 제출해 대학원생 선발 과정을 피해를 끼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입시 때 '제1저자로 기재된 논문'이 제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검찰은 논문 제1저자 자격 문제를 법정에서 계속 언급하고 있고, 언론은 그 내용에 주목해 온 것일까요? 논문 제1저자 자격 유무는 혐의와 직결된 체험활동 확인서 내용의 진실성과 불가분의 관계,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조민 씨의 단국대 의과학 연구소 체험활동 확인서에는 '연구원 일원 참여', '효소중합 반응 검사 시행', '결과 도출 가능' 등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비록 고등학생이었다고 하더라도 확인서에 적힌 내용대로 충실히 이행을 했다면, 논문 제1저자 자격이 있다고 수긍할 여지가 생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확인서 내용이 진실 되느냐는 질문은 '논문 제1저자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혐의와 직결되지 않는 '논문 제1저자' 관련 내용이 재판에서 계속해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법률 전문가로서 많은 재판을 경험해 봤을 출연자들이 이런 상황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복잡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게 위해 이런 배경을 생략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방송된 내용은 잘못된 전제에 기반을 둔 오류일 뿐입니다. 그만큼 생산적 논의 가능성이 줄어들 게 됐고, '공판 중심보도'를 하려했던 많은 언론사들에 대한 혐오만 커졌을 뿐입니다. 차라리 '검찰이 혐의 사실과 직결되지 않는 내용을 공소장에 담아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를 위반했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 "'직인 파일'은 재판부의 석명 사항이 아니었다"?

이런 전제에 대한 오류 말고, 재판 과정에 나온 발언 유무와 그에 대한 해석 오류도 등장했습니다. 한 TV 프로그램 출연자와 진행자에 의해서입니다. 지난 7일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 재판부가 '석명(사실관계를 설명하여 내용을 밝힘)'을 요청한 부분과 관련해서입니다. 출연자로 나온 유튜버의 얘기에 진행자까지 동조하면서 왜곡은 마치 사실이 됐는데, 우선 재판부가 석명을 요청한 경위는 이렇습니다.

검찰 수사 당시, 딸 조민 씨의 동양대 총장 표창장은 총장의 위임을 받아 발급받았다고 주장했던 정경심 교수 측은 최근 입장을 바꿨습니다. 발급 일자가 '2012년 9월 7일'로 된 동양대 표창장은 2012년 9월 동양대 직원에게 전달 받았고, 이후 조민 씨가 표창장을 분실했다고 해서 동양대 직원을 통해 2013년 6월에 재발급 받았다고 주장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정 교수가 기안을 올린 건 없고, 표창장을 건넸다는 동양대 직원이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정 교수 측 입장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10일, 검찰은 임의제출 받은 동양대 강사휴게실 컴퓨터에서 표창장 위조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 등 표창장 관련 파일 여러 개를 확보했습니다. 검찰은 이 파일들이 표창장 위조 과정을 추정케 하는 단서라고 주장합니다. 해당 컴퓨터가 정경심 교수가 사용했던 것이라는 건 정 교수 측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 교수가 딸의 표창장을 직원을 통해 정상 발급 받았다면 해당 파일들이 왜 정 교수 컴퓨터에 있을까? 특히, '총장 직인 파일'이 더욱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 재판부는 해당 파일들이 왜 정 교수 컴퓨터에 있었는지를 설명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정 교수 혐의와 직결되는 것이 '총장 직인 파일'이기에, 많은 언론들이 '재판부가 직인 파일이 왜 정 교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지에 대해 석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왜곡은 어떻게 사실이 되는가

그런데 TV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한 변호사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유튜버한테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얘기를 들었는데 그날 재판정에서 판사가 해명해 보라고 얘기한 것은 왜 거기에 총장 직인 파일이 있느냐고 물어본 게 아니라 그 안에 표창장이라는 파일이 또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건 왜 거기에 파일이 들어 있냐. 그렇게 물어봤다는 겁니다. 이게 작은 차이 같지만 직인파일이 있다는 것과 표창장 사진 자체가 있다는 건 완전히 느낌이 다른 거거든요. 그런데 저도 오늘 이 시간에 와서 유튜버 만나기 전까지는 감쪽같이 그냥 총장님 직인 파일이 있었다고만 들었어요." (양지열 변호사, <변상욱의 뉴스가 있는 저녁>, 5월 12일)

이에 대해 함께 출연한 유튜버는 이렇게 부연 설명합니다.

"재판부에서 석명 요청한 건 조민 표창장. 표창장 파일이 왜 그 컴퓨터에 들어 있냐고 설명을 요구한 건데 지금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 전혀 별개의 파일이거든요, 직인 파일은. 의미가 다르고. 그런데 조금 잘못 보도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걸 제가 아까 휴게실에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유튜버 빨간 아재, <변상욱의 뉴스가 있는 저녁>, 5월 12일)

하지만, 이는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사실이 아닙니다. 출연자들은 기성 언론들이 재판부의 명확한 발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쪽같이' 허위 보도를 하고 있다는 취지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하지만, 진행자는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출연 보도는 <"검찰 일방 주장만?" 논란의 조국 재판 보도…외면 받는 기성 언론>이라는 제목이 붙어 유통됐습니다.

"아무튼 저런 내용을 기사를 통해서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고 앞으로 나오는 기사들은 피고인과 또는 검찰 측, 그다음에 변호인 측의 얘기들을 제대로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잘 보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변상욱 앵커)

사진=연합뉴스.

● '공판 중심 보도'는 만능 해결책일까

위 유튜버의 주장은 사실 진위 여부 확인이 어렵습니다. 재판은 공개적으로 이뤄지지만 녹취는 불가능합니다. 재판을 청취하는 기자들이 녹취록 수준에 가깝게 공판 워딩을 받아치고는 있지만, 녹취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에 출연한 유튜버처럼, "나도 재판에 들어갔는데 내가 들은 건 그게 아니다. 기자들이 잘못 듣고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면 마땅히 사실 여부를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당 유튜버의 주장 내용은 재판부의 석명 요청사항이었고, 검찰과 피고인 측이 석명 요청사항에 대한 답변서를 통해 '석명사항'이 무엇인지 확인 가능했습니다. 어제 재판부는 석명사항에 대한 피고인 측 답변서에 '총장 직인 파일'이 왜 강사 휴게실에 방치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지에 대해 충실히 기재되어 있지 않다며, 변호인 측에 다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일 재판부의 석명 대상에 '총장 직인 파일'이 포함돼 있었다는 걸 분명히 한 겁니다.

부정확한 보도 방지와 피고인 방어권 보장 등을 위한 '공판 중심 보도'. 그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마치 공판 중심 보도가 만능 해결책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지만, 앞서 살펴본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판 과정 전체가 생중계 돼 발언 유무나 취지에 대한 논쟁이 생기면 다시 돌려보며 확인해야만 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정하지 못 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상정하지 못 했던 일이 조국 전 장관 일가 재판을 두고는 실제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판 중심 보도'를 여전히 만능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분들이 현실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개인적으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답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기성 언론의 보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이 진실인지, 혹시나 확증 편향에 따라 사실 관계를 오인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의심해 보는 것이 해결책을 찾기 위한 시작일 것 같습니다. 공유된 사실에 전제한 해석이나 의견의 차이는 생산적 논의를 위한 원동력이 되지만, 공유된 사실이 전제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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