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머뭇 돌아보던 노 전 대통령 마지막 모습, 잊히지 않아"

성연철 입력 2020. 5. 22. 15:36 수정 2020. 5. 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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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노무현 대통령이 뿌린 씨앗, 이제 국민이 키워나갈 것"
"지역주의, 나아지고 있다..부·울·경 뜻 헤아리는 것이 숙제"
"개혁 그리고 역사와의 화해 없이는 통합도 이뤄질 수 없어"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1주기를 사흘 앞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경남도 서울세종본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제는 정말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총선 결과를 포함해서 코로나19 극복 과정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곳곳에 뿌려놓은 씨가 아직 풍성한 열매까지는 맺지 않았지만, 썩지 않고 자라고 있다는 걸 증명해 준 것 아닙니까. 이제는 국민이 그 나무를 잘 키워나갈 테니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를 사흘 앞둔 20일 만난 김경수 경남지사는 이번 추도식에 이 말과 술 한잔을 꼭 올리고 싶다 했다. 김 지사는 “더디지만 또박또박 노 전 대통령님이 바라던 나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마지막 비서관’은 11년이 지나도 그리움과 회한이 씻기지 않는지, 서거 이틀 전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린 대목에서는 “그때 알았으면 매달려라도 봤을 텐데…”라고 솟구치는 울음을 막지 못했다.

‘차기’를 묻는 말엔 답 대신, 정말 제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은퇴하면요. 올해 완공될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장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김 지사와의 인터뷰는 20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경남도 서울세종본부에서 진행했다.

-노 전 대통령 11주기를 맞는 감회가 어떤가요.

“최근 권 여사님께서 대통령님 묘역을 보면서 “당신은 거기 누워서 당신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있네 ”라고 하셨습니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이나, 검찰 개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그리고 지역주의 문제 등 대통령님께서 설계하셨던, 원했던 대한민국으로 한 걸음씩 가까이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점에서 맞는 추도식이라 감회가 더 새롭습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 상황이 있으니 추도식을 제한된 인원만 소수로 치르고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걸 국민께서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잊히지 않는 일화나 기억이 있습니까.

“가능하면 평소에는 기억을 안 떠올리려 합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까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도 트라우마다 싶어 편하게 생각하자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대통령님 생신 때 어떤 일이 있었지?’하는 생각을 했어요. 2006년 회갑 때였는데요. 청와대 충무실에서 국무위원들하고 오찬을 했어요. 기분이 좋으셨는지 “경수씨 노래하나 해봐요. ’하시는 겁니다. 좀 뜬금없잖아요.(웃음) 제가 노래방 기계 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곡 안 되는데 ‘구름 나그네’란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가다 말다 돌아서서…’라는 가사에 짧은. 그때 되게 즐거워하셨습니다. 나중엔 같이 부르시기도 하셨고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경남도 서울세종본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말하다 눈물을 삼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왜 평소에 기억을 안 하려 하시는가요.

“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 중 하나가 마지막 장면 같은 겁니다. 봉하 마을에서 서거 이틀 전인데 갑자기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오셔서 “담배 한 대 주시게” 하시는 겁니다. 챙겨드렸는데, 선뜻 안 나가시고 머뭇머뭇 사무실을 둘러보시고, 우리도 한 번씩 돌아보시고 가셨습니다. 그게 마지막 인사…. (흐느낌) 그걸 알아채지 못한 데 대한 회한도 있고요…. (울음) 그때 알았으면 매달려라도 볼 텐데.”

‘구름 나그네’를 말하던 김 지사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붉게 물든 눈시울을 연신 닦았고, 울음을 삼켰다.

____그때 알았더라면 매달려라도 봤을 것을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넘어서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총선 결과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데요.

“갈 길은 멀지만 계속 나아지고 있다,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석수는 지난 총선보다 줄었지만 부산, 울산, 경남 전체 득표율은 약 5%가량, 득표수는 53만표 정도 늘었습니다. 부·울·경 지역 주민들의 뜻과 요구가 뭔지 풀어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죠.”

-가까이서 보신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어떤가요?

“차이 이전에 닮은 점이 훨씬 많은 분들입니다. 두 분 다 원칙을 중시하고 굉장히 합리적인 분들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철학도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함, 애정도요. 두 분의 내면은 정말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마지막 판단을 내리기 전에 꼭 문재인 변호사 의견을 들으셨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문 변호사가 자기보다 더 원칙적인 답을 내놨다는 거예요. (웃음) 다만 노 전 대통령은 내면의 신념과 의지를 대단히 열정적으로 드러내셨고, 반면 문 대통령은 자세와 태도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끝까지 인내하고 참으면서 들은 뒤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경청형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두 분의 성격과 스타일 차이도 있지만, 시대와 정치적 상황의 차이도 있다고 봅니다. 노 전 대통령님은 1980년대 후반 정치에 뛰어들었죠. 3당 합당 등이 있었던 그 시기에 어떻게 차분하게 합니까. 그때는 정말 “이의 있습니다”하고 치고 나가지 않으면 민주주의 원칙을 지킬 수 없었던 시대였던 거죠. 아마 문 대통령님도 그때 정치를 하셨으면 노 전 대통령님과 닮아갔을 가능성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문 대통령은 2012년 정치를 시작한 것 아닙니까.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고, 지방 자치제도 만들어지고. 분노나 열정만 갖고 국민을 설득할 수 없고, 실력으로 승부하고 설득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절제와 인내, 소통을 하시는 거죠.”

-두 분 중 어떤 분과 함께하기 편하셨나요? (웃음)

“저는 두 분 다 편하고 좋았습니다. 두 분 다 참모를 대하는 스타일도 비슷합니다. 절대 반말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신영복 선생 말씀처럼 “(참모들을) 비가 오면 함께 맞고 걸어가는 사람들”로 생각합니다.”

____개혁과 통합, 노 대통령이 원했던 길 한걸음씩

-코로나 이후(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효한 노무현 정신은 어떤 것일지요.

“개혁을 통한 통합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미완성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과제는 통합이다”라고 했습니다. 1988년에 정치를 시작하셨을 때 들고 나왔던 구호가 뭔지 아십니까. 개혁과 통합이었습니다.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면 통합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처럼 노동시장이 비정규직-정규직으로 이중구조로 돼 있고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진 상태에서 통합하자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역사와의 화해 없이 통합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해자들이 반성하고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해야 화합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역사의 가해자들이 고백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전두환 등 친군부세력이 유신세력이, 친일세력이 그렇지요. 죄를 묻자는 게 아니라, 그래야 혹시 우리나라가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거죠. 저는 노 전 대통령께서 추구했던 국민 통합이라는 목표로 대한민국이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1주기를 사흘 앞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경남도 서울세종본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 지사의 말은 문 대통령의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사에 포개졌다. 문 대통령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코로나 이후의 과제를 꼽는다면요.

“한국판 뉴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함께 가야 합니다. 2050년까지는 재생에너지 100% 시대를 열자는 리100(RE100)에 구글, 애플, 베엠베(BMW) 등 세계적 기업들이 참여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구글, 애플은 이미 자체적으로는 재생 에너지 활용을 100% 달성했고, 자기네와 거래하거나 납품하려는 회사에도 리100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원자력, 석탄 등 소위 화석 연료보다는 아직 (생산 등이) 불안정합니다. 그걸 에너지 인터넷이라는 스마트 그리드라는 것으로 연결하는 게 필요합니다. 곳곳에 연결한 네트워크로 가정, 공장, 빌딩의 에너지 수요를 파악하고, 저장하고, 분배하고, 모으는 겁니다. 결국 디지털화가 되어야만 그린 뉴딜이 가능하고 재생에너지 사회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실업문제나 고용보장 문제를 챙기는 것이 사회적 뉴딜이 될 것입니다.”

-김 지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이나 기부 아이디어를 선제적으로 제시했고, 청와대와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는데요.

“이번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여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죠. 기반은 민생경제 현장이 갖고 있는 역동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염병이 잦아든다 해도 몇 달씩 지속되면 소상공인, 자영업자 매출이 회복될 수 있을까,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내수 진작으로 이 문제를 풀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를 확대하고 경기를 진작시킬 것이냐 등에 관해 경남연구원과 지역 경제 전문가, 도청 직원하고 여러 번 토론회를 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이나 기부 아이디어는) 그 결과입니다. 고소득층은 사실 긴급재난지원급 지급대상에서 제외해도 문제는 없는데, 누가 초고소득층인지, 고소득층인지를 가려내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는 거예요. 선별하느라 한두 달 후딱 갈 것이고, 예산 통과시키느라고 한 달 이상 걸릴 거고요. 그러면 시기를 놓치는 거예요. 전 국민에게 빨리 지급하는 것이 지금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렇게 진행한 것이지요. 현장에 나가보면 지금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매출이 많이 회복됐습니다.”

____다시 뵌다면 “균형 발전, 이건 하고 왔습니다” 말할 수 있길

-청와대 쪽과 교감이 있었나요?

“교감이라기보다는 현장 현실을 전달하려 노력했죠. 또 총리가 매일 아침 경제 관련 부처 포함 장관들과 전국 시도지사들과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영상회의라는 통로도 있잖아요. 매일 아침 총리가 장관과 시도지사들을 다 불러 놓고 두 달 이상 회의를 한 사례는 세계에 없을 거예요. 그런 대화와 타협, 소통이 없었다면 긴급한 시기에 현장대응이 그렇게 빨리 되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정세균 총리도 정말 대단한 뚝심이고요. 거기서 1차 소통이 있었고요, 당·정·청에 건의와 전달은 하긴 했습니다.”

-9월 학기제 도입도 이야기했는데요.

“제가 제안한 건 아니고 제안한 분이 계셔서 동의한다고 글을 올린 게 마치 제가 제안한 것처럼 됐는데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요?

“9월 학기제는 맞고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9월 학기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하고 일본 정도입니다. 왜 다른 나라들은 9월에 개학할까요? 9월 학기제에선 2~3달가량 긴 여름 방학을 합니다. 이 기간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여러 준비를 합니다. 선생님들은 신학기 수업 준비를 합니다. 학생들은 방학이 길어지면 다양한 체험을 계획을 세워 하거나 여행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자유학기제라고 직업체험 등 이런 걸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잖아요. 이 외에도 여러 장점을 보면 9월 학기제로 가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역대 정부에서도 다 검토를 했는데 늘 막히는 게 교실 문제 등 재정 문제, 학령 문제 등이었어요.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공론이 안 만들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코로나라는 상황이 생겼고, 이번에 한번 공론화 해보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혼란이 있으면 안 되니까 당장 하자는 건 아니고요. 코로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제대로 된 계획을 갖고 공론화 작업을 거쳐 한번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김 지사를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철학을 가장 잘 아는 차기 주자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우리 당에 이낙연 전 총리님을 포함해 박원순 시장님, 이재명 지사님 등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여러 가지 탁월한 운영 실력을 보여주고,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힘을 모아 문 대통령님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드리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지사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죠?

“저는 하여간…. (웃음) 개인적으로는 공직으로 제가 해야 하는 헌신은 경남지사가 마지막 헌신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수도권 블랙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부·울·경과 함께 대한민국이 좀 골고루 발전하는 균형발전시대를 만드는 일만 해도 너무 크고 중요합니다. (웃음) 나중에 대통령님 만나면 이건 하고 왔다고 이야기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 지사는 이 대목에서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 대신 진짜 하고픈 버킷리스트(삶에서 꼭 하고 싶은 일 목록)를 말했다.

“제가 은퇴하면 제 일 하고 싶은, 그러니까 인생 플랜이랄까요? 봉하 마을에 지금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이 한창 공사 중인데 아마 올해 완공될 겁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 봉하 마을에서 뭘 하고 싶어하셨는지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만들어갈 기념관장을 내가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웃음) 그런데 그 기념관장 노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웃음)”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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