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좌영길의 법조 레프트훅] 설득력 없는 여권의 한명숙 전 총리 구하기

입력 2020.05.22. 15:39 수정 2020.05.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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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호 비망록 계기로 확정판결에 재조사 거론
정치적 기소, 강압수사 주장 이미 법원 판단 거쳐
두 개의 사건, 6번의 재판 통해 '검찰권 남용 아니다' 결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건설업자로부터 9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이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돈을 건넨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에서 검찰의 강압수사로 인해 허위진술을 했다는 내용이 언급됐고, 여권에서는 재조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까지 “구체적 정밀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스폰서’였던 한만호…법원 “검찰의 정치적 기소 아니다”

“(검찰의 위증 혐의 기소는) 관련 재판에서 증언한 한만호 씨를 압박하고, 그 1심 판결 선고에 영향을 미칠 의도에서 제기된 것으로, 사실상 3심제를 잠탈하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공소권 남용이다.”

한만호 씨 위증 사건에서 판결문에 기재된 변호인의 무죄 주장 의견 요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련 재판'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말합니다. 변호인은 지금은 열린민주당 소속으로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최강욱 변호사입니다.

한만호 씨는 검찰 수사단계에서는 9억원을 한 전 총리 측에 전달했다고 했다가, 1심 재판에서 이 진술을 뒤집었습니다. 검찰은 1심 재판에서 진술을 뒤집은 게 위증이라고 판단해 한만호 씨를 기소했습니다.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변호사는 한만호 씨가 위증을 한 게 아니고, 오히려 한 전 총리 재판을 유리하기 끌고 가기 위해 검찰이 불법 기소했다고 주장한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공소제기가 권한 남용이 아니고, 한만호 씨의 위증이 판명됐다고 결론을 냅니다. 한만호 씨 위증 사건 1심 재판부는 “한만호의 한명숙 총리 사건 증언이 재판의 핵심 주요 쟁점에 관한 것이었고, 수차례의 공판기일에 걸쳐 위증을 했으며, 1심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습니다. “위증죄는 법원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곤란하게 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데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엄정한 처벌이 요구된다”는 언급도 덧붙였습니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모두 같은 결론이었고, 결국 한만호 씨는 한명숙 총리 사건에서 위증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받습니다.

[연합]

한신건영 대표였던 한만호 씨는 한명숙 전 총리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사업가였습니다. 2004년 한 전 총리에게 시세의 절반 수준의 보증금을 받고 사무실을 임대해줬고, 한 전 총리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일산으로 이사했을 때는 가구 설치와 인테리어 공사도 도맡았습니다. 제17대 대통령 경선과정에서는 한 전 총리 측에 그랜저 승용차와 버스, 법인카드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한만호 씨는 정치인을 후원하는 ‘스폰서’였던 셈입니다.

한 전 총리도 한만호 씨를 각별히 대했습니다. 소규모 건설업자에 불과했던 한만호 씨를 국무총리 공관에 초대해 중견 건설업체인 프라임그룹 백정헌 회장과 청원건설 배병복 회장을 소개하고, 공사금액 500억원 상당의 한 교회 건축공사 수주에도 도움을 줬습니다. 한만호 씨는 한 전 총리와 보좌진을 거치지 않고 직접 통화도 하는 사이였는데, 휴대전화에는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한 전 총리의 연락처를 저장했습니다.

관계가 틀어진 것은 2010년 한만호 씨가 한 전 총리에게 미화와 현금, 수표를 포함한 총 9억원을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하면서부터입니다. 2007년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돈을 줬다는 내용입니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 전 총리를 기소합니다. 한 전 총리의 변호단은 검찰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수사를 개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하자 검찰이 지방선거에 개입하고, 곽영욱 5만달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결과를 희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검찰권 남용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한 계기는 ‘한만호 씨가 2007년 한명숙 전 총리에게 수억원을 줬는데, 회사 부도 임박한 무렵 일부를 돌려받았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이 제보를 뒷받침할 상당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도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로 기소를 미룬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목적에서 이 사건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한만호 씨의 옥중 비망록 내용을 거론한 뒤 "이 모든 정황은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강압수사, 사법농단의 피해자임을 가리킨다"면서 "한 전 총리는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지금도 고통받는데, (재조사 없이) 넘어가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연합]

▶한만호 70회 넘게 조사하고도 일부만 기록 남긴 검찰…1심 “무죄”

더불어민주당은 한 전 총리가 부당한 수사와 재판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 전 총리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을 때 민주당 대표로 수사와 재판이 잘못됐다고 했던 추미애 의원은 지금은 법무부 장관이 됐습니다. 한만호 씨의 위증혐의 재판이나,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에서 나왔던 검찰권 남용 논리가 또다시 반복됩니다. 뉴스타파에 보도된 한만호 씨의 비망록에는 검찰에서 강압수사를 받았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습니다.

1심 재판부는 실제 한만호 씨의 진술이 번복된 점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합니다. 한만호 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역을 보면 9억원을 실제 전달했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만, 법정에서 이 내용을 뒤집습니다. 검찰이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한만호 씨를 70회 이상 불러 조사하고도 진술조서를 작성한 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기록이 없는 날에는 어떤 내용을 캐물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검사는 70여회의 반복 조사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외부와의 접촉 여부, 한만호의 심경변화 상태 등을 점검했고, 공소제기 이후에는 집중적으로 종전진술 내용을 반복 연습시켜 법정에서의 증언에 대비하도록 했다.” 최근 여권에서 제기하고 있는 검찰의 ‘강압수사 논란’은 이미 판결문에도 나와 있는 내용으로, 1심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도 “한만호의 이러한 주장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반복해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지 실제로 어떠한 검찰의 강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진술 아닌 물증으로 뒤집힌 판결…한명숙 측은 왜 한만호에 2억을 줬을까

하지만 항소심은 한 전 총리가 총 9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결론 내리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합니다. 한만호 씨가 검찰 진술을 재판과정에서 번복했지만, 다른 증거로 “공소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게 항소심 판단입니다. 한만호 씨의 진술 외에, 재판부가 정치자금 전달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든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만호 씨는 한신건영 부도 충격으로 2008년 2월 27일 입원. 이날 한명숙 전 총리는 직접 한만호 병문안을 다녀왔고, 이튿날 한명숙 전 총리 보좌관 김모 씨는 현금 2억원을 한신건영 운전기사에게 전달. 돈이 전달된 직후, 한만호 씨는 한 전 총리에게 전화해 31초간 통화. 20분 뒤에는 반대로 한 전 총리가 한만호 씨에게 전화를 걸어 30초간 통화.

2.한 전 총리의 친동생은 2009년 2월 23일 전세금 잔금 1억 8900만원을 임대인에게 지급했는데, 여기에는 한만호가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1억원짜리 수표가 포함.

3. 한만호 씨가 직원을 시켜 관리했던 한신건영 비자금 장부에는 ‘2007.3.30 3억원 지급, 2007. 8.20 2억 원 지급, 합계 5억원’이라는 내용 기재. 한신건영 자금 관리 직원이 작성한 채권 회수 목록에는 ‘의원’, ‘한 의원’ 등 표시. 이러한 내용은 검찰 수사 개시 이전에 작성.

한 전 총리가 한만호 씨를 병문안 한 이후, 보좌관은 2억원을 한 전 총리 측에 전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음은 2009년 5월 수감돼 있던 한만호 씨가 모친과 접견한 내용을 녹음한 대화 내용입니다.

한만호 : “A(한명숙 보좌관)한테, 저 한명숙 쪽에서 일절한 거 없죠? 내가 중대한 결단을 내리려고. 계속 소식 없으면. ”

모친 : “그러니까 아직 저기를, 집이라도 하나 얻어주게끔 뺏어야 돼.”

한만호 : 내가 편지 띄웠어요. 내가 3억을 요구했다고. 김**실장(한명숙 보좌관)이 얘기하면요. 어렵다는 얘기만 계속하시라고요.

한명숙 전 총리 측은 2억원을 한만호 씨에게 전달합니다. 검찰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한만호 씨가 돈을 돌려받은 것으로 보고, 이 내역을 유력한 증거로 지목합니다. 반면 한명숙 전 총리 측은 돈을 돌려준 주체는 김씨이지, 한 전 총리가 아니었다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항소심은 검찰 추장이 더 근거가 있다고 봤습니다. 김씨의 집과 한만호 씨의 사무실은 거리가 멀어 통상의 금전거래 때문이라면 계좌이체를 해줬을 텐데 굳이 거액을 직접 전달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채권회수 목록에 기재된 ‘한 의원’ 역시 한명숙 전 총리가 맞다고 결론냅니다.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사건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

▶3억이냐, 9억이냐일 뿐 돈을 받은 사실은 만장일치…대법원 유죄 확정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이 맞다고 봤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명숙 총리의 친동생이 사용한 전세자금에 한만호 씨가 준 수표가 사용된 점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습니다. ‘피고인 한명숙의 동생인 한**은 2009.2.23 전세금 잔금 1억8900만원을 임대인에게 지급하였는데, 거기에는 이 사건(한만호 자금 공여) 1억원 수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법원 판결문 기재 내용입니다.

한만호 씨는 검찰에서는 정치자금을 세 차례 걸쳐 전달했다고 했다가, 1심 법정에서는 한명숙 총리 보좌관인 김씨에게 빌려준 돈이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만호 씨와 금전거래가 없던 김씨가 갚는 날짜를 정하지도 않고 이자 약정도 없이 그것도 현금으로 3억원을 빌린다는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밖에 한신건영 비자금 조성 내역이 한만호 씨의 검찰 진술과 일치하고, 정치자금을 담아 운반했다는 여행용 가방의 구입 영수증, ‘한 의원’이 기재된 채권회수 목록도 근거가 됐습니다.

다만 이인복·이상훈·김용덕·박보영·김소영 대법관은 한만호 씨의 검찰 진술이 증거능력이 없다는 1심 결론이 옳다고 봤습니다. 한만호 씨는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자금의 사용 내역을 밝히지 못하면 자금을 횡령한 죄로 처벌을 받아 수감생활이 길어질 수 있어 정치자금 제공 여부 혹은 그 규모를 과장하거나 허위로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입니다. 7개월 동안 수십 차례 한만호를 불러 조사했는데도, 일부만 조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나머지 조사 과정에서 어떤 문답이 있었는지 알 수 없어 절차상 잘못됐다는 게 5명의 대법관의 반대의견 요지입니다.

하지만 이 5명의 대법관도 한명숙 전 총리의 동생 전세자금으로 나온 수표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는 점을 수긍했습니다. 한만호 씨는 한 전 총리에게 세 차례에 걸쳐 정치자금을 줬는데, 이 수표가 증거로 나온 1차 자금 전달, 즉 3억원 부분은 한만호 씨 진술과 관계없이 입증이 됐다는 판단입니다. 이 5명의 대법관은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한 의원’이 적힌 ‘채권회수목록’ 은 한신건영 직원이 한만호 씨의 지시를 받아 작성된 것이고, 한신건영 매출액의 6분의 1이면서 당기순이익의 4배 이상에 이르는 9억원을 정치자금으로 제공하는 것도 “현실성에 의문이 간다”고 판단했습니다.

쉽게 말해 1) 한만호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줬다 2) 그 중 3억원은 입증이 됐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3) 3억원이 전달됐다는 사정으로 나머지 6억원을 전달했다는 한만호의 검찰 진술을 믿을지, 돈을 아예 전달하지 않았다는 법정 진술을 믿을지에 관해 의견이 엇갈린 사안입니다. 물론 대법원의 공식 결론은 ‘다수의견’이고, 한만호 씨의 진술 외 다른 정황에 따라 총 9억원을 받았다는 게 이 사건의 ‘확정된 결론’입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사건과 입시비리·사모펀드 의혹 사건과 관련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지지자들이 정 교수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승복하지 않는 사회…우리는 왜 재판을 받을까

한명숙 전 총리는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고, 형기를 채우고 출소했습니다. 민주당은 여당이 됐고,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사법은 다수결이 지배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평가하는 일은 여론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판사를 선출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치적 세가 커졌다고 해서,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를 ‘피해자’로 뒤바꾼다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현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이나, 청와대 울산선거개입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승복하지 않는 선례는 또 다른 불복을 낳을 겁니다.

아직도 서울 서초동 법원 인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무효라고, ‘태블릿PC’가 조작됐다고 외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직권남용, 선거개입 등 혐의는 태블릿PC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입증이 됐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만호 씨 비망록은 이미 법원 판단을 받았고, 검찰의 강압수사 논란도 변호인의 주장을 거쳐 결론이 나온 내용입니다. 거꾸로 따져서, 먼 훗날 정권이 바뀌고 지금의 여당이 힘을 잃었다고 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과 법원 판결을 재조사 대상으로 거론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할까요.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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