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주방사선 피폭으로 백혈병 발병" 대한항공 전 승무원 끝내 숨져

심윤지 기자 2020. 5. 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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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7일(현지시간) 마다가스카르 남쪽에서 호주 북쪽으로 흐르는 오로라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모습. 오로라는 지구 자기권에 들어온 고에너지의 양성자와 전자가 고층 대기의 입자들과 충돌한 후 충돌 전후의 에너지 차이만큼 빛을 내는 자연적인 방전현상의 일종이다. NASA



비행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으로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며 산업재해를 신청한 대한항공 전직 승무원이 끝내 숨을 거뒀다.

22일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승현 노무사에 따르면, 대한항공 전직 승무원 ㄱ씨는 백혈병 투병 5년만인 지난 20일 사망했다. 2009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ㄱ씨는 6년간 북극항로를 오가며 우주방사선에 피폭된 것이 백혈병 발병의 주요 원인이라며 2018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우주방사선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를 가진 양성자와 전자 같은 입자를 말한다. 비행 중에 우주방사선에 노출된다는 사실은 국내에도 알려져있지만, 승무원들의 건강상 위험은 ㄱ씨의 산재 신청 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이 국내 항공사 승무원을 대상으로 2015년 한 해 동안 노출된 방사선량을 분석한 결과, 객실승무원의 평균 방사선 노출량은 2.2밀리시버트(mSv)였다. 원자력발전소 종사자(0.6mSv)나 방사선을 다루는 비파괴검사자(1.7mSV)보다 높은 값이었다. 이 검사 대상에는 국내선 승무원이나 휴직자도 포함돼있다. 실제 승무원의 연평균 방사선 노출량은 3~4mSv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한항공은 객실승무원들의 방사선 노출량을 기준값 아래로 관리해왔다는 입장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를 위한 안전지침’은 승무원의 연간 피폭선량이 6m㏜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대한항공은 이 권고에 따라 승무원들의 비행 일정을 조정함으로써 방사선 노출량을 관리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항공사들이 사용하는 피폭량 예측 프로그램(CARI-6M)이 피폭량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이 프로그램은 태양에서 나오는 우주방사선은 고려하지 않는데, 태양 흑점 폭발 등이 일어나면 태양 우주방사선이 평소의 2~3배, 많게는 10배까지 증폭된다는 것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한국천문연구원, 원자력안전위원회 등과 협력하며 지난해 3월부터 분기별 실측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ㄱ씨의 산재 심사는 지지부진하다. 항공업계는 승무원들의 실제 피폭량이 얼마인지 과학적으로 확정되지 않았고, 따라서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 사이 대한항공 소속 승무원 3명도 ㄱ씨와 비슷한 이유로 산재 신청을 했다. 산업안전보건원은 산재 신청을 한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근무환경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승현 노무사는 “과학적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재 심사가 몇 년째 미뤄지고 있다”며 “우주방사선 실측은 한두 해만으로 끝나지 않는 장기과제이지만, 유가족 중엔 산재 인정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의심이 구체적인 추정에 이르렀다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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