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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깊어진 불신, 차가운 시선.. "우리도 피해자인데"

신지환 기자 입력 2020.05.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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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만에 다시 찾은 코로나19 집단감염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나간 자리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서울 구로구 콜센터는 자리마다 감염 방지용 투명막이 생겼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고요? 그날 이후로 왠지 시간관념이 흐릿해졌어요. 우리도 피해자인데 왠지 차디찬 시선도 계속 받고 있고…. 상처가 다 지워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19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있는 한 사무실빌딩.

얼핏 여느 건물과 다를 게 없었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별 관심이 없었다. 1층 로비도 요즘 어디서나 마주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수칙’이 벽에 붙어 있을 뿐이었다. 3월 관련 확진자가 169명이나 나오며 서울에서 가장 큰 집단 감염이 발생했던 ‘구로 콜센터’ 건물이란 건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수면 위만 잠잠할 뿐, 물밑은 여전히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또한 모든 게 달라졌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구로 콜센터를 비롯해 동대문구 PC방, 경기 성남시 수정구 교회 등 수도권에서 집단 감염이 벌어졌던 현장을 다시 찾았다.

○ 유리창에 가득한 하얀 종이들

막상 빌딩에 들어가 콜센터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니 색다른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확진자가 나왔던 11층은 지금도 폐쇄된 상태였다. 콜센터에 따르면 현재 7∼9층만 운영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바짝 붙어있던 직원들 자리도 이젠 한 칸씩 거리를 뒀다. 그런데 집단 감염 발생 당시에는 안쪽이 훤히 보였던 통로 쪽 통유리 창들에 하얀 A4용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콜센터 직원 A 씨(29)는 그걸 가리키며 “우리가 지내온 시간이 만든 ‘마음의 벽’”이라고 불렀다.

“자꾸 누군가 들여다보는 거예요. 어디서 알고 찾아왔는지 한참을 노려봐 뒤통수가 따가울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하나씩 붙인 게 지금 저렇게 늘었습니다. 솔직히 직원들이 특별히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지 않나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그런데 두 달 내내 우린 ‘진원지’고 ‘온상’이고 ‘감염소굴’이었어요. 지금도 괜히 누가 쳐다보면 몸이 먼저 움츠러듭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만 얘기하자”고 해도 깜짝깜짝 놀랐다. “요즘 직원들끼리도 말을 안 하는데…”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황급히 자리를 뜨기도 했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직원은 “동료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게 낙이었는데 요즘은 같이 잘 먹지도 않는다”며 “솔직히 어디서 ‘집단 감염’이나 ‘코로나’란 단어만 들려도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고도 했다.

콜센터 집단 감염은 주변 상가들에도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한동안 인적마저 끊길 정도였다. 그마나 최근에는 조금씩이나마 다시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 B 씨(33)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 불안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아주 천천히 찔끔찔끔 나아지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괜찮나 싶다가도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같은 소식이 들려오면 괜히 다시 초조해지곤 한다”고 털어놨다.

○ 리모델링한 PC방… 거리 두기는 아쉬워

20여 명의 관련 확진자가 나온 서울 동대문구 PC방은 이름과 인테리어도 바꿨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2월 말 관련 확진자가 20여 명 나왔던 서울 동대문구 ○○PC방은 겉모습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PC방이긴 했지만 상호도, 실내 인테리어도 싹 바뀌었다. 카운터에 있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주인이 바뀐 것이냐”고 물었더니 “사장은 그대로다. 워낙 미디어에 많이 노출돼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싹 바꾼 걸로 안다”고 했다.

과감한 투자는 외견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평일인데도 오후에 들른 PC방은 고객이 30명이 넘었다. 대다수가 청소년이나 20대였다. 한 직원은 “집단 감염이 벌어져 걱정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대로 손님들이 찾아와 한숨을 돌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단 감염’이 나왔던 업소라기엔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일단 방문객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입장하더라도 어떠한 제지가 없었다. 발열 체크도 하지 않았다. 내부에 있는 고객 대다수는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턱까지 내린 채였다. 동행으로 보이는 고객들은 전부 20cm도 떨어지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같은 그릇의 음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한 고객(26)은 “집단 감염 전부터 자주 찾아왔다. 집단 감염이 벌어졌을 땐 좀 겁이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PC방도 달라진 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70여 명의 관련 확진자가 나온 성남시 수정구 △△교회 주변은 분위기가 차가웠다. 당시 “소금물로 교인의 입안을 소독했다”며 전국적 공분을 일으켰던 교회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한 상인은 “같은 수정구로 옮겼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주변에 안개처럼 자욱이 내려앉은, 묘하게 날이 선 위태로운 분위기는 지워지질 않고 있었다.

주민들과 주변 상인들은 하나같이 대뜸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겼느냐”며 불안해했다. 주민 김모 씨(42)는 “당연한 것 아니냐. 그 집단 감염은 우리 동네에 ‘트라우마’로 남아버렸다”며 “전국 어디서 무슨 감염이 생겼단 얘기만 들어도 다들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전했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교회는 아예 이사를 가면서 흔적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안과 초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동아일보가 둘러본 현장의 주민과 상인들은 그간 입었던 피해를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 식당 대표는 “처음 집단 감염이 벌어진 뒤엔 매출이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식당에 들어왔다가도 (집단 감염) 사실을 알고는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는 손님도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또 다른 위험에 대비하는 노력은 필요해 보였다. 한 식당은 집단 감염 뒤 거의 매주 1번씩 방역 전문 업체를 불러 소독했다고 한다. 입구에 ‘소독 완료’란 팻말도 만들어 붙이고, 예정에 없던 실내 수리도 했다. 업소 측은 “원래 한번 빠진 손님은 정말 회복하기가 힘들다. 다시 회복하느라 모든 노력을 다했다. 지금도 감염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분식집 직원은 “어쩌면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청결에 신경 쓰고,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조금은 손님들이 여유롭게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최근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등을 보면 젊은 무증상 감염자가 현재도 상당히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 대규모로 확진자가 나왔던 공간을 수시로 체크하고 점검해야 한다”며 “지하에 있는 PC방처럼 환기가 어려운 장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점포별로 구체적이고 차별화한 지침을 마련해 방역망을 더욱 촘촘히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지환 jhshin93@donga.com·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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