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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코로나 보릿고개.. 에어비앤비 방이 원룸 시장에 쏟아졌다

조유진 기자 입력 2020.05.23. 03:02 수정 2020.05.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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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원룸 경쟁자 된 에어비앤비
그래픽= 김의균

부동산 앱을 켜서 신촌역과 홍대입구역 근처 월세방을 찾던 중 특이한 매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써도 될 만큼 널찍한 퀸 사이즈 침대. 그 위엔 뽀얀 '호텔식 침구'가 덮여 있다. 흰색과 나무색이 조합돼 깔끔한 가구, 예쁘게 페인트를 바른 벽. 여기에 방 분위기를 단번에 카페처럼 만드는 조명까지. 앱에 올라온 일반 원룸과는 때깔이 다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현지인 집에 묵으며 그 도시 주민처럼 여행하기를 모토로 한 숙박 공유 플랫폼의 대명사 '에어비앤비'가 대학가 부동산 시장에 등장했다. 예전 이맘때면 한창 여행 성수기를 앞두고 예약하기도 어려웠을 공유 숙소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대학가 원룸 생태계에 등장한 에어비앤비 숙소를 '아무튼, 주말'이 살펴봤다.

코로나 보릿고개 못 넘는 호스트들

"최근 한 호스트가 에어비앤비로 운영하던 오피스텔 14곳을 한 번에 내놨어요. 요즘 들어 30대 초·중반 호스트들이 내놓는 매물이 많아요."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에 있는 A 부동산 공인중개사 강모씨가 말했다.

올 초 코로나 확산 전만 해도,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적은 자본금과 시간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2030 직장인들에게 인기 있는 신종 부업으로 각광받았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 101' 등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보세요. 월급은 에어비앤비가 대신 벌어 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에어비앤비 호스트 강의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청객 코로나가 찾아왔다. 세계적인 전염병 팬데믹으로 여행이 불가능해진 데다 모르는 사람과의 공유를 꺼리는 분위기에 공유 숙박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5일 에어비앤비 본사는 소속 직원의 25%인 1900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에어비앤비 등 숙박 공유 업체의 숙박료와 예약률 등을 분석하는 '에어디앤에이(AirDNA)'는 지난 3월 서울 지역 에어비앤비 1만6000여곳의 한 달 평균 매출은 58만8000원으로 지난해 12월 매출(180만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예약률은 42%로 지난해 10월(87%)에 비해 절반 넘게 줄었다. 여행객이 사라진 초유의 사태에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투숙자 대신 세입자를 찾게 됐다.

특히 월세방을 빌려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던 호스트들은 '코로나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했다. "정든 나의 에어비앤비 접어야 하나요." 지난 14일 3만6000명이 가입해 있는 네이버 카페 '에어비앤비 호스트 모임'에는 "월세도 벌어서 내야 할 판"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에어비앤비를 양도하겠다는 글과 인테리어 소품·가구를 중고 판매하겠다는 글도 이어졌다. 서울 서교동에서 홍대와 신촌 부근 매물을 중개하는 B 부동산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에어비앤비 수입은 없는데 방값은 계속 나가는 상황이다. 조금 여유가 있는 호스트들은 한 달에서 석 달 정도 단기 임대해서 버텨보기도 하지만 최대한 빨리 방을 빼달라며 매물을 내놓는 호스트가 많다"고 했다.

이중고 겪는 대학가 부동산

가뜩이나 코로나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마당에 에어비앤비 매물은 대학가 부동산엔 반갑지 않은 복병이다. 20일 부동산 앱 '다방' 측은 "3~4월 매물 문의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31%, 2.4% 줄었지만 매물 등록 수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집을 내놓는 사람의 수는 비슷하지만, 집을 찾는 사람은 줄었다는 뜻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가 원룸의 사정은 더 시리다. 서울 서교동 C 부동산 중개인은 "학기 시작 전 원룸을 미리 얻어 놨던 대학생들도 온라인 개강이 결정되자 100만원가량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계약을 해지했다"고 했다.

"요즘 방 구하는 분들은 에어비앤비 스타일 방을 선호해요. 부동산 앱에서 사진만 보고 문의하니 물건이 예뻐야 잘 나가요. 에어비앤비는 대체로 집을 한 번 쫙 수리했기 때문에 일반 원룸보다 보기에 예쁘거든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부동산의 김병준 실장이 말했다.

비대면 방식을 선호하는 요즘은 에어비앤비 출신 매물이 유리하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가 올려놓은 방 사진만 보고 투숙을 결정해 태생적으로 '사진발'이 중요하다. 에어비앤비에서 호스트들에게 숙소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할 정도다.

기존 원룸보다 에어비앤비 출신이 환영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인테리어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 김 실장은 "에어비앤비 방은 사업을 접으면서 물건을 두고 가거나 다음 세입자에게 싸게 양도한다. 조명처럼 세입자가 직접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꾸며야 하는 인테리어를 갖췄다는 게 에어비앤비 매물의 강점"이라고 했다. "다만 에어비앤비 방에 있던 침대는 많은 사람이 쓴 거라 세입자 대부분이 빼달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에어비앤비처럼 예쁘게 찍기는 공인중개사에게 떨어진 새로운 미션이 됐다. 지난 20일 서울 동교동 D 부동산 공인중개사 최모씨를 따라 한 집주인이 의뢰한 한 다가구주택 상태를 점검하러 갔다. 집주인이 2층 방을 열어주자 최씨가 부지런히 스마트폰으로 방 구석구석을 찍었다. 에어비앤비 스타일로 다섯평짜리 방이 최대한 넓어 보이게 촬영했다. 풀옵션으로 냉장고와 세탁기, 싱글 침대, 부엌을 욱여넣은 작은 방을 예쁘게 찍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위치도 좋고 관리도 잘돼서 좋은 방이에요. 방 찾는 손님이 조금만 돌아다녀도 금방 나갈 방인데…." 최씨는 다른 원룸을 촬영하러 서둘러 떠났다.

사진발·조명발·인테리어발 주의해야

"사진발에 속지 마라." 부동산 전문가들은 "에어비앤비 방은 실제 건물과 가구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 부동산의 중개사 최씨는 "인테리어 하고 조명 넣으니까 사진은 예쁘지만, 막상 가보면 벽에 페인트만 잘 발라서 색깔만 낸 곳도 있다"고 했다. 그는 "에어비앤비 하는 사람들은 좋은 침대를 두지 않는 편이다. 2~3년 쓰면 망가지는 가구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방마다 상태가 너무 달라서 꼭 직접 가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 주변 매물을 주로 취급하는 F 부동산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에어비앤비는 오래된 집을 빌려 하는 경우가 많다. 에어비앤비를 한다고 하면 집주인 동의를 받기가 어려운데 오래된 집은 예쁘게 꾸며주겠다면서 집주인을 설득하기가 쉽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실제로 가보면 낡은 집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에어비앤비가 임대주택 시장에 들어와 세입자들의 선택지가 많아진 건 일시적 현상"이라며 "프랑스 파리 등 관광 도시에서는 에어비앤비 때문에 임대주택이 적어지고 임차료가 계속 올라간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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