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해 그만두는 간호사만 줄어도..지금보다 더 나은 간호 가능할 텐데 [커버스토리]

전현진 기자 2020. 5.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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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부족한 간호사 숫자..그 많은 간호대 졸업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회원들이 라이브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제간호사의날’을 맞아 간호사들의 고충과 바람을 전하는 방송 ‘거리로 나온 간호사들’을 진행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간호사 수, 의료 수준에 큰 영향
노동 환경·환자 돌봄의 질 결정
신규 배출 충분해도 ‘경력’은 부족
3년차 이상은 업무 과부하 일쑤

충분한 간호사 숫자가 의료 수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건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인돼 왔다. <간호 인력 확보수준 및 구성이 병원 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의 병원 특성별 비교>(윤경일, 2017)에서 3451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많거나, 간호 인력의 구성상 간호조무사 인력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면 병원 내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나라의 의료 수준을 파악할 때도 간호사의 숫자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감염, 낙상, 욕창 등에 대한 예방과 입원환자의 사망,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 등 환자들이 병원에 들어서고 병원문을 나서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간호 인력 수준은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 의사 한 사람은 환자 여러 명을 진료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지만, 간호사 한 사람이 간호할 수 있는 환자의 수는 제한적이다. 환자와 매시간 얼굴을 맞대며 살피는 일을 하는 건 간호사들이기 때문이다. “환자 2명을 담당했을 때와 1명만 담당했을 때,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간호의 질에 큰 차이가 나는 걸 느낀다”는 게 간호사들의 전언이다. 일하는 간호사의 숫자는 간호사의 노동환경뿐만 아니라 병원을 이용하게 되는 모든 환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수는 언제나 부족하다. 2019년 보건복지통계 연보를 보면 2018년 기준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39만4627명이지만,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는 17만3469명(43.9%)에 불과하다. 의원 및 조산원(1만6585명)과 보건소(4965명) 보건지소 및 건강생활지원센터 등(2890명)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모두 합해야(19만7909명·50.15%) 절반이 조금 넘는다.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간호사 대부분이 현장을 떠났다는 뜻이다.



일하는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통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보면 더 명확해진다. 2017년 기준 간호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명당 100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많지만, 임상 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6.9명으로 21번째로 밀려난다. 신규 간호사 배출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만, 병원에서 충분히 경력을 쌓은 간호사가 모자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처럼 2019~2020년 입사한 신규 간호사가 전체 간호사의 3분의 1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간호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경력이 충분한 간호 인력을 확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부러지고, 삐고, 터지고…간호사는 아프다

간호사 직종 산재 신청내역 보면
‘사고’ 골절 등 각종 질환 겪는데
신청법 모르고 대부분 사비 치료
‘차별 대우’ 감정노동 희생되기도

지난 23일 경향신문이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2015년 1월~2020년 4월까지 간호사 직종의 산업재해 신청내역(1143건)을 보면 간호사라는 직업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간호사들이 가장 많이 신청한 산재의 종류는 골절이다.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는 골절은 1143건의 산재 신청내역 중 460건(40.24%)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사고(831건), 질병(206건), 출퇴근(106건) 등 산재 신청 유형 중에서 사고에 의한 골절이 391건이나 차지했다. 골절로 산재를 신청한 간호사 대부분은 업무 중 사고로 다쳤다.

피부가 찢어지거나 터지는 등의 파열 및 열상이 206건, 허리나 다리 등의 삠이 96건, 요통 및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 신청을 한 경우도 84건이나 됐다. 이 밖에도 타박상 및 진탕(63건), 내부기관상해(심혈관질환 등·45건), 전염 및 중독(36건), 화상(34건), 찔림(16건), 베임(9건), 찰과상(7건), 상해(뇌심혈관 등) 5건, 피부병 4건, 절단 1건, 질식 및 익사 1건, 기타(76건) 등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각종 부상에 시달리는 건 간호사들이 육중한 의료기구나 환자를 수시로 옮기고, 치료 과정에서 폭행을 휘두르는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는 일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산재 신청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거나, “선배나 관리자의 도움도 받지 못해 크고 작은 부상은 사비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피해는 더욱 입증하기 힘들다. 온종일 서서 일하기 때문에 압박 스타킹이라도 신지 않으면 발이 퉁퉁 부어서 버티기 힘들고, 잦은 교대 근무로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불임이나 우울증, 각종 암과 같은 질환은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

간호사가 각종 질환에 노출된 이유를 알려면 업무 시스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과 시간에만 근무하는 외래 간호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3교대 근무를 하게 된다. 보통 업무 시간 전 미리 출근해 앞선 근무조와 인수인계를 한다. 환자의 심박 수나 산소포화도, 체온 등 각종 생체 신호를 파악하는 ‘바이털 체크’를 하고, 담당 의사의 처방을 다시 확인해 투약 등을 실시한다. 면회 시간에는 보호자를 안내하고, 새로 입원한 환자의 수속을 돕고, 각종 상황에 대해 담당 의사에게 알리고, 응급 상황이 생기면 수술 부서에 연락해 조치를 취하거나 수술을 돕는다. 의료용품의 재고를 파악해 보충하고 병상 환자의 자세를 수시로 바꿔주고, 환자에 대한 처방 등 각종 사항을 기록하는 차트를 정리하는 것도 간호사의 일이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의 대소변을 처리하거나 머리를 감겨주는 등의 일도 간호사 몫이다. 임상에서는 “병원에서 누가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일은 간호사가 한다”는 말이 나돈다.

막 입사한 신규 간호사는 훈련과 업무를 병행해야 하고, 경력 간호사도 후배 간호사를 지도하면서 자신이 맡은 환자도 돌봐야 한다. 간호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경력 있는 간호사가 더욱 적기 때문에 3년차 이상 간호사의 업무는 과부하가 걸린다.

간호사는 때로 감정노동의 희생자가 된다. 간호사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학병원 간호사 ㄱ씨는 중환자실에서 이동식 엑스레이 촬영을 할 때 의사가 “가임기 여성은 나가 있으라”며 여성 전공의들은 챙겼지만, 바로 옆에서 촬영을 돕는 간호사들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공의가 간호사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교수가 조용히 따로 불러 “간호사들에게 선생님이라고 하지 말라”며 주의를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처방을 잘못 내려 투약 사고가 벌어지면 ‘재확인하지 않은 잘못’이라며 간호사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환자나 보호자라고 다르지 않다. 대법원 인터넷 판결서 열람 페이지에서 ‘간호사’를 키워드로 검색한 형사 사건의 판결 내용을 살펴봤다. 병원 진료를 받던 환자가 간호사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의료용 모니터를 바닥에 던지고, 욕설을 하거나 진료비 납부를 거절하며 간호사의 어깨를 밀치면서 폭행하고 소란을 피웠으며, 입원치료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호사의 얼굴을 때렸다. 간호사 탈의실을 불법촬영하거나, 치료 중인 간호사의 신체를 만지는 성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지난 2~3월 불과 2개월 동안 이뤄진 판결의 일부만 옮긴 것이다.

2005년 무렵 지방 요양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로 일하다 퇴직한 이민화 의료연대본부 조직부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이 부장이 일했던 병동에서는 간호사 2명이 환자 60명가량을 돌봐야 했다. 차트 정리 등 다른 일을 담당하는 경력 간호사가 있었지만, 사실상 신규 간호사 혼자 모든 환자를 살펴야 하는 구조였다. 하루는 환자의 아들이 “왜 어머니를 간호해주지 않느냐”며 간호사실로 난입해 흉기로 자해했다. 이 부장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느끼던 중이었고, 이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퇴사해 아예 다른 직업을 찾았다”며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면 다른 간호사들은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더 심한 일도 겪곤 하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트라우마가 남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호사 권리선언’이 필요해

‘행간’ 국제간호사의날을 맞아
새로운 ‘간호사 권리선언’ 제안
“전문 의료인으로서 환자에 최선…
효율 명목으로 통제되지 않겠다”

지난 12일 국제간호사의날,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 모인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행간) 회원 10여명이 모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으로 ‘거리로 나온 간호사들’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당초 실제 거리에서 간호사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스튜디오 방송으로 대체했다.

전·현직 간호사와 예비 간호사인 간호대 학생 등으로 구성된 행간의 회원들은 이날 방송에서 신규 간호사들이 처한 현실과, 대구에서 벌어진 코로나19 치료 과정에서의 문제점, 대한간호협회에 바라는 점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양한 화제가 나왔지만, 결국은 간호사들이 부족한 인력으로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주제가 모아졌다.

“밥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는데, 간호 인력이 지금의 2배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환자에게 보다 질 좋은 간호를 할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간호 인력 문제가 환자의 안전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한 명이 환자 2명을 맡다가 1명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면 환자에게 얼마나 많은 걸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행간의 간호사들은 이날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과 국제간호사의날을 맞아 나이팅게일 선서를 현장 간호사들의 목소리로 직접 바꾼 ‘행동하는 간호사 권리선언’을 제안했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근대 간호학의 기초를 만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이름을 붙여 만들어졌지만, 간호사의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고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 전문 직업인이자 연구자였던 나이팅게일의 삶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마저 있다.

이날 공개한 권리선언은 간호사는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회복을 돕는 전문 의료인으로 단순한 보조인이 아님을 강조하고, 전문 의료인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과 간호사가 병원에서 환자를 지킬 수 있도록 간호인력의 부족과 열악한 상황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위한 교육권을 요구하고 있다. 환자에게 최선의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직종과 협력하고, 병원에서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통제되는 것에 침묵하지 않고 간호사와 환자 모두에게 나은 환경이 되도록 행동하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서약도 담겼다. 간호사들이 선언한 이 권리가 지켜질 날이 올 수 있을까. 코로나19 사태가 던진 질문 중 하나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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